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교직원들은 학생들로부터 손편지를 제외하고 아무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너무 많은 선물이 뇌물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선생님께 아무것도 드릴 수 없다는 건 학생에게 슬픈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박탈한 느낌이 든다. 과유불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황금의 중간 지점은 말로 가르쳐줄 수가 없다. 과하지 않고 모자라지 않은 그 중간 지점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정량화할 수 없고 말로 딱 선을 그어 말할 수 없는 이 미묘한 진리는 교과서가 아니라 삶의 경험 통해 알 수 있다. 감사의 표현으로 선물을 하는 것도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하고 선물의 액수를 결정하는 고도의 사회적 기술이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선물하는 것은 아부나 뇌물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고 표현이니까 오히려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의 의도와 압력이 들어가서는 안 되겠지만.
평소에 아이들에게 주려고 과자나 초콜릿을 늘 준비해서 먹을 것을 많이 주고 맛있는 케익이나 초콜릿이 생기면 아이들과 나눠 먹는다. 공부하던 교재가 오랜 시간에 지나 끝나게 되면 책거리라고 해서 떡볶이, 피자, 치킨 등을 같이 먹거나 마라탕 같은 신요리를 배달시켜 먹기도 한다. 코로나 19로 같이 먹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요즘은 그냥 먹는 것을 나눠주면서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 애쓴다. 사람과 사람은 먹는 데서 정이 생긴다. 간혹 내가 주는 간식을 절대 안 받는 학생도 있는데 대부분 내성적이고 차가워 보이는 (실제로 따뜻한 아이일 수 있지만) 성격의 까도남 까도녀 스타일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나의 과자도 안 먹을 뿐 아니라 나의 농담에도 아주 조금만 웃거나 반응이 없다. 이런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은 힘들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상호활동을 많이 하면서 같이 먹고, 웃고, 우울해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그러다 보면 카톡에 생일이라고 뜨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마음이 생기나 보다. 그래서 아이들은 내 생일이 되면 편지를 쓰거나 작은 선물을 내놓기도 한다. 나랑 공부한 세월이 길수록 아이들은 소소한 것들을 가지고 온다. 내가 스누피를 좋아한다는 것을 스누피가 그려진 각종 상품을 가져온다. 올해도 스누피 담요, 수첩, 유리컵 등을 받았다. 초코 딸기 우유에 스누피가 있다고 사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 많은 스누피 굿즈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지금은 고3이 된 나연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나에게 준 스누피 잉크펜 4색 세트였다. 마치 연애편지를 부끄럽게 헤어지는 순간에 건네듯 수업 끝나고 집에 가려는 순간 주머니에서 꺼내 주고 갔다. 너무 예쁜 스누피가 그려진 이 펜을 다시 사고 싶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어디서 샀느냐고 살짝 물어보았다. 입수된 사연은 이러했다.
친구가 스누피 펜 세트를 가지고 있는 걸 본 순간 내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그걸 얻기 위해 자기가 가장 아끼는 비싼 샤프와 펜을 교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어떻게 펜을 얻게 되었는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무심히 나에게 주고 갔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버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물건을 얻어 내고는 자랑도 하지 않고 선물한 소녀! 한 소녀의 잊을 수 없는 선생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렇다면 선생님으로서 잊히지 않으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탁월한 선생이 되는 수밖에 없다. 탁월함은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럼 어떻게 탁월해지는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면서 동기부여를 하여 공부는 재미없어도 수업을 받으러 오는 것을 좋아하도록 부단히 심리학 교육학을 뒤지고 영어 기출문제도 열심히 풀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에게는 보람 있고 하고 싶은 일이다.
최근에 만난 중학교 1학년 은정이는 나를 많이 좋아한다. 은정이는 한 달 전쯤 학교에서 비즈공예를 했는데 English Teacher라고 쓰여 있는 팔찌를 만들어 왔다. 스펠링 비즈로 하나하나 끼워서 보랏빛 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내 생일에는 예쁜 꽃이 달린 책갈피와 스누피 수첩과 손글씨 편지를 에이스 크래커 상자 위에 붙여서 선물을 한 아름 나에게 안겨 주었다. 편지에 올해는 부족한 자신의 선물이지만 내년 후년에는 더 좋은 선물을 해주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 편지의 백미는 바로 이 부분이다.
“전 선생님과 하는 영어가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학생에게 내 수업이 ‘재미있다’라거나 90분 시간이 너무 금방 간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재미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는 비결은 자신이 교재를 고르게 해주는 방법인데 은정이는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대본과 월트 디즈니와 스티브 잡스의 짧은 위인전을 같이 공부했다. 흥미가 있는 이야기들을 읽고 읽은 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영어의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 보인다. 듣기 평가문제집도 풀지만 때로는 발음이 분명한 원어민의 연설문이나 TED 영상도 가끔 듣기 교재로 쓴다. 영어로 된 재미있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시간과 진짜 원어민의 말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시간이어서 그런지 재미없는 문법도 그럭저럭 헤쳐나간다. 고등학생이 되면 내신 시험준비와 수능준비로 입시 영어를 하다 보니 이런 스스로 원하는 교재를 공부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교재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중학생들의 특권이다. 대신 고등학생들과는 진로에 대해 틈틈이 이야기하면서 머리 아픈 지문을 돌파한다.
중학교 1학년 은정이가 ‘영어가 재미있어요라’고 했다면 고3이 되는 나영이와 단미는 “오늘 하루라도 걱정 없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라고 카드에 썼다. 얼마나 걱정이 많았으면 나에게 단 하루라도 걱정 없이 지내라고 했나 싶어 마음이 짠했다. 짠하게 하는 글과 웃음이 나오게 하는 글이 모여서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50대 중반인 나이에 20대 딸이 있는 내가 10대 아이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공부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아이들이 나는 마냥 귀엽기만 하다. 내 딸의 어릴 적 모습이 겹치면서 다시 내 딸을 가르칠 수만 있다면 그때 실수를 하지 않을 텐데 하는 후회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교육의 기술은 딸을 가르친 경험에서 우러나올 때가 많다. 너무 어렵다고 뒤로 자빠지면 “그래 거기까지 한 것도 장하다! 다음에 하자”라고 과감히 밀어두면 아이들은 마음에 안심이 돼서 수업에 집중한다. 못 그리는 그림이라도 화이트보드에 졸라맨 이라도 그리면서 설명을 해주면 아이들은 좋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탄 소년 같은 아이돌을 주어로 하거나 치킨을 목적어로 해서 예문을 만들면 한참 즐거워한다. 예문을 만들 때 빈칸에 아무거나 넣어보라고 하면 치킨 떡볶이 마라탕만 나오지만 나는 늘 받아 적어준다. 한편 딸에 대하는 태도보다 두 배 세배 더 관대하고 친절한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고 존중해 주려고 노력한다. 가르쳐 준 것을 또 모르고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하면 속에서 열불이 나도 <연을 쫓는 아이>에서 주인공 하산이 자기의 친구 아미르에게 한 말을 떠올린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아미르가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 하고 잘린 연을 쫓아 달려야 하는데 하산이 아미르의 연을 위해 천 번이라도 달려주겠다는 말이다.
천 번까지는 아니어도 열 번을 스무 번을 화내지 않고 설명해 주는 힘은 생일선물을 주는 학생과 간식을 주는 선생님 사이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