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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Oct 22. 2022

과외선생으로 살아남으려면

오래 일할 수 있는 방법

나 : (수채화 그린 것을 보면서) 와, 유선생님 정말 잘 그리셨네요.

유선생님 : 아 뭘요. 색을 예쁘게 잘 못 내겠어요.

나 : 배우신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정말 잘하시네요.

유선생님 : 아이고 별말씀을요!     

*학생의 신발을 신어보기

유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수채화반에 나가면 내 옆에 앉아 계신 60대 여자분이다. 우리 아파트 3층에 사셔서 이웃이기도 하다. 언제나 친절하시고 고상한 색의 옷차림이 잘 어울리시는 분인데 내가 코로나 때문에 2년 수채화 반을 쉬고 나갔더니 새로운 맴버로 나오시고 계셨다. 나는 2년이나 쉬어서 다시 유 선생님의 기초 단계로 강등하여, 다시 작은 사물이나 나무 꽃등을 유 선생님과 같이 그리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유선생님은 일취월장. 며칠 전 우리는 나뭇가지의 많은 나뭇잎을 그렸는데 그분의 정말 섬세한 묘사력이 입을 딱 벌어지게 한다. 내 그림은 완전히 빈사의 백조 상태였는데 선생님이 교정해 주셔서 조금 나아지긴 했다. 그래도 원치 않는 색을 물로 걷어내고 다른 색을 덧칠하니 수채화의 맑은 느낌은 싹 사라졌다. 이 죽어가는 그림을 완성할지 말지 난감한 상태로 귀가했다.     


2018년 가을에 등록하고 수채화를 시작했으나 코로나 핑계로 탱자탱자 거리다가 다시 시작하려니 정말 너무 안 돼서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 잘 안돼서 마음이 아픈데 옆에 계신 유선생님과 내 그림을 비교하면 더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난 왜 이리 못하는지. 나는 언제 선배님들처럼 풍경화를 그릴는지. 난 미술에 재능이 없는가 싶어 관두고 싶지만 그래도 하다 보면 경지에 오르겠지 하며 다니고 있다.    

  

이게 아이들의 심정이 아닐까 싶다. 수채화 반에서도 경쟁심을 느끼는데 학교에서 등수와 등급을 매기는 살벌한 현장에서 원하는 성적을 못 얻은 아이들의 마음은 오죽 힘들까. 두세 명이 같이 수업을 하다 보면 유난히 단어를 못 외우는 아이, 정말 문법 설명을 계속해도 이해 못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계속 반복하다 보면 중딩단계에서 고딩단계로 넘어간다. 힘들게 힘들게 넘어가는 아이들은 옆에서 시험 보면 다 맞는 친구들을 보면 속에서 열불이 날 것이다. 짜증이 나서 숙제도 대충 하고 오기 싫은 과외 수업을 하고 있으면 선생님은 숙제 안 했다고 잔소리하고, 이해하기 힘든 문법 용어는 귓가를 맴돌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렇게 농땡이 짓을 한 달쯤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숙제하려고 교재를 뒤적이면 모르는 단어 모르는 문법이 넘쳐나고, 대충 넘어간 부분이 너무나 새롭게 보이는 체험을 할 것이다. 이런 친구들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는 것 역시 선생님이다. 그것도 좌절해 본 선생님.     


미술반에서 느끼는 나의 좌절은 아이들의 좌절과 비슷하다. 아이들과 공감하는 방법은 학생의 입장이 되어 보는 건데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상황에 나를 집어 넣어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영어 문법 가정법에 많이 나오는 표현이 있다. If I were in your shoes 내가 너의 신발 속에 있다면, 즉 내가 너의 입장이라면 이라는 표현이다. 아주 멋진 신발인 듯해도 발이 아파 못 신을 신발이 있듯, 남의 신발을 신어봐야 발이 아픈지 안다는 생생한 표현이다. 나는 학생들이 늘 안쓰럽다. 무슨 과외마다 숙제는 그리도 많은지, 학교에서는 사람이 한우나 농산물도 아닌데 등급을 매겨 취급한다. 왜 공부하는지 물음에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이외에는 답이 안 나오는 입시의 현장에서 과외선생인 나는 위로를 주려고 노력한다. ‘넌 교과 등급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사람이야. 그래서 난 널 진짜 좋아한다니까!’라고 말해준다. 이런 위로는 힘이 되는지 아이들은 나와 오래 공부하는데, 그게 진심이자 나의 과외선생으로서 생존방법이다.  

