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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Jan 26. 2023

뉴질랜드 남섬 자유여행 (6회중 3회)

퀸스타운 가든과 110년된 증기선

호숫가에서 아침 달리기

크리스마스와 그다음 날인 BOXING DAY가 지나고 27일이 되니 도시가 활기를 되찾았다. 아침 식사를 키친에 내려가서 우유와 커피 어제 산 독일 잡곡빵을 가지고 식사를 했다. 독일 잡곡빵은 정말 단단하고 밀도가 높은 빵이라 조금만 먹어도 든든했다. 다시 베이커리에 가서 빵을 더 사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 세 식구의 건강한 먹거리였다.     


식사를 마치고 모두 같이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에로우 타운이라는 19세기 골드러시 시절 광산촌 마을이라는데 박물관은 있을 것 같았지만 그리 볼거리가 많을 것 같지 않고 오고 가고 이동시간도 아까워서 안 가기로 했다. 라벤더가 피어있고 벽화도 그려있는 거리는 퍼그 버거집이 있는 번화가에서 벗어나 한적하고 예쁜 주택들이 많이 보였다. 10분쯤 달려 도시를 벗어나 호숫가로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주택들이 즐비했다. 이런 집을 빌려 제주 한 달 살기 하듯 퀸스타운 한 달 살기도 멋질 듯하다. 경유를 하는 비행기표를 싸게 살 수 있다면, 체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닐까. 패키지여행에서 할 수 없는 여유롭고 한가한 아침 달리기만도 감사한 일인데 더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좀 달리다 보니 프랭크튼 트랙 Frankton Track이라는 길이 나왔다. 이 트랙은 와카티푸 호수에서 지류처럼 옆으로 삐져나온 호수인데 그 둘레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마치 몸통에서 팔이 뻗은 것 같아서 이 부분을 Frankton Arm이라고 부른다. 호숫가에는 호수를 바라보는 듯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자갈돌이 가득한 물가로 가보니 바람이 부는 대로 파도가 친다.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들과 구름 가득한 하늘이 한 폭의 풍경화였다.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들도 가끔 보이고 계단 난간에는 나팔꽃도 피어있다. 한적함의 최상급이다.


이 한 바퀴를 자전거를 빌려 달릴 수도 있고 우리는 조금 달려보기로 했다. 학철씨가 감사하게도 이미 새벽에 달려 답사를 마친 곳이다. 어디를 보나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잔잔한 호수는 파도 소리를 내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보트를 타는 평화로운 모습이 보였다. 인생 최고 모닝 러닝이었다. 호수는 신정호와 달리 산책로 아래 호수 물가에 내려가 손으로 물을 만질 수 있었다. 인공적인 시설이나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상업 시설도 없고 레저 시설도 없는 순도 100%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흐린 가을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외선 지수도 낮아 달리기하기 너무 좋은 날씨. 호수 주변의 주택들은 모두 아담하고 아름다웠다. 만일 겨울에 따뜻한 나라에 몇 개월 살 수 있다면 나는 여기 퀸스타운 호숫가에 살겠다고 하고 싶다. 아침 러닝은 프랑크튼 트랙에서 퀸스타운 가든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나무가 있는 장미 정원, 퀸스타운 가든

정원은 특별한 문이 없이 그대로 외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디에서나 공원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내 눈앞에는 어제 경비행기에서 보았던 숭고함과 대비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져 있다. 싱가포르의 보타닉 가든도 이렇게 아름답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5분도 서 있기 힘들다. 반면 이곳은 날씨마저 환상적이다. 한국에서 무더위 지나 맞은 9월의 건조하고 따뜻한 초가을 날씨다. 공원은 우리를 형형색색의 장미꽃들이 맞이했다. 영국의 국화가 장미이고 여왕님이 좋아하시는 꽃일 것 같다. 색깔이 다양하고 주먹의 두 배쯤 되도록 소담하게 피어났다. 연보라, 분홍, 노랑, 빨강. 색색의 장미가 피고 그 옆에는 우람한 나무들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큰 돌비석이 서 있었는데 남극을 탐험하다 바다에 영혼을 바친 탐험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넋을 기리는 말이 쓰여 있었다.     


Captain Robert Falcon Scott Dr. Edward Adrian Wilson Captain Lawrance E G. Otes 등이 1912년 1월 17일 조난을 당했다

They rest in the great white silence of Antarctica amid the scene of their triumphes, wrapped in the winding sheets of the eternal snows.  


