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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Jul 09. 2022

수능영어는 나의 모순

영어는 잘해도 못해도 둘 다 괜찮아

수능 영어 문장은 길고 복잡하다

‘지금은 12시입니다’를 아래와 같이 표현해 볼 수 있다. (해석하기보다 그냥 문장 길이만 보면 된다.) 그림이 해체되는 것처람 해석하려면 우리 의식이 흐려진다.

1) It’s high noon.

2) The current time is twelve o’clock.

3) I’m informing you that the current time is twelve o’clock in the afternoon which the sun is at its highest elevation in the sky.

4) US homo sapiens refer the present passage of continued progress of existence and events that occur in irreversible succession from the pass through the future as twelve o’clock in the afternoon where the sun in which this Earth revolves around is at it’s highest elevation in the sky and homo sapiens can usually be found eating a light meal which is typically eaten after breakfast and before dinner     


  1번은 초등영어, 2번은 중등 1학년, 3번은 고등 1학년, 4번은 수능영어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만화를 어느 날 남편이 웃으라고 나에게 카톡으로 보내왔을 때 과외 선생인 나는 웃지를 못했다. 수능영어 문장은 어렵고 길고 가르치기 힘들다. 사람들은 4번처럼 말하는 것이 얼마나 현학적이며 쓰잘 데 없는 것이냐고 비판한다. 3번 정도의 영어만 구사해도 훌륭하고 의사소통 가능한 영어다. 그러나 시험이라는 상황 3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4번 같은 해괴하고 긴 문장이 수능시험에 나오므로 사교육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교과서 어디를 봐도 4번처럼 긴 문장은 전혀 없고, 일반고등학교에서 이렇게 복잡한 지문을 이해해야 하는 수능영어 3점 유형만 다루는 수업이 없다.     


  수능 영어시험의 한 문제 지문의 문장 개수가 7~8인데 가끔은 4~5개인 경우도 있고 한 문장이 5~6줄을 넘어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3,6,9,11월에 보는 수능 모의고사를 치루고 내신 시험에서 이 모의고사의 지문들이 시험 범위이기 포함되기 때문에 4번처럼 긴 문장이 시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길고도 지루한 문장과 씨름하면서 수능을 준비한다. 고등학생들은 일상영어 casual English가 아니라 학문을 위한 영어 academic English를 이해하도록 요구받는다. 대학에서 필요한 영어는 영어회화가 아니라, 길고 복잡한 논리를 따라가야 하는 인문학, 학위논문, 전공서적을 위한 영어이다.  

   

  사실 많은 부모님들은 2번 문장을 하기 위해 초등학교 내내, 3번 문장을 위해 중학교 내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다. 어학연수까지는 못해도 원어민 교사와 과외수업을 하거나 앱이나 인터넷으로 영어를 배우게 한다. 그러나 3번과 4번의 간극은 매우 크다. 단순히 단어 문법 암기로 되지 않는 높은 벽이 존재한다. 4번은 언어 논리능력을 요구한다. 빠르게 읽고 이 문장은 ‘12시’다라는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까지 요구하니 영어 그 자체의 영역을 벗어난다. 주제에 해당하는 핵심어를 찾아내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빠르게, 중요한 부분은 천천히 읽을 수 있어야한다. 이를 일찍 감지한 부모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의 독서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책읽기에 대한 사교육도 하지만 초등 고학년이 될수록 영어 학원 숙제를 독서 학원 숙제보다 더 열심히 한다. 나는 초등 6년 동안은 영어에 투자하느니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하는 것이 모든 학습에 유용하다고 느낀다. 1번 2번 아무리 잘해도 3번까지 왔다 해도, 4번을 편안히 읽기 위해서는 문해력 독서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보면 우리 나라 수능시험을 영국이나 미국 고등학생이나 일반인들에게 풀어보라고 한다. 그러면 다들 너무 어렵다로 혀를 내두르거나 이건 ‘영어도 아니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그 문제를 푸는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언어 능력이 얼마나 있는 사람들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저 난해한 문장이라 감탄하는 걸 강조한다. 남편이 보낸 사진처럼 그냥 웃으라고 하는 영상일 것이다. 수능영어가 이렇게 어려우니 수능을 망치거나 영어 성적이 나쁜 학생들에게 위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능 국어시험 문제를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교육을 마친 일반 성인인 나도 거의 풀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무 준비도 안한 영어 원어민에게 수능영어시험은 당연히 어렵다. 그러나 나는 이런 영상을 보면 화가 난다. 수능영어를 조롱하는 것 같아서다. 조롱받는 영어를 가르치는 내가 조롱받는 것 같다.      


