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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Jul 20. 2022

왜 공부를 하는 거지?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괴로울 때 왜라는 질문을 한다

느닷없이 Why?


중학교 1학년 민아에게 물었다.     

나 : (뜬금없이) 민아는 왜 영어 공부를 해?

민아 : 좋은 대학 가려요.

나 : 왜 좋은 대학을 가야하는데?

민아 : 좋은 직장을 얻으려요.

나 : 왜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하지?

민아 : 잘 살고요.

나 : 왜 잘 살아야 하는 거야?

민아 : (당황하며) 음... 엄마가 낳아 주셨잖아요!     


  짓궂게 나는 왜라고 자꾸 민아에게 물어보았다. 왜라는 질문의 끝은 왜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되었다. 왜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은 철학적 난제다. 이 질문은 내가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도 포함한다. 그것은 현실을 초월한 종교적 철학적 이론과 사고가 필요하므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정답이 무엇인지도 각 사람에 따라 다르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 어려우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 지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조승연 작가와 구글 아시아 총괄전무 미키김이 대담하는 영상에서 미키김은 프랑스 교육은 왜, 미국 교육은 어떻게, 한국 교육은 무엇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들만 받아들일 것인가? 등의 철학 과목 질문에 답해야 하는 프랑스 고등학생은 왜라는 질문을 계속해야만 한다. 반면에 미국 SAT 시험은 누가 머리를 빨리 돌려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보는 것이고, 한국 수능시험은 많은 것을 알고 있느냐를 묻는 시험이다. 그러다 보니 암기 교육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이어서 미키 김은 IT업계의 입장에서 볼 때 what은 데이터, how는 알고리즘인데 why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계는 왜냐고 묻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What 너무 많은 What


외국어 학습인 영어 공부는 다른 공부에 비교해 너무 암기가 많다. 수능 영어는 단어와 문법을 다진 후에 많은 지문을 다루면서 주제를 파악하는 연습을 하면 되기 때문에, 나름대로 지문 속에서 재미나 새로운 지식이나 깨달음도 발견할 수 있다. 조금 더 이상적이면 문체나 은유에 대해서 생각하며 언어가 주는 기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물론 정시로 대학을 가는 것이 내신을 잘 받아 수시로 대학 가는 것에 비교해서 훨씬 어려우므로 정시를 권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수능 영어가 공부의 재미를 좀 줄 수 있다면 내신 영어는 완전히 암기라 절망적이다. 그야말로 what 공부의 절정이다. 전화번호부의 숫자 외우기보다는 쉽겠지만 암기해야 할 문장이 너무 많다.      


  일상 영어에서는 거의 쓰지도 않는 완전 문어체 도치 구문, 이중 삼중으로 있는 관계 대명사절, 길게 늘어진 분사구문, 시제가 복잡한 가정법 등등 문법적으로 복잡해 보이는 것은 모조리 외워야 한다. 물론 단어와 문법을 잘 아는 학생들은 암기가 좀 쉽긴 하지만 교과서와 모의고사 지문을 합쳐서 50개 이상의 문장을 암기하는 건 어렵다. 이곳 시골 고등학교에서는 3등급 학생들까지 암기가 가능한 것 같다. 50개 이상의 문장을 외워도 적중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암기해야 하는 이유는 내신 시험의 4~5문제가 문제가 문장 암기 문제이고 배점이 20% 정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니 외울 수가 없다.  

   

  중고등 학교 영어 교과서를 보면 너무나 잘 쓰여 있어서 여러 활동을 잘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교과서 본문과 관련된 대화가 나온다. 그 대화를 말로 해보면 되는데 거기 나온 표현을 또 외운다. I can’t agree more. 이건 동의를 나타내는 표현이야. can’t가 있어서 부정적인 것 같지만 can’t 와 more 가 만나서 강한 동의를 표현하는 것이다를 암기한다. 본문을 읽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거나 그룹 토의하는 활동도 있지만 이런 부분은 시험 범위에 포함도 되지 않고 활동을 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주구장창, 주야장천 교과서와 모의고사 지문을 외우는데 내가 대신 외워 주고 싶다. 나는 내신 준비하는 기간 중에 교과서와 모의고사에 나오는 문장 중에 시험에 나올 것 같은 문장을 골라 암기하라고 하고 시험을 본다. 오픈북 테스트라는 개념은 대한민국 내신 시험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공부가 이렇게 괴로울 때 우리는 기계가 하지 않는 질문을 한다. 왜 이런 공부를 하고 있는가? 초등학생 아이들이 왜 공부하냐고 묻는 건 공부하기 싫다는 뜻이지만 고등학생이 왜 공부하냐고 물을 땐 철학적 질문일 확률이 높다.  

