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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delion Dec 27. 2021

크리스마스 때 생각나는 설레는   기억

런던 winter wonderland


그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10월 대학원 입학 후 첫 리서치 수업 때였다. 리서치 수업은 그해에 입학한 같은 학부 대학원생 및 박사 예비 과정 학생들이 듣는 수업이었다. 새 학기 시작 전 한국에 있다가 다시 들어가는 비행기표를 제 날짜에 구하지 못해 오리엔테이션을 참석 하지 못 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학부의 회장이 되었다는 것은 메일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얼굴은 모르고 있었다. 첫 리서치 수업 후 대학원 학부의 학회장이 인사를 했다. 그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누가 봐도 멋지게 생긴 독일 남자였다. 그와 같이 다니던 구릿빛 피부를 한 브라질에서 온 남자도 잘생겨서 그 둘은 모든 여자들이 눈여겨보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나는 속으로 독일인 그와 친해졌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이상형에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그렇게 몇 주가 흘렀을까? 우연히 그와 그와 같이 다니던 브라질 남자와 근처에 앉게 되었고 수업 특성상 교수가 옆사람들과 의견 교류하라고 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날도 교수가 주제 던져 주고 같이 이야기해 보라는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 남자들과 이름이 뭔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얼굴을 익히고 1주일에 한번 있는 그 시간을 나는 내심 기다렸다. 그를 만날지 모를 설렘에...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전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툭 쳤고 쳐다보니 바로 그였다. 그는 자기 자리가 내 앞쪽 대각선 방향 쪽이 있었고 자기를 못 봤냐며 말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아쉬웠던 나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먼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도서관에서 만나서 반가웠다고 그도 나에게 반가웠다고 하고 우리는 대화를 이어나갔었다. 그다음은 어떻게 우리가 도서관 버디가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그 이후 그와 나는 수업이 있는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연락하며 같이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가고 같은 수업이 있는 날은 하루 종일 둘이 같이 보냈다. 그러다 석사 논문 제출 기간이 다가 올 수록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가서 점심 먹고 저녁까지 공부하다 집에 오는 생활을 그와 함께 했다. 때로는 뭔지 모를 의견차로 싸우기도 했지만 난 점점 그에 대한 마음이 커가는 것을 느껴갔다. 그 마음이 커져 갔던 건 아마도 런던의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하는 4월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의 이미지는 항상 맑은 화창한 날, 특히 파머 마켓이 열리는 목요일에 점심을 사서 공원 혹은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밥을 먹는 동안 그의 옆모습을 쳐다보고 설레며 이야기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나도 점점 그가 좋아지고 있을 무렵 그가 하는 헷갈리는 행동들 때문에 내 마음은 갈수록 그 파장의 범위가 커져가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누르기 힘들어져 갔다.  이 사람도 날 좋아하고 있는지 나만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한 혼란이 왔다. 런던에 가기 전 너무도 힘든 연애를 경험해서 난 더 이상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설레고 흔들리는 마음을 무시하고 싶었고 그냥 우린 친구다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며 커져만 가는 마음을 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손잡고 싶어서 손 크기 대보자고 하는 수작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응해 주고 오전에 만나서 분명 허그를 했는데 밥 먹고 도서관에 들어와 앉기 전 허그 하자는 이해할 수 없는 허그 상황을 받아 주었고 학교 밖에서 만나서 어디 가자고 하면 같이 가주기도 하였고 점심, 저녁을 맛집을 찾아갔고 장 보러 마트도 같이 갔다. 그리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자주 가던 해롯 백화점 근처에 있는 성당도 같이 갔다. 신자도 아니었던 나는 미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갔다. 미사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가서 공부를 하며 주말에도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분명 우린 친구였다. 매일 붙어있는 친한 친구이며 조금은 이상한 친구, 친구 아닌 친구 같은 뭐 이상한 관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학교 카페테리아 대신 토튼험코트로드 역 (Tottenham Court Road st) 근처에 있는 일본 국숫집으로 밥을 먹으러 갔고 점심을 먹고 스벅에서 커피를 사서 여느 때처럼 도서관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의 날씨는 매우 좋았으며 난 흰색 반팔 폴로 티셔츠에 7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내가 캐주얼하게 입고 오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그렇게 입고 가는 날은 예쁘다고 말하곤 했다. 그날도 점심 먹고 학교 도서관에 다다랐을 무렵 그는 나에게 말했다. 'Will you marry me?'라고 너무 놀란 나는 'what?'이라 대답했고 학교 건물로 들어섰다. 우린 사귀지도 않았고 어떠한 스킨십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결혼하자고??? 이 말을 듣고 난 바로 도서관 1층 로비로 들어왔고 아직 커피가 남아 있던 나는 다 마시기 위해 1층 로비에 앉았다. (커피를 들고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다.) 그도 같이 앉았고 다시 그가 나한테 말했다. 'Will you marry me?'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농담이겠지? 농담이야.. 반지도 없는데 왜 저래? 뭐지? 난 뭐라 답하지? 머릿속은 하얗게 되었고  난 이렇게 답했다. 'sounds good' 이렇게 말하고 남은 커피를 원샷하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도 날 따라 들어왔고 그 뒤부터 우린 한마디도 안 하고 공부만 했다. 그런데 난 너무 혼란스러워서 공부가 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공부를 한 건지 고민을 한 건지 모를 시간을 보내고 먼저 간다는 말을 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아직도 이 말은 미스터리이다.

