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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Nov 18. 2022

땡겨유

때리지 말고 손을 잡아 땡겨주세요

나 : (수업시작하고 10분 후 카톡으로) 서진아 오늘도 안 오니???
 서진 : 아 제가 토요일 일요일에 아이돌 콘서트 보러 두 번이나 서울 갔다 와서 늦게 일어났어요. 그리고 오늘 오전으로 수업 시간이 바뀐 줄 몰랐어요...
 나 : 그럼 못 온다는 거야?

서진 : 네 숙제도 다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나 : (부글부글) ‘너 당장 안 오면 너는 더 이상 나랑 수업을 못하는거다’라고 썼다가 지운다.     

땡겨유

서진이는 정말 귀엽고 성적도 좋은 학생이다. 중1 3월 꼬꼬마 때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여 지금은 고1이다. 3년 반을 나랑 같이 지내면서 이 공부 머리 좋은 아이를 어떻게 성실함과 궁합을 맞추어야 할지 고민을 해온 학생이다. 최근 이 녀석의 문제는 수업을 밥 먹듯 빼먹는다는 것이다. 지난 중간고사 끝나고 한 번 수업하러 오고, 세 번이나 수업을 연이어 오지 않았다. 고등학생의 경우 일주일에 1회만 수업하므로 3회 연속 결석은 3주의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다. 부글부글 화가 나서 너랑 수업을 그만하겠다고 하려다가 지운 것은 도망간 학생은 잡아야지 험한 말을 해서 떠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가출을 하면 집을 떠나도록 하지 않고 다시 집으로 오게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나는 엄마표도 아니고 더욱 친절한 할머니표로 가르친다는 교육철학이 있다. 처벌 보다는 사랑으로 변화를 이끌고 좋은 결과를 내자는 나의 개똥철학이 있고, 원칙은 지키자는 마음으로 너랑 수업 종료라는 말을 쓰고 지웠다. 화가 났을 때 상대에게 반응하고 슬플 때 중요한 결정을 하면 늘 후회하기 마련이다. 친구와 싸우고 손절하거나 우울하다고 물건을 팍팍 사고 후회한 적이 있어서 감정이 격해질 때는 심호흡을 하면서 하루를 기다린다. 24시간이 필요하다.     


화를 가라앉히고 다음 날 나는 수업에 오지 않았지만, 수업 자료는 받아가야 하니 우리 집에 들르거나 같은 고1 학생 수업이 있으니 그 친구와 같이 수업을 들으러 오라고 했다. 이 친구 손을 잡아 ‘땡겨야’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중학교 때까지 잘 달리다가 갑자기 고등학교 때 푹 쓰러지기도 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성실함이 떨어져도 단기 암기력이 출중하고 이해력이 높은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본다. 서진이는 중학 내신시험에서 한 문제 틀리거나 100점을 항상 받았다. 그러다가 고등 내신에서 성적이 춤을 추고, 수능 모의고사에서도 1등급이 안 나오니까 마음이 상했는지 자포자기가 되었는지 아이돌에 빠졌다.


시험이 3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콘서트본다고 서울로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 걸쳐 기차 타고 다녀왔다. 하여 공부할 기운은 남아 있지 않았다. 콘서트의 열기 때문인지 시험을 잘 봐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사라지는 상태이거나, 선생인 내 생각과 전혀 다르게 내신 공부쯤은 혼자서 외우면 된다는 당돌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저기 구석쟁이에 넘어진 아이는 손을 잡아 온 힘을 다해 선생이 땡겨줘야하는데 이걸 나는 코칭 coaching이라 한다. 티칭 teaching은 그냥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코칭은 몸과 마음이 학습을 향하도록 인도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주저앉았다가 일어나는 것은 그냥 걷는 것보다 훨씬 힘이 많이 든다. 비행기도 이륙할 때 가장 연료를 많이 쓴다고 한다. 뭐든지 처음 시작은 에너지가 많이 든다. 올여름 참새 한 마리가 우리집 데크에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날아다니거나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는 봤지만 사람 사는 집 마당의 데크에 누워 있는 가여운 참새를 본 건 처음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 이 어린 생명체를 살리려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었다. 엄청나게 물을 많이 받은 참새는 몸을 일으켜 일어났는데 눈을 못 뜨고 날지도 못하다가 더 많은 물세례를 받고 쉬더니 다시 하늘로 날아갔다. 열심히 물을 뿌려 나는 이 참새를 ‘땡겨서’ 일으켜 날아가게 했다.    