    

그래도 왜?가 필요하다


  다시 민아의 대답으로 돌아오자. 민아는 어머니가 낳아주셨으니 잘 살아야 한다고 했다. 민아는 아마도 어머니와 관계가 좋고 부모님을 존경하는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생명을 주셨고 그래서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참 기특하다. 이런 마음이 효심의 기본적인 정서가 아닐까 한다. 부모가 주신 삶을 잘 이끌어 가고 싶은 마음이 공부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나도 그랬었다. 내 어머니는 항상 아프셨다. 어머니의 위장과 식도는 독한 결핵치료약 때문에 많이 상했다. 20대에 상한 위와 식도를 고치느라 대수술을 두 번이나 하셨고, 내가 대학교 1학년 때는 대한민국 최초로 식도 이식수술을 하시느라 병원에서 6개월이나 입원해 계셨다. 간병인이 없던 시절이어서 나와 외숙모가 간병인 역할을 했다. 그 후 암이 다시 발생하고 어머니는 69세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요즘은 환갑잔치를 잘 안 하는데 어머니가 평생 병약하셨기 때문에 친지들과 함께 모여서 조촐하게 환갑잔치를 해드렸다. 그때가 내 딸이 막 태어났을 때라 어머니는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을 보내고 계셨다. 아프신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민아처럼 나도 생명을 주신 어머니에게 감사했고 나의 좋은 성적은 어머니에게 위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공부를 잘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대의가 아니라 나의 목표를 위해서


  요즘은 정의, 이념, 신념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시대가 아니다. 자기 주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이태석 신부님처럼 종교인이나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 같다. 70년대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고 자기의 몸을 불태운 전태일 청년이나 영화 <1987>에서 본 것처럼 민주주의라는 이념과 독재 타파를 위해 몸 바치는 대학생들이 없다.


  대의를 위해 살던 시대는 갔고 모두는 각자의 재미를 위해 산다. 중고등학생들도 공부를 왜 하는지 공부의 의미를 굳이 묻지 않는다. 고통이라는 공부를 조금 하고 나면 각자가 느끼는 재미의 세계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공부라는 고통의 세계로 나온다. 최소의 고통과 최대의 쾌락을 원칙으로 공부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암기라는 이름의 공부는 괴로움일 뿐이다. 삶이 풍요로워진 21세기에 학생들에게 신이 나에게 준 사명이라든가, 자신의 궁핍한 삶을 바꾸기 위해서 같은 내적 동기는 찾기 어렵다. 오빠만 대학을 보내는 부모가 미워서 기어이 장학금까지 받고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는 딸들도 없다. 요즘 아이들은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잘 구별이 안 된다.   

   

  주변에 인적 자원이 많지 않은 지방 소도시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갖기 힘들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모두 의사가 되겠다고 하고 과학자가 되겠다는 아이는 많지 않다. ‘저는 꿈이 없어요’라는 말이 유행가 후렴구 같다.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 난리다. 이 혼란 속에서 왜 공부하느냐라는 질문의 답은 꿈이 있느냐 없느냐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면 공부의 이유를 찾은 것이다. 예산에서 서울까지 130Km 정도 된다. 어디로 가는지 도착한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130Km를 걷는 것보다, 서울에 가고 있고 서울에 가면 몇 달 동안 기다린 뮤지컬 공연을 본다고 생각하면 가는 길의 발걸음이 가벼울 것이다.      


  내신만을 위해 문제집만 풀지 말고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이나 방학 동안에 여러 캠프에 참여하며 자기의 흥미와 재능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기숙학원에 보내고 한 달 내내 12시간씩 국어 수학 영어 문제집 풀게 하지 말고, 학문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캠프에 보내셨으면 좋겠다. 대학,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또 학교 동아리에서의 과학 실험, 음악 미술 체육등 예술 활동, 글쓰기와 독서 활동, 지역 아동센터나 유기견 보호소 등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외부에서 자극을 받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다.


  선생님과 부모님는 공부하는 방법에 앞서 공부하는 이유를 먼저 찾을 수 있도록 해서, 돈 많은 백수가 꿈인 아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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