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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로 걷기 Feb 01. 2024

캄보디아 속 이야기 2

가장 위대한 앙코르와트와 가장 악명 높은 킬링필드

1.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를 방문하고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태국과 베트남 지역을 아우르는 인도차이나의 맹주였던 크메르제국이 남긴 인류의 문화유산 ‘앙코르와트’가 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 하는지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제국의 전성기인 12세기 초에 수리야바르만 2세에 의해 창건된 힌두교 사원으로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에게 봉헌되었으나 30년 정도 후부터 불교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다.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에서 발견되었거나 발굴되지 않은 1,000여 개가 넘는 사원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옛 크메르 제국의 수준 높은 건축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이며 국기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캄보디아의 상징이기도 하다.     


앙코르와트는 전체적으로 5km가 넘는 해자와 3.6km의 외벽, 그리고 사원 본체로 구성된다. 해자는 폭이 무려 190m에 이르고 깊이는 4m 정도로 깊으며 외벽은 안쪽에는 3개의 회랑들이 벽을 이루어 있고, 사원 정중앙에는 4개의 탑이 중앙 탑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외벽은 총 82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둘러싸고 있는데, 지어졌을 당시 이 안에 빽빽하게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 하니 가히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앙코르 와트는 그 규모뿐만 아니라 지극히 정교한 건축 기술과 벽화들로도 매우 유명한데 힌두교 신화나 불교 설화의 내용들을 새겨놓은 가로 215m, 세로 187m의 1층 회랑은 실제로 보니 공백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빽빽이 새겨진 부조들이 모두 다른 얼굴과 모양을 하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무튼 이렇게 위대한 문화유산을 직관하고 나니 운송수단도 건축장비도 변변하게 없었던 그 시절에 40km 이상 떨어진 채석장에서 무거운 돌들을 운반하는 일과 거대한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일, 그리고 정밀하게 조각을 하는 작업 등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담겨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당시 평균수명이 50세 전후라고 하니 그 시절에 그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힘을 쓸 수 있는 나이가 되어 평생 동안 노역에만 시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37년 동안 수 만 명의 서민들의 삶이 녹아져서 만든 유산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900여 년이 지난 지금 앙코르와트는 불가사의로 통할 만큼 위대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사람들의 희생으로 그들의 후손들이 제일 자랑스러워하는 유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 가난한 나라의 가장 큰 수입원이 되고 있다.     


2. 킬링필드

     

캄보디아 씨엠립의 킬링필드를 돌아보며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같은 민족에 의해 200만 명 이상을 살육한 비인간적이 야만과 살상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의 양민학살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유해가 있던 이곳에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납골사원이다. 유리벽 안에 갇힌 수백 개의 실제해골을 보니 충격 그 자체였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주 정권이 1975년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린 뒤 1979년까지 4년간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크메르루주의 수장 폴 포트는 1975년 4월 미군의 베트남 철수로 약화된 캄보디아의 친미 론 놀 정권을 몰아냈다. 당시 폴 포트가 정권을 잡자 론 놀 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한다.      


폴포트는 프랑스 유학 시절 사회주의에 심취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일종의 열성 엘리트출신으로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는 이른바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홀로코스트 정책을 펼쳤다.     


새로운 농민 천국을 구현한다며 공동농장을 만들어 모든 사람을 농촌으로 강제이주 시키고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거 론 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 아래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200만여 명을 살해하였다.     

 

영어를 할 수 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다,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 한다. 또한 펜을 가졌다는 이유로, 책을 똑바로 들 줄 안다고, 시계를 볼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지식인으로 몰려 처형된 사람과 배가 나왔다는 이유로 부르주아로 몰려 처형된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크메르루주의 만행은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종결되었다. 베트남군대와 이를 지지하는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의 공격으로 크메르루주는 전복되었고 이후 캄보디아에는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헹삼린정부가 들어섰다.     


1993년 9월 총선의 결과로 캄보디아는 시아누크를 국왕으로 하여, 제1당인 민족연합전선의 지도자 노로돔 라나리드가 제1총리로, 그리고 프놈펜정권의 총리였던 훈센이 제2총리로 선출되어 정부를 구성하였다. 이후 라나리드와 정치적 대립을 하던 훈센은 쿠데타를 일으켜 1998년에 단독수상이 되었고 2023년까지 총리를 역임하였다.           




이상 짧게 살펴본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의 단편적 역사 등이었다. 1편 스롱피아비 신드롬에서 언급했었던 무엇이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일까?     


앙코르와트는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왕을 신격화하는 노동의 결과물이고, 킬링필드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공산주의 이념아래 희생 된 사건이고, 스롱피아비 신드롬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의 현실을 탈출해서 만들어낸 성공스토리이다.     


앙코르와트는 한 개인의 종교적 숭배를 위해 무려 37년간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 만든 사원, 결국 왕을 신격화하고 그의 업적을 치켜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시절 사원을 짓기 위해 동원되었던 수 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악몽이었을 것이다.      


킬링필드는 폴포트를 중심으로 한 크메르루주가 단순히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한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기준을 만들어 죄 없는 동족을 살해하고 공동농장에서 강제노동을 강요했지만 정작 그 기준에 부합하는 자신들은 예외적인 특권을 가지고 부유한 삶을 향유하였다.     


스롱피아비 신드롬의 경우도 킬링필드 사건 이후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잡은 훈센 총리와 그의 추종자들이 그들만을 위한 정치를 펼친 결과이다. 비옥한 토지 및 천연자원 등 주변 어느 나라보다 여건이 좋은 캄보디아가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빈국에 머물고 있기에 생겨난 현상이다.     


훈센 전 총리는 38년간 정권을 잡은 것도 모자라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현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훈센일가의 재산은 세계 10대 부호보다 더 많을 것이라 한다. 가장 큰 기업체들도 소유하는 등  경제뿐 아니라 정치, 군사 등 나라의 전체를 한 일가와 그 추종자들이 좌지우지하는 동안 스롱피아 같은 서민들의 삶은 퍽퍽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앙코르와트, 킬링필드 그리고 스롱피아비 3가지 이질적 단어들을 관통하는 한 가지는 ‘서민의 아픔’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적 지도자의 그릇된 생각과 행태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아픔과 희생을 뒤따르게 하는지를 잘 알려주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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