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지난 주말에 제주도에 다녀왔는데 계속 비가 왔어!
B: 그래? 작년에 내가 갔을 때는 날씨가 엄청 좋았어. 하늘이랑 바닷물 색이 장난이 아니었지.
A: 날씨도 안 좋았는데 팬션이 엉망이었어!
B: 그래? 1박에 얼마였는데?
A: 30만원.
C: 와 제주도가 비싸구나. 설악산은 20만원 내고도 좋았어.
B: 설악산 단풍은 좋았어? 내장산 단풍이 설악산 보다 좋은거 같아.
C: 맞아, 내장산은 팬션도 엄청 싸고 좋더라고
A: ......
이런 대화를 우리는 종종 한다. 상대는 무언가 호소를 하는데 상대의 말에서 나의 경험을 떠올리고 대답을 한다. 겉으로 보기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동문서답이다. 첫 번째 대화에서는 진짜 속상했겠다, 그런데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느냐고 물어봐 주어야 하지 않을까?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이런 식의 대화를 한다. 문장 간의 논리는 있지만 전체적인 논리가 없는 대화이다. 문장간 결합력 cohesion은 있지만, 일관성 coherence가 없는 문장들이다. 물론 대화를 할 때는 논리를 따지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제주도에서 비가 와서 여행을 망쳤다면 나의 여행을 말하기보다는 비가 와서 참 낭패였겠다고 공감을 해주는 것이 적절한 반응일 것이다. 이런 동문서답의 연쇄는 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대화일 때는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두 번째 대화에서 A는 할 말이 없다. 나는 종종 A가 되곤 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를 즐기면 되는데 A가 되면 기분이 상하고 더 이상 말하기 싫어진다.
사람들이 자신이 ‘경청되고 있다’는 경험을 원하지만 실제로 잘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Experience of being heard. 라는 수동태 표현을 보고 나는 이 번역하기 어려운 절묘한 영어의 수동태에 감탄했다. 그래서 나는 1대1 만남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세 사람만 모여도 상대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로 넘어가는 비율이 높아지고 이야기는 달나라까지 갔다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는 것 같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경청이 필요하다. 경청 여기에 모든 문제의 답이 있다. 그런데 경청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보니 많이 힘이 든다. 거기에 상대를 사랑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적절하게 대안도 제안할 수 있는 지식이나 지혜도 필요하니 참으로 힘든 일이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 에너지의 두 배 세 배가 드는 것이 어머니와의 상담이다.
일단 부모는 나의 고객이므로 내 감정을 억제하면서 친절하게 응대해야 하는 약간의 감정 노동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어머니들은 전화도 하시고 우리 집에 찾아와서 공부방에서 얘기를 하기도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자고도 한다. 한 번이라도 이미 만난 적이 있는 어머니들은 내가 커피를 안 마시는 걸 알고 미리 허브티를 시켜 놓고 기다리신다. 내가 찻값을 낸다고 하는 걸 못하게 하려는 배려다. 이런 따뜻한 대접을 받을 때면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어떤 과외선생님들은 부모와의 상담은 전화로만 하고 절대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수업 이외에 부모 상담시간도 과외 선생님의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들 중 어떤 분들과는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 나처럼 아무 연고가 없는 장소에서 과외를 하다 보면 그런 어머니들이 좋은 친구도 되고 나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런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들과 상담을 하고 나면 침대에 누워 쉬어야 할 정도로 에너지가 방전된다. 심리학자들의 1회기당 상담시간은 60분이라면 과외 선생님의 상담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길면 2시간도 할 때가 있다. 어머니들은 자식의 문제를 가지고 오지만 자신의 삶도 덧붙여 이야기해준다.
어머니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는 아이를 이해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된다. 학교 담임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과 상담을 한다면 하지 않을 얘기들 즉 시부모님, 형제, 자매, 조카, 친구들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어린 시절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분과 좀 친해진 듯한 느낌이 들고, 어머니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그래서 과외 선생님은 private tutor다. 공부하는 장소가 학생의 집이거나 선생님의 집이다 보니 개인 공간을 서로 알게 되고, 공간 뿐 아니라 사적인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은 교육에 크게 도움이 된다. 게다가 어머니들과 상담을 통해서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나 최근 몇 년 동안의 학습상태를 자세히 알게 된다. 영어뿐 아니라 다른 과목에 대한 상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아이의 문제로 돌아왔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 좀 더 바짝 긴장해서 공부해야 할지 조금 느슨하게 여유를 가지고 아이를 관찰하면서 공부해야 할지 정할 수 있다.
고객에게 맞추어진 customized 된 수업이 가능하고, 선생님과 친밀한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대형 학원에 보내지 않고 개인과외를 선택하는 것이다. 부모와의 상담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경청의 연습장이다. 경청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선생님을 부모님들은 원하기 때문에 경청을 하면서 공감을 한다면 부모의 마음을 살 수 있다.
어머니들은 주로 아이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서 나를 찾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도대체 뭘 공부하고 있는지 또는 성적이 잘 안 나왔는데 왜 그런 건지 알고 싶어 한다. 또 아이가 숙제를 잘 해오는지 수업을 잘 이해하는지 물어보신다. 내가 아이들의 상황에 관해 설명할 때 모든 부모는 경청한다. 심지어 수첩에 적는 분도 계신다. 내 말을 가장 열심히 들어주시는 분이 아마도 어머님들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을 때 과외선생님인 나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많다.
예를 들어 수학을 너무 싫어해서 사교육을 받는 것을 그만두었다면 어머니는 애가 타고 아이는 행복해한다. 그럴 때 수학 성적이 바닥이면서도 사교육이든 인터넷 강의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보다 선생님인 내가 그래도 수학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해주면 아이들은 내 말 대로 수학 사교육을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쩌면 모든 국어 영어 수학 모든 과목을 두루 살피고 학생의 학습 전반에 대한 코칭을 해 줄 수 있을 때 선생님을 더 신뢰한다. 어머니와의 상담이 학생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고 오랫동안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어머니와의 상담하는 시간을 아까워한다면 장기적으로 학생을 가르칠 수 없다. 성적은 학생, 선생님, 어머니 3자의 노력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