그날 이후 난 며칠 동안 도서관을 안 갔고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결혼 하자는 말은 농담으로 하는 거 아니라고 그는 미안하다는 짧은 답장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난 더욱 커지는 마음을 그렇게 육체적인 거리를 두며 다 잡아나갔다. 그 후 나는 석사 후 박사를 포기해야만 하는 결정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박사 과정을 우리 학교에 남아 계속 공부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박사를 할 거냐 말 거냐 한국엔 언제 가냐는 말로 날 더욱 괴롭게 했다. 너와 이별도 해야 하고 한국에도 가고 싶지 않고 박사까지 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상황이고 그 투자 대비 난 그만큼 벌어 들일 수 있는지 온갖 생각과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들이 너무도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현실을 마주할 생각 만으로도 난 정신이 없었다.  그는 만날 때마다 궁금해하고 메시지 보내서 같은 질문들을 매일 해댔다.  결정하는 데 특별한 다른 이유가 널 힘들게 하느냐는 끊임없는 질문에 그에게 난 너무도 화가 나기도 짜증이 나기도 하고 해서 이 질문에서 벗어나고 싶어 메시지를 보냈다. '너 나를 여자로 좋아하니?'라고, 그는 친구로서 좋아한다고 했고 그래서 난 말했다. 여자로서 좋아하는 거 아니면 더 이상 나한테 나의 진로 방향에 대해 묻지 말라고 매몰차게 말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마주쳐도 피해 다니고 만나지 않았다.


석사만 하고 런던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나니 그와 뭔가 이별의 말을 하고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연락을 했다. 떠나기로 결정했고 가기 전 밥 먹자는 말에  그는 흔쾌히 만나자고 했고 그와 마지막 점심을 먹고 진한 허그를 하고 기숙사에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뭔가 아쉬운 것이 있었으나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 까?라는 생각이 날 지배했고 어차피 런던을 떠나면 평생 못 볼 사람이 될 수 도 있는데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고 난 바로 다음날 그는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독일로 가야 했고 우리에겐 다시 만날 시간적인 여유는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뭔가 찜찜한 상태로 난 2015년 12월 30일에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뭔가 마음속에 아쉬움이 있던  나는 나의 감정을 그에게 전달하기로 마음먹고 히드로 공항에서 그에게 고백의 메일을 썼다.  그것으로 내 마음을 그리고 런던을 떠나기 싫은 미련스러웠던 마음을 히드로 공항에 버렸다. 나도 모르게 널 좋아했던 마음이 커져 갔고  런던에서 힘들 때 옆에 있어줘서 고마웠다고 나의 설레고 아픈 감정들을 던지고 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메일을 본 그는 메일 봤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어떠한 말이 무슨 소용일까 싶어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은 채 그와 썼던 메신저 앱을 지워 버렸고 난 치열한 한국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그의 존재를 잊어 갔지만, 그동안 직장 생활하며 만났던 연애랑 달랐던 그와의 설레던 시간들이 잊히지가 않았았다. 나이 들어 다시간 학교였지만 난 그와 있을 때 나의 나이를 잊었고 대학생 때의 첫사랑을 하는 그런 설레는 마음들이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서도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그는 내 기억에서 강제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그러다 2018년 런던을 미치도록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사과정 하고  있는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런던 갈 예정이니 볼 수 있겠냐고 그는 내가 도착하는 3일 전에 독일로 돌아간다고 런던 여행 잘하고 가라고 연락이 왔다. 너무도 안타까웠지만 그의 스케줄을 묻지 않고 비행기표와 휴가를 정해 버린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런던에 도착해서 학교 근처도 다시 가고 그와 밥 먹던 공원에서 앉아서 그때를 생각하기도 하고 그와 함께 갔던 성당에 가서 앉아 있다가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고 한참 눈물을 흘리다 한국에 가면 꼭 성당에 갈 것을 스스로 다짐한 후 런던을 떠났다.

여행을 마치고 예비신자 등록을 했고 수녀님과 일대일 면담을 할 때 수녀님이 물어보셨다. 어떻게 신자가 되기를 결심했냐는 말에 유학 시절 친구와 성당을 갔었고 최근 그 성당을 다시 갔는데 나도 모르게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신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내 말을 다 듣고 계시던 수녀님이 말씀하셨다. 세례 받거든 꼭 그 사람한테 연락해서 세례 받은 소식을 들려주라고 그 사람이 너를 여기로 이끈 것이라고... 천주교 신자가 된 다음에도 바로 그에게 말하지 못하다가 크리스마스에 '크리스마스 니까'라는 생각으로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세례명도 받았다고 메일을 받은 그는 나와 연락하고 싶다며 자기 독일 번호를 알려 주었고 그 번호로 그와 쓰던 메신저 가입을 다시 하면서 몇 년 만에 그와 연락을 시작했다. 그는 너무도 기뻐했으며 그전까지는 내 한국 이름으로 날 부르다 세례명을 듣자마자 날 세례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그와 채팅을 하며  이미 날씨 좋았던 런던의 봄으로 그와 학교  공원에서 초밥 먹던 바람 불고 평화로웠던 그날의 내가 되었으며 설렘으로  이끌어 주었던 그의 반짝이는 얼굴이 생각났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현재의 그와 과거의 그는 현재 분명 다른 사람이었으며 우리는 그냥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누군가로만 느껴졌다.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대화의 처음에는 너무도 설레다가  대화의 횟수가 잦아지고 연락이 이어지면서  그와의 대화가 예전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아님을 인지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예전 같은 설렘이 없어서 인지 거리로 인해 혹은 내가 만날  있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인터넷 세상에서만 만날  있는 사람이라서 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 같이 않고  이상 설레지도 않는 마음이 들어 씁쓸하다. 내가 늙어서 인지  설렘의 유통기간은 이미 끝나서 인지....

그래도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그가 생각났다.

올해가 가기 전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그때 나의 유학생활에 빛이 되었던 그에게....

'잘 지내고 있니? 패트릭'


#크리스마스#설레임#유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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