   

*나는 영원한 수혜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필한 우리 시대 최고의 번역가 이윤기 선생은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라는 에세이에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소상히 썼다. 깨끗하게 씻고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을 줄도 모르고, 늘 술에 젖어 살다가 제대로 살게 된 것은 모두 아내 덕이라고 했다. 내가 배우자로부터 은혜를 받는 수혜자이지 은혜를 베푸는 시혜자가 되는 순간 결혼을 끝장이라는 이윤기 선생의 말에 나는 정수리를 딱 맞은 느낌이었다.


월급도 쥐꼬리만 한 데 주말도 없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 남편을 보면서 같이 이 남자와 사는 게 맞는가 고민하던 30대 여인이 나였다. 40대에 접어든 남편이 인천 남동공단의 작은 회사에 입사했다. 갑자기 남편이 회사에 외국인 손님이 오면 통역하거나 영어 수출입 업무를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나는 2년 동안 남편 회사에서 일했다. 회사에서 나는 남편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았고 쥐꼬리 만하다고 느꼈던 그 월급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다. 작은 벤처회사다 보니 늘 자금이 부족하고 월급날이 다가오면 나는 물건 납품한 외국회사에 이메일을 쓰거나 심지어 전화를 해서 납품대금 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남편의 신발에 들어가 보고 나서 나는 내가 시혜자가 아니라 엄청나 수혜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회사 경험 이후로 나는 남편의 노동과 임금에 무조건적인 긍정을 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는 시혜자가 아니라 완벽한 수혜자라는 생각으로 일한다. 학생들과 학생들을 보내주시는 부모님들께 늘 감사하다. 아침마다 침대 속에서 고민한다. 오늘 아침 남편 아침밥 차려주지 말고 그냥 좀 더 잘까, 아니지 그래도 아침식사는 남편과 같이 해야지 사이에서. 그러다가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침대 위 이불을 각 맞춰서 잘 정리하고 부엌을 향한다.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고 침대도 정리못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랴 싶은 마음으로.     


예전에 <침대부터 정리하라> 라는 책도 있었다. 전직 사령관으로 37년간 전장을 누빈 군인이자, 미군의 전 특수부대를 통솔하는 리더로 '오사마 빈 라덴 체포 작전' 등 수많은 특수작전을 지휘한 윌리엄 맥레이븐의 책이다. 그가 침대만 정리하면 하루 임무 완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침식사를 하고 차를 한잔 마시며 정리된 침대를 미소 지으며 보노라면, 어느덧 나의 하루는 멋지게 시작되어있다. 학생들이 없다면, 남편이 없다면 나는 오전 내내 잠을 잤을 것이고, 야간형 인간이라 새벽까지 안자고 밤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과외 선생이라는 직업은 이브닝 라이프가 없다. 항상 해가 있을 때 사람들을 만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집안일을 한다. 밤에 술자리를 하거나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어서 수업이 다 끝나고 야심한 시각에 뭔가를 하고픈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아무리 늦어도 밤 1시 이전에 취침하고 아무리 늦어도 아침 7시 반이면 기상하고 침대를 정리한다.


이런 생활을 하게 해주는 학생들에게 늘 감사하다. 규칙적인 생활과 감사한 마음은 과외선생의 살길이다. 아프다고 자꾸 수업 시간을 바꾸고 미루면 안돼서 열심히 운동을 한다. 감사한 마음은 일기장에 적는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든다. 제발 부모님이 이렇게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한테 못해 준 게 뭐니? 너 과외비 다 모으면 집 한 채를 샀겠다!” 대신에 ‘우리 아들/딸 공부하느라 수고한다. 너 크는 거 보면 늘 감사하다!’ 이렇게 응원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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