 

고등학교 생활 중에서 고1 때가 가장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내신 성적표에는 등급이 나오고 전교등수가 잔인하게 나온다. 내가 물건인가? 등급이 매겨진다고? 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냥 그 숫자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난 제발 학부모님들께서 아이들 1등급으로 도배한 성적표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리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 다른 부모님들 그 사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인스타에 월급명세서나 통장 잔고를 올리는 사람들 욕할 것이 아니다. 등급으로 내면화된 학생이 성인이 되어도 연봉으로, 자동차 배기량으로, 아파트 평수로 온갖 숫자들 놀이를 좋아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능 점수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

어제는 23학년도 수능 시험날이었다. 아이들은 시험이 끝났다. 이번 연도는 내 생애 가장 고3 학생이 많은 해다. 재수생까지 9명이나 되는 아이들 수능 선물 다 돌리고 나니 지난 수년간 아이들과 지내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중1 문법책에서 시작하여 수능 모의고사 문제집까지 같이 풀어가며 아이들은 쑥쑥 자랐고 이제 내년이면 스무 살이 된다. 나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정말 즐겁게 바라본다. 그래서 과외 선생이라는 직업을 좋아한다. 문제집의 난도가 높아지면서 아이들 키도 자라고 생각하는 머리도 커진다.      

나는 수능 점수를 높이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에게 수능은 그냥 결과일 뿐인 듯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세상은 과정을 모조리 무시한 채 결과만 가지고 평가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수업에 열심히 오고 수능까지 탈 없이 달려온 것만으로도 칭찬해 주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나는 또한 명문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업하지 않는다. 물론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많으면 과외 선생으로 인기도 많아지고 어깨에 힘도 들어간다. 그러나 행복해지고 싶다고 늘 바라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오히려 행복이라는 단어를 잊고 매 순간 삶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인 것처럼, 수업마다 숙제를 잘하고 수업준비를 잘해서 선생님께 칭찬받고 기분 좋아서 집으로 갈 수 있다면 그게 학생의 행복이라고 믿는다. 좋은 대학에 가는 그 순간만을 위해 살면 지친다. 무엇을 이루면 행복하겠지만 이루는 과정도 행복해야 한다. 과정이 행복하면 결과도 좋기 마련이다.     


때리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부정적인 말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손으로 자녀를 때리는 부모들이 있다. 어제는 한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숙제를 제대로 안 한다고 아이 문법책을 아버지가 찢어 버려서 서점에 가서 사려고 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다른 책으로 보낸다고 미안하다고.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수업에 왔는데 아이가 오늘은 문법 공부를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나는 문법 공부 따위는 잠시 잊고 기분 전환으로 즐거운 상상을 해보자고 했다. 각자 자신이 상상하는 최고의 하루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욕조에 거품이 나는 입욕제를 넣고 길고 따뜻한 목욕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는 욕조가 없다고 했다. 청소하기 어렵다고 집안 리모델링하면서 욕조가 사라졌다고 한다. 라벤더 향기나는 거품을 만지면서 목욕을 하는 거 나도 좋아한다고 맞장구를 치니 씨익 웃는 예쁜 미소를 던져 주었다. 쉼을 이렇게 원하는 아이와 아버지는 왜 그렇게 무섭게 싸웠는지. 두 사람이 싸운다고 공부가 잘되는 건 아닌데 하며 가느다란 한숨을 쉬었다. 답답했다. 좋은 대학은 공부가 지옥인 아이에게는 멀어지고, 부모의 지지와 긍정적인 언어를 받은 아이에게 더 가깝다.


 아이가 숙제를 잘 안 하면 무엇이 힘든지 묻고 아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과외 선생님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으로 고층 건물을 짓고 나면 아이들이 수능을 보러 간다. 어제 수능 시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시험의 성적과 관계없이 부모님들의 위로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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