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뒤로 걷기 Mar 01. 2024

4번째 암과 마주한 집사람과...

감사한 일 찾기

#1  24년이 시작되던 첫 주에 집사람이 서울 S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고 입원을 했다. 지난해 암 수술을 하고 6개월여의 힘든 항암치료를 마치고 다시 다른 종류의 암으로 수술을 한 것이다.     


이번이 암 수술만 4번째이다. 그것도 각기 다른 종류의 암이어서 의사가 신문에 기사로 날 일이라 했다. 그렇게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암 병동에서 집사람을 간병을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매번 수술실에 집사람을 들여보내고 나면 일상에서 빠르게 흐르던 시간은 태엽을 감아야 할 괘종시계처럼 더디게 흐르고 수술 전 의료진이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공포심을 조성한 탓에 끊임없는 잡다한 생각들과 싸운다. 


더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까지 수술 중이라는 싸인은 꺼지지 않고 그저 안절부절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수술이 끝나 집사람이 마취도 채 풀리지 않은 채로 병실로 돌아오면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주치의의 수술 결과를 듣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회진을 기다린다.


다행히 성공적인 수술 후 회복과 재활에 애쓰는 집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간단한 수발을 들고, 응원을 하고 쾌유를 비는 일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항암치료가 없어서 한결 어려움이 덜 하다. 


용기를 주기 위해 병원에 있는 동안 와이프와 희망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퇴원해 회복하고 재활해서 다음 여행지인 동유럽에 가고, 하고 싶었던 테니스도 실컷 하자고...    


그리고 두 달 가까이 지나고 이 글을 쓰는 오늘 오전에 집사람과 테니스코트에서 함께 땀을 내며 테니스를 하고 점심으로 둘 다 좋아하는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황량한 겨울 차창 밖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잔잔하게 밀려오는 감사의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외형적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 새삼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건 그동안 부질없는 원망 등으로 중요한 것을 잠시 잊고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행복은 이렇게 소소한 나의 일상 속에 찾을 수 있는데 감사함을 잊고 살았기에 그걸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어제 집 앞 공원에서 늘 무심히 지나쳤던 앙상하기만 하던 산수유나무 가지에 수없이 많은 꽃몽오리가 맺힌 것을 보았다. 겨울을 잘 견뎌낸 나무는 예쁜 봄 꽃을 피운다. 잘 견뎌 준 와이프가 고맙다.




#2  몇 해 전 국립외교원에서 1년 동안 리더십 과정을 수료하였다. 과정 중 여러 강좌를 들었는데 가장 감명 깊었던 강연이 있었다. 지금은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지선 교수의 이야기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지선 교수는 대학 4학년 시절 음주운전 차량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었다. 40번이 넘는 대수술을 받고 극심한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 자살시도까지 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모든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강연 중 이 교수는 전신 화상의 어려운 치료 기간에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러운 감사를 하며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했다. 사고를 만나고(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만났다는 표현을 썼다.) 몇 개월의 치료 기간 후 처음으로 본인의 손으로 환자복의 단추를 끼우며, 처음으로 숟가락을 잡으며, 그리고 씻을 수 있는 발이 있다는 것에, 심지어는 절단되고 남은 손을 보면서 ‘남겨진 모든 것이 선물이다’라며 감사를 했다 한다.     


처음에는 그녀뿐 아니라 모두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도 사람 꼴로 살 수 없다고, 환자의 인생조차 자신의 편협한 의학적 잣대를 들이대었던 오류를 범한 의사에게 보란 듯 그녀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 부활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픈 이야기를 하는 이 교수는 그런 불행을 겪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행복의 파랑새를 곁에 두고 늘 누군가와 비교하고 불만하며 힘겨운 날들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강연을 듣는 내내 남자로서 부끄럽지만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작은 것에 행복하지 못한 것을 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강연 후 이지선 교수가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지난 10주 동안 멋진 은퇴생활을 위해 건강, 경제력, 취미 등 여러 가지 생각해 볼 것들에 대해 매주 한 개씩 이런저런 나의 생각들을 이야기해 보았다. 오늘 마지막 회차에 이렇게 은퇴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것은 무엇보다 멋진 은퇴생활의 화룡점정은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서이다.     


행복의 반대말은 비교라는 말들을 한다. 아마도 불행은 누군가와 비교를 해서 시작되기에 그런 말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폄하하고 시기와 질투로 이어져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만일 외형적으로 은퇴준비를 다 갖춘 사람임에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며 더 나은 누군가와 비교를 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은퇴준비가 좀 부족하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고 모자란 것들을 조금씩 채우며 산다면 행복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웃음이 건강을 가져다주듯 감사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전문가들이 권고하기를 웃음을 습관화하고 웃을 일이 없을 때라도 억지웃음이라도 만들면 건강에 좋다고 한다. 감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이지선 교수가 그랬듯 내 일상에서 감사한 일들을 습관처럼 찾아낸다면 행복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전 09화 슬기로운 귀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