이 말에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영원한 눈의 구불구불한 천에 싸여, 그들의 승리의 장면의 한 가운데 남극의 거대한 하얀 침묵 속에 그들은 영면하고 있다'.   

   

1910년 테라 노바호(號)에 의한 제2차 남극 탐험에 나서서 1912년 1월 18일 남극점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남극점은 1911년 12월 14일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도달하였기 때문에 첫 정복의 꿈은 깨졌다. 게다가 로버트 팔콘 스콧 선장과 4명의 동행자는 귀로에 악천후로 조난, 식량부족과 동상으로 전원 비명의 최후를 마쳤다. 노르웨이 출신 아문센이 남극점에 먼저 도달해서 영국인들이 매우 기분이 상했을 텐데 스콧 선장마저 차가운 바다에 몸을 수장시켰으니 정말 비극적이다. 100년 전에 있었던 인류의 대모험 때문에 남극 끝의 땅에 장미가 심겨져 만발하고 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제국주의가 남긴 유산이긴 하지만 100년이 흐른 후 극동의 아시아인이 여기서 그 장미꽃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혜택을 누리고 있고 21세기를 살고 있다니 정말 역사는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학자가 그랬다.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복 받았다고. IMF 경제 위기 이전에 취업해서 AI로 인해 직업이 없어지기 전에 은퇴하는 사람들이라고. 나도 1960년대에 태어나서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지구의 환경이 없어지기 전에 중년이 되어 여행을 할 수 있고 서구 개척자들의 투쟁 덕에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노닐고 있다니.     


거대한 세쿼이아 나무와 느릅나무들은 너무 커서 사람의 존재를 미천하고 작게 만들었다. 옆으로 넓게 자라서 나뭇잎과 가지가 너무 넓어 그 아래 벤치가 놓여있다. 이거 달력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다. 이 나무에 뭔가 적혀 있어 보았더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 대관식을 기념하여 심었다고 한다. 1937년.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또 한 곳에는 세쿼이아 국립공원에서 만난 ‘제너럴 셔먼’이라는 나무만큼이나 큰 세쿼이아 나무가 정원을 지켜주고 있었다. 가이드님이 정해준 시간에 맞출 필요 없이 한가하게 천천히 나무들을 감상하며 정원을 거닐었다. 팔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둘러보니 연못이 있고 거기서 어미 오리가 새끼들을 바라보는 장면도 보았다. 너무나 귀여운 모습이었다. 연꽃 사이사이로 아기오리들은 아장아장 걷다가 물속에 빠지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 옆에는 금방 살아 뛰어올 것 같은 강아지가 조각상이 오리들과 함께 연못의 기억을 더해 주었다. 가든을 지나 집으로 오면서 우리는 퀸스타운의 성공회 교회를 보았다. 영국령이었던 이곳에는 성공회 교회가 많고 성공회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우리 가족에게는 마치 고향에 온 듯 반가웠다.     


아직도 현역인 110년 된 증기선 언슬로우

점심은 진라면에 계란 3개 넣은 삼계탕을 먹었다. 거기에 그릭 요거트와 과일을 먹었다. 그리고 Earnslow 라는 증기선을 탔다. 110년이나 된 오래된 이 증기선은 아직도 와카티푸 호수를 유유자적 운행하고 있다. 2시간 정도의 증기선 여행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평화라는 단어는 이런 장면이다. 평화라는 단어의 시각적 표현은 이 호수의 잔잔함과 하늘과 산과 흰 구름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도신도시에는 예산으로 이사 왔을 때 나는 예당호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느꼈다. 예산에는 예당호가 아산에는 신정호가 퀸스타운에는 와카티푸호가 있다. 분명 물과 하늘과 산 구름과 같은 자연물이 없는 평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110살이나 먹은 된 증기선에 엔진은 아직도 석탄에 의해 동력을 얻어 달렸고 뱃고동 소리가 날 때는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왔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미시시피강의 배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흰 제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선님의 모습이 어제 경비행기 토마스 기장님만큼이나 멋지고 훈훈했다. 이 모든 산업이 관광산업인데 코로나로 인해 퀸스타운도 3년 동안 많은 시민이 경제적으로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살인적인 물가는 그 공백을 채우려는 뜻일까? 레스토랑, 카페, 편의점, 옷가게, 기념품 가게 등등 모든 상업 시설은 staff를 구한다고 구인광고가 문에 붙어 있었다. 젊은이들은 다 어디 갔는가? 오클랜드로, 호주로, 영국으로, 캐나다로 미국으로 갔는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주권을 주지 않고 노동 비자만 발급해 준 뉴질랜드 정부의 인색함에 대한 처벌이 아닌가 싶다. 노동 비자만 있던 노동자들은 코로나로 일이 없어지자 다 본국으로 돌아갔고 다시 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후 5시에 스타벅스가 문을 닫는 어이없는 일이 관광도시에서 생겨나고 있다.     