  영어를 포함한 서양어는 우리말과 구조가 다르다. 그래서 우리 말보다 더 길고 복잡한 문장이 가능하다. 일단 동사가 주어 바로 다음에 오므로 긍정문인지 부정문인지 바로 알 수 있고, 관계사나 분사를 이용해서 수식하는 명사 뒤에서 얼마든지 길게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저기에서 춤추고 있고 나와 10년 간 우정을 맺어온 아름다고 총명한 여자’ 라고 하면 수식이 너무 많아 숨 막히지만 that beautiful and intelligent woman dancing over there, who has been my best friend for 10 years. 하면 자연스럽게 보인다. 3번은 관계사가 1개인데 4번 문장은 밑줄 친 대로 3개의 관계사(관계대명사와 관계부사)를 쓰면서 문장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여 놓았다. 이런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분석력과 논리력이다. 단어 수준도 일상어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 많다. 그래서 암기력도 필요하다. 이해력 암기력 분석력 논리력... 이런 것들은 학문을 위한 기본요소이고 학생들에게 필요하다. 수능영어는 쓸데없는 게 아니다. 조롱받아야 할 영어가 아니다.  

      

그러나 영어 못해도 괜찮아  

  중학교 1학년부터 공부해온 한 학생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55점 기말고사에서 43점을 받았다. 영어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과목도 20점대에서 50점대를 맞았다. 이 학생은 남들처럼 국어 영어 수학 과학 4과목 과외수업을 받고 있고 스터디 카페와 독서실을 다니면서 공부했다. 나도 이 학생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모두 저조했다. 전반적으로 대학을 가서 공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학력이다.      


  석사 박사 받으려고 연구를 하는 정도가 아닌 고등학교 과정의 공부는 타고난 재능이나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기보다, 좋은 학습환경과 정서적 지지와 가르침이 있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공부 기술을 말하는 책에는 노력하면 고등과정을 누구나 다 잘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하위권에 머물면서 게임만 하던 학생이 어느 날 마음을 먹고 공부해서 전교 1등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마음을 먹어도 절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우선 초등학교 때부터 학습 정서가 망가진 경우다. 초등과정부터 학습 결손이 많은 경우. 부모와 선생님으로부터 공부 못한다고 형제자매나 친구로부터 비교당한 친구들.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학습 인지력이 현저히 떨어진 경우. 불안과 우울, 친구나 부모와의 갈등... 성적이 안 나오는 이유는 끝없이 많다.

     

  나는 학생들에게 절대 평가로 전환되어 90점만 넘으면 되는 영어 1등급도 못 받으면서 무슨 의사 과학자 연구원이 되는 게 꿈이냐고 코웃음을 친다. 수능 1등급 비율은 매년 변동폭이 심해도 2등급은 20%후반을 유지한다. 그러니 수능 2등급도 못 받으면서 무슨 대학을 가냐고 큰 소리로 말한다. 농촌 특례로 입학해서 영어 못하면 서울 애들한테 개무시 당한다고 위협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공부 못해도 괜찮아, 영어 못한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인생이 공부로 정해지면 세상의 99% 사람들은 불행해, 등등의 말도 한다. 아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동화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는 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에서 동화는 조금 슬퍼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녀는 <샬롯의 거미줄>을 쓴 E B 화이트가 어린이들에게 죽음이라는 삶의 진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감당할 힘을 준 것을 예로 든다. 아이들은 세상을 떠나는 샬롯을 보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울지만 샬롯이 전하는 말로 위로를 받는다. 세상을 살만한 곳이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작가는 어린이들에게 진실을 솔직히 말해주면서도 그 진실을 감당할 힘을 주는 글을 써야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원하는 만큼 오르지 않는 성적은 학생에게 죽음과 같은 절망이다. 수능영어시험은 항상 1등급 받는 학생만 제외하고 2등급에서 9등급 학생들 모두에게 슬프고 괴로운 현실이다. 이 현실을 감당하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친다. 그러나 엉망인 성적을 받은 학생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어 그래도 공부하도록 해 주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영어를 잘할 때 여러모로 유리해서 좋은 대학에 입할 할 수 있고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어를 못해도 다른 과목을 다 못해도, 다른 재능과 그것을 개발할 수 있는 나를 믿는 용기가 있다면 괜찮다고 말해준다.


  불합격이라는 단어는 몸서리치게 만든다. 내신은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정확하고 잔인하다. 내신 점수로 줄을 서야 하고 1~2등급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현실을 감당하려면, 소수점 두 자리까지 나온 내신점수가 전부는 아니라고 그러니 삶을 미워하거나 공부를 포기해 버리지 말라고 모순에 가득 찬 말을 한다. 수능영어는 나를 모순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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