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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로 걷기 Jan 09. 2024

캄보디아 속 이야기 1

 스롱피아비 신드롬

유난히 추웠던 지난 12월 중순에 따뜻한 남쪽나라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여행 전 캄보디아 하면 떠오르는 3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세계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 두 번째는 동족에 의해 많은 국민이 학살된 킬링필드 그리고 세 번째는 한국에 시집을 와서 신데렐라처럼 최고의 당구선수가 된 스롱피아비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캄보디아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면서 900여 년 전 건설된 앙코르와트, 40여 년 전 일어난 킬링필드 그리고 현재 속의 스롱피아비라는 시대가 다른 이질적 3개의 단어들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공통점은 2편에서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 이야기 후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시대의 순서를 바꾸어 요즘 캄보디아에서 한국의 김연아로 불리고 있는 스롱피아비 신드롬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당구선수는 스롱피아비이다. 요즘 종편의 영향으로 TV 채널이 다양해져서 가끔씩 채널을 돌리다 당구 경기를 볼 수 있는데 스롱피아비 선수가 나오면 채널을 멈추고 시청을 하곤 한다.


내가 피아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가 보여주는 진정성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당구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누구보다 높은데 특히 경기에 임하는 진지함과 성실함 그리고 겸손함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매료되는 이유인 듯하다.


스롱피아비는 2010년, 20살이 되던 해 28살 연상의 남편을 따라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타국 생활에 많은 외로움을 타던 피아비는 어느 날 남편을 따라 당구장에 갔다가 처음 큐를 잡았는데 뜻밖에 재능을 발견한 후 남편의 권유를 받고 본격적으로 당구의 길로 들어섰다 한다.


남편은 살림은 본인이 할 테니 당구 연습만 하라며 당구 선생님까지 수소문해서 구해주고, 연습 때나 시합이 있을 때는 항상 차로 태워다 주고 경기 영상을 구해 분석을 도와주는 등 적극적으로 외조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국어가 서툴러 배우는 데 애를 먹었으나 말이 안 통하면 그림을 그려가며 기술을 익혔고 하루 12시간씩 연습에 매달렸다고 한다. 오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20시간을 연습한 적도 있을 정도로 독하게 연습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구계에 입문하고 몇 달 만에 동네 당구계를 평정한 피아비는 2014년부터 전국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이후 2017년 1월 정식으로 프로선수 등록을 한 후 국내 대회에서 3번 우승을 하고 데뷔 후 5개월 만인 2017년 6월 국내 1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더니 드디어 23년 3월 LPBA 월드 챔피언십에서 월드 챔피언에도 우뚝 올라섰다. 이 대회 우승으로 스롱피아비는 정규 투어, 팀 리그 및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라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지난 3월 월드챔피언쉽에서 우승한 스롱피아비 선수


그녀의 만화 같은 이야기는 캄보디아에서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의 김연아, 박세리 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다. 그리고 제2, 제3의 스롱피아비를 꿈꾸는 피아비 신드롬이 일고 있다고도 한다. 


캄보디아는 모계사회이고 남자가 지참금을 처가에 지불해야 결혼을 할 수 있다 한다. 몇 년 전 2~3,000불에서 최근에는 5,000달러 정도로 지참금이 인상되었다 하는데 평균 월 100달러 정도의 낮은 임금으로 빠듯한 생활비를 충당한 후 모으기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라 젊은 남자들이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한다.


현지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한국 남자는 지참금도 후하게 지불하고 결혼 후에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캄보디아 남자들과 달리 가족부양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에 캄보디아 여자들이 한국 남자를 선호하게 되었단다. 


이를 반영하듯 캄보디아 여자들의 외국 남자 결혼 비율 중 한국 남자가 수년 전 5위에 불과했으나 최근 1위에 올라섰다 한다. 아마 피아비의 성공 스토리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사실 피아비의 어린 시절 꿈은 의사였는데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6시간 떨어진 캄퐁참이라는 곳에서 매일 손톱에 때가 빠질 틈 없이 아버지 감자 농사일을 도우며 살았다 한다. 


피아비도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려고 28살 연상의 외국 남자와 결혼을 선택했을 터이고 다행히 한국에서 배려심 많은 남편과 주변의 도움과 본인의 노력이 더해져서 신데렐라 스토리를 완성했지만 한국으로 시집온 대부분의 캄보디아 여자들은 언어와 문화 차이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들은 그런 결혼을 하려는 걸까? 일반인 한 달 월급이 평균 100달러, 대학을 졸업해야 2~300달러 정도인데 5,000달러가 넘는 지참금은 캄보디아에서 매우 큰 금액이기에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의 폭이 크지 않은 착한 캄보디아의 딸들에게는 큰 유혹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출구가 없는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언어도 문화도 다르고 나이 차도 많이 나는 외국인에게 시집을 가는 그들이 이국으로 떠나는 발길은 얼마나 무거울까, 또 그녀들을 보내는 가족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현지에서 여러 차례 들은 얘기로는 캄보디아는 선택받은 땅이라고 한다. 인접한 인도차이나반도의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의 석회질 토양과 달리 캄보디아는 3모작이 가능한 황토 흙의 대지를 갖고 있다 한다. 


실제로 버스로 수도 프놈펜에서 앙코르와트가 위치한 씨엠립으로 이동하는 6시간 동안 산을 거의 볼 수 없었고 오직 비옥한 평야지대만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경작이 좋은 토양, 풍부한 자원 등 천혜의 조건을 갖춘 나라가 동남아 최빈국에 속하고 어릴 적 피아비 같은 소녀들이 사는 시골 생활 수준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60-70년대에 머물러 있다 한다. 


전후 사정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현재의 캄보디아 서민들의 삶은 40년이 지났어도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킬링필드와 결코 무관치 않은 것 같다.


다시 스롱피아비 선수의 이야기로 돌아와 현재 한국과 캄보디아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녀는 상금 등으로 고향에 학교를 짓고 아이들이 꿈을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국 캄보디아 재건을 위해 많은 기부를 하고 있다 한다. 그녀의 꿈은 캄보디아에서 스포츠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라 하고 이를 위해 캄보디아에 ‘피아비 스포츠 센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하며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어릴 적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소녀들에게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헌신을 하고 있는 스롱피아비 선수, 그녀의 팬 중 한 사람으로 그 꿈을 열렬히 응원한다. 


(일부 내용은 언론 등에 보도된 내용 등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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