배 안에서는 정말 여러 억양의 영어가 들린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친근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서로 다른 엑센트지만 그들은 영어라는 한가지 언어로 연결되어 있다. 한국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늘 배에서 만난 할아버지 아들 손자 일가족도 한국어를 썼는데 손자들은 서로 영어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이민 온 가족인 그것 같다. 만일 우리가 2002년에 뉴질랜드에서 이민 와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나는 저런 모습의 엄마이고 세린이는 영어를 쓰겠지. 상상해보니 집으로 돌아간 것이 잘한 것 같다. 자식하고 다른 언어를 쓰면서 외국에서 가난한 이민자로 살고 싶지는 않다. 역이민에 후회는 없다. 자녀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장점을 위해 가족끼리 같은 언어를 장점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게 내 결론이다.     

배 안에서 세린이가 맥주 한 잔을 시켜와서 같이 나눠 마시고 불멍 물멍처럼 하늘멍 호수멍을 하다 보니 육지가 보였고 아름다운 레스토랑 건물이 나타났다. 거기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내렸고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2시간 동안 정말 실컷 하늘과 호수의 푸르름에 젖어 들었다.     

     

아시안 퓨전요리 김세린님 추천 맛집

저녁 식사는 블루카누라는 곳에서 했다. 아시안 퓨전 요릿집이었다. 분위기가 가족 음식점이라기보다 젊은이들을 위한 바 같았는데 테라스 쪽에 자리가 나서 사람들이 오가는 길을 향해 앉았다. 태국식 샐러드, 군만두, 새우와 참깨가 있는 멘보샤같은 전채요리 3개와 조린 삼겹살 요리와 쇠고기 요리는 모두 맛있었지만, 많이, 아주 많이 짜서 흰밥을 2개나 시켜서 먹었다. 도대체 밥도 없이 먹는 서양인들은 이걸 어찌 먹고 있는 건지 걱정이다. 생각보다 서양사람들도 많이 짜게 먹는다. 김치와 국물 요리를 먹지 않아서 그렇지 빵도 수프도 다 짜다.     


짠 요리는 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맥주와 팁까지 총 160달러가 나왔다!!! 밥이 아니었다면 배가 고팠을 어제 먹은 중국집보다 배고픈 상태로 우리는 퍼그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서 호키포키 헤이즐넛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호키포키가 뭔가 했더니 달고나 맛이었다. 캬라멜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라너무 맛있게 먹었다. 오늘 길에 드디어 큰 수퍼를 찾아냈다. 밀퍼드 사운드 다녀올 때 셔틀 버스에서 본 대형 수퍼였는데 기억을 더듬어 세린이와 학철씨의 구글맵과 치밀하고 예민한 감각 덕에 수퍼에 갈 수 있었다. 수퍼가 큰데 입구는 정말 작았다. 선물로 휘테커 초콜릿을 많이 샀다. 공항이든 수퍼든 모두 휘태커 whittacker 가 이 나라 초콜릿 상표였다. 100그램짜리 200그램짜리 골고루 담았다. 200그램짜리는 정말 대형이다. 이 나라에서 나오는 마누카꿀과 여러 과일 맛이 조화된 밀크 초콜릿들이 정말 다양했다. 미국의 허쉬, 스위스의 린트, 독일의 리터 스포트를 훨씬 능가하는 다양한 베리에이션 초콜릿이다. 완전 만족이다.     


아침 호수 달리기 퀸스타운 가든 산책 유람선 타기 멋지고 맛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 완벽한 하루였다. 이제 퀸스타운과 작별을 준비해야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짐 정리를 하고 잘 자기를 기도했다. 내일은 긴긴 여행. 마운트 쿡에서의 트랙킹이 기대된다. 날씨가 오늘처럼 좋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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