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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delion Feb 04. 2022

할아버지에 대한 고정관념

나, 다니엘 브레이크와 오베라는 남자를 보고 


올해 설에도 어김없이 친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매해 설날과 추석에는 빠지지 않고 꼭 성묘를 다녀온다. 다녀오는 길에는 가끔 그분들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하지만 나에겐 할아버지는 친할아버지 대한 기억이 다이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결혼하기 전 돌아가셨기 때문에 난 외할아버지를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할아버지 하면 난 그냥 친할아버지가 바로 떠오르고 그 이미지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매우 고집스럽고 깐깐하며 무서운 존재로써 남아 있다. 나는 어릴 때의 기억이 많이 나는 편인데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7살 무렵의 할아버지가 나에게 한말이 최초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기억이 아름 다운 기억으로 남아서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무서웠고 싫었던 기억으로 남아서 아직 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여름방학이면 늘 할아버지 댁에 갔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이 여름쯤이어서 아빠의 모든 형제들은 여름이면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해 드리기 위해 모였었다. 그날도 모든 가족이 모였고 나는 사촌들과 마당에서 뛰어놀다 넘어져 무릎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피를 본 나는 집이 떠나가라 울어 댔고 그 소리가 듣기 싫으셨는지 할아버지는 날 방으로 불러 말씀하셨다. '넌 아이들 중 나이가 젤 많은 애가 그렇게 크게 울면 되니? 연장자인 너는 어른스럽게 보여야 한다. 그만 울어라' 이런 말을 하셨던 걸로 기억난다. 고작 7살 아이가 그런 말을 이해할 리도 없고 아파서 우는데 그렇게 말을 하셨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때부터 난 할아버지가 더 무서웠고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게 너무도 싫었다. 그게 혼날 일이었을까?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나는 7세 아이들을 보면 할아버지의 말을 그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을 나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친할아버지는 손녀에 대한 사랑이 없는 매우 보수적이고 꼬장꼬장 한 노인이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얼마 전 본 오베라는 남자에 나오는 오베 할아버지의 첫 등장을 보며 나의 친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또 다른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나 다니엘 브레이크' 영화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두 영화가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할아버지와 비교하게 되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뚜렷한 남아 선호 사상이 남아 있던 분이었고 큰아들인 우리 아빠가 아들이 없다는 것에 항상 불만이 있으셨던 분이었다. 난 당연히 할아버지의 사랑 같은 건 느낄 수도 없었다. 나에게는 냉정한 할아버지였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오베 할아버지처럼 이웃과는 잘 지내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안에 할아버지는 오베 할아버지처럼 츤데레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절대 아녔을 것 같다. 오베 할아버지 다니엘 할아버지를 보며 난 할아버지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을 보았다. 다니엘 할아버지도 고집스럽고 깐깐하긴 했지만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 자기가 돈이 없고 어려워도 미혼모를 도와주려고 애썼으며 오베 할아버지도 겉으로는 까칠한 척 하지만 이웃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경질 내며 그들을 도와주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따뜻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되었다. 이 두 할아버지를 보며 할아버지도 사랑이 있는 존재구나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구나라고 느꼈다. 나에게 단 한 번도 칭찬을 한적도 없고 날 따뜻하게 안아준 적도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도 없는 할아버지여서 어쩜 할아버지들은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다니엘 할아버지와 오베 할아버지에게는 할아버지의 정을 느꼈다. 이웃의 아이를 위해 자신이 만들고 써보지 못했던 아기 침대를 선물하기도 한 오베 할아버지...  마을에 골목에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강력하게 막아내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그 고집을 지켜 나가는 오베 할아버지를 보며 처음엔 왜 저럴까 싶었지만 젊은 시절 그가 경험했던 열차에 치어 돌아가신 아버지와 차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던 아내 때문이라도 누군가 동네에서 사고 나는 것을 막고 싶어 모두에게 욕을 먹으며 자신의 방식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오베 할아버지가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모습이 이해되었다. 다니엘 할아버지도 자기는 돈이 없어 힘들지만 몸까지 팔아가며 생활비를 벌려고 하는 미혼모에게 그일 하지 말라고 돈을 주고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남인데도 저렇게 잘 챙겨 주며 지낼 수 있구나를 느꼈다. 이 두 외국 할아버지를 보며 모든 할아버지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왜 나의 할아버지는 손녀를 따듯하게 안아 주지도 따뜻한 말 한마디 안 하고 그렇게 대하셨을까?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뵈었을 때 단 한번 '너 예쁘구나'라는 한마디를 하셨다. 그래서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매우 기분이 이상했고 그날 이후 얼마 있다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마 본인이 아셨던 것 같다. 그날이 마지막으로 나를 보는 날이라서 그 말을 꼭 해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말이 없었더라면 난 나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7살 때 경험한 안 좋은 기억으로 계속 남아 있었을 텐데 그날의 그 말 때문에 그래도 나를 예쁜 큰손녀로 생각하고 가셨구나 라는 생각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안 좋은 기억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주고 가셨다. 

지금은 아빠가 할아버지 나이가 된 지 오래되었고 아빠는 본인의 아버지처럼 고집스럽고 꼬장꼬장 한 노인이 되지 않으셨다. 나에게 다정한 아빠이시기 때문에... 만약 아빠에게 손녀 손자가 있다면 나의 할아버지처럼 대하거나 하지 않으셨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겐 비록 자상하고 따뜻한 할아버지가 없었지만 다정한 아빠는 있고 그런 다정한 아빠를 할아버지로 만들어 들이지 못한 게 죄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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