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해외 출장을 다녀서 쌓인 마일리지로 동남아시아로 비행기표를 2장 끊을 수 있다고 해서 떠오른 도시가 치앙마이다.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는 퇴사를 하게 될 줄을 몰랐는데 11월 전격 퇴사를 결정한 남편에게 이번 여행은 은퇴기념 여행이 되었다. 자신이 37년째 일하고 있다고, 정말 너무 많이 일해서 이제는 그만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그래도 몇 년만 더 일해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남편은 맨땅에 해딩으로 벤처기업을 만들었다가 회사가 어려워져서 큰 회사와 합병되기도 했다. 합병된 회사를 더 다닐 수 없자 예산에 내려와서 창업을 하고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고 최근 몇 년은 특허 소송업무로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돌연 퇴사를 결심했다. 광고에 나오는 멋진 핸드폰과 노트북 이면에 있는 기술세계의 비열한 전쟁터에서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그는 여기까지 오느라 머리카락이 거의 흰색이 되어버렸다. 노화 시계는 지금도 짹깍짹깍하며 돌아가고 있다. 인생의 한두 해를 더 행복한 시간으로 바꾸는 게 한두 해 월급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데이비드 캐슬러의 책 <의미수업> 1장의 제목에 ‘모든 상실에는 의미가 있다’라고 써 있었다. 상실을 슬퍼하기보다는, 하나를 잃으면 결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되거나 얻을 수 있다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월급생활자의 삶을 상실했지만 쉼과 평화를 얻은 남편에게 첫 선물은 치앙마이라는 시골 마을로의 여행이었다. 치앙마이는 골프 여행으로 유명한데, 우리는 오래된 사원이 많은 작은 도시를 거닐고 야시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이국적인 식당에서 국수와 만두를 먹는 상상을 했다. 무엇보다도 물가가 싸서 여행비용이 적게 드는 게 장점이었다. 1박에 5만 원 정도에 좋은 콘도를 예약하고 20만 원 정도를 환전했다. 여행을 통해 남편의 은퇴를 축하해 주고 싶었다.
치앙마이에는 수백 년 된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원이 너무나 많다. 도시가 사원으로 꽉 차 있는 것 같았다. 태국 여행을 가서 사원 앞에서 찍은 사진들을 많이 본 적이 있어서 태국 하면 사원과 코끼리가 생각난다. 사원의 금과 은으로 된 높은 탑과 수많은 불상은 아름답고 압도적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곳은 도이 인타논이라는 높은 산이었다. 히말라야 끝자락의 산인데 해발 2565m라 백두산만큼 높은 산이 지만 도로가 잘 나 있어서 차로 올라갈 수 있었다. 산에 도착하지 시원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초록의 정글 같은 수목과 수풀에서 싱그러운 향기가 나서 봄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듯한데 무지개를 거느리고 있는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수 아래 서니 물보라가 치고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무지개를 눈앞에 가까이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높은 산에서 저 많은 물이 어떻게 생겨난 걸까 챗GPT가 논문을 작성해 주는 것만큼 경이롭다.
폭포 구경을 하고 고산지역에서 살고 있는 카렌족의 마을에 방문했다. 돼지 닭 개들이 모두 마을을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조금 큰 돼지는 진분홍색 줄에 매여 있었는데 우리가 따로 없고 사람들과 다른 동물들과 같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돼지 한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병아리가 옆에 있어 주는 모습이 귀여웠다. 축사에서 케이지에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료를 먹고 사는 축산업의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개들도 사람들과 방문객을 졸졸 따라다니고 아기 돼지는 동네를 누비며 병아리들과 놀고 있었다.
마음 사람들은 아보카도 딸기 청경채 등 온대 지방의 작물을 키우고 커피도 재배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한가히 앉아 베틀로 색이 화려한 천을 짜고 있었는데 무척 한가로워 보였다. 사람들과 여러 가축이 평화로이 지내는 이 마을의 커피 맛은 동네처럼 맛이 좋았다. 허름해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처음에 나오는 닭구이, 채소와 돼지고기 정도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음식이 끝도 없이 나왔다. 1인분에 200바트 (약8천원)였는데 망고를 곁들인 찹쌀밥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쏨땀이라는 태국 김치는 멸치액젓 때문인지 딱 우리 김치 맛이었다.
먼 나라에 와서 후한 인심과 풍성한 식탁을 대하니 은퇴하길 잘했구나 싶었다. 카렌족은 돈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이 가난한 사람들이 탁발승에게 밥을 주고 무너진 사원의 탑 재건에 기부한다고 한다. 자기 집보다 사원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 입보다 승려의 입을 먼저 생각하는 착한 사람들. 이익만 생각하고 정의를 생각하지 않는 견리망의 인간들이 득세하는 이 세상에서 마치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만들고 살아가는 것 같다 보였다. 기계를 도입하면 더 빠르고 많이 생산할 것 같은 커피도 그냥 들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나보다 타인의 이익과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무래도 그건 나를 사랑하는 존재가 나를 행복으로 채워주었을 때 가능한 것 같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는 역설이 떠올랐다. 카렌족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적 만족과 소유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끝없는 소유욕은 우리를 높은 생산성과 더 높은 연봉을 원하게 만들고 소비자본주의의 쳇바퀴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 더 갖는 것을 포기하고 더 서로를 아껴주면 상대는 충만한 행복감으로 기꺼이 자기를 내어주는 선순환을 고산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고 자아를 실현해야 하지만 자존감과 자아성취를 뛰어넘어 자기를 비울 수 있는 능력은 끝없이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항상 넉넉하게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인 것 같다. 나와 남편은 28년 동안 서로 사랑하며 지냈다. 남편이 은퇴했다고 3식이를 어찌 집안에 두고 살 거냐고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다. 남편이 3식이가 되었으니 나 혼자 밥 먹을 필요가 없고 집안일을 해줄 가사도우미가 생겨 좋다고 사고의 전환을 해보았다
앞으로 노년을 맞이하고 인생의 또 다른 국면을 살아가야 하는 남편에게 시도 한 편 써 주었다. 부부의 사랑은 무지개를 거느린 폭포수처럼 늘 흘러넘쳐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행복을 느끼며 상실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여러 난관을 헤치며 진실로 존재할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폭설이 내렸다. 엄동설한에 베란다로 보이는 하얀 겨울을 보며 37년 일한 남편을 생각하며 몇 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