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
기본적으로 유럽인들 대부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입고 싶은 것을 입는다. 특히 패션에 관한 한 영국 사람들의 스타일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사람들의 화려한 스타일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유럽과 조금 떨어진 섬나라 영국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타인의 눈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넘치는 고유의 멋스러움과 스타일이 있다. 동아시아 사람들이 유행에 조금 민감하고 주위 눈을 의식 하는 편이라 한다면, 대다수의 영국인들은 유행을 따르는 것이 개성이 없다 생각하고 주위 눈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개인의 다양성과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각자만의 개성으로 다양성과 행복을 추구하는 분위기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영국인들 개개인의 개성이 조금 남다르다 해서 패션 센스가 타 국가보다 뛰어나냐고 묻는다면 이것에 관해서는 중립적이라는 개인적 의견을 가져 본다. 예를 들어 영국의 여성들은 어울림 유무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다 꽃 무늬 드레스(원피스)를 가지고 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차려입고 다니는 모습을 본다. 성인 남성들의 옷차림은 마치 교복처럼 무채색이 대부분이다. 개성이 의복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분위기다. 전통적으로 영국인들의 의복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 일년의 반 정도는 흐리고 비가 많이 오는 날씨다. 겨울철에 해가 떠있는 시간은 여덟 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바람이 많이 부는 시기로 접어들면 남녀노소 레인 재킷을 입는다. 바람이 부는 날씨 특성상 비가 옆으로 오기 때문에 우산의 효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교복을 입고 다니는 영국의 어린이들조차 비가 올 때 우산을 쓰는 모습을 보기 드물다. 웬만한 비는 어렸을 때부터 온몸으로 받아낸다. 익숙하게 소낙비에도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느 나라의 젊은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젊은 세대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꾸미고 싶은 것에 대한 표현이 성인들보다 다채롭다. 오색 찬란한 생기로 가득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갈수록 말수가 줄어들고, 예의를 중시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그러나 성인들의 전통이 어떻든 젊은이들은 빨간 머리라든지, 피어싱이라든지, 타투라든지, 짝짝이 운동화라든지 정말 창의적이고 개성이 있다. 디자인과 건축, 미술 등의 분야에서 영국이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인 것은 이런 창의적인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영국인들의 가방은 그들의 실용성을 대표한다. 높은 물가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모든 지혜가 가방 안에 들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백팩 같은 큰 가방을 들고 다니며 (개 중에는 가방을 두 세 개씩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안에 물통, 먹거리, 우산 같은 것들을 잔뜩 넣어가지고 다니는데, 그 부피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뭘 저렇게 싸가지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텐데 대부분이 생필품이다. 요즘은 조깅복으로 출근하는 젊은 남녀들이 많고 그들의 가방에는 가벼운 정장이나 일상 근무복 등의 옷가지가 담겨 있다.
대중교통 요금은 우버 보트> 택시(블랙캡, 우버 등) > 기차 > 튜브 > 버스 > 공용 자전거 순으로 요금이 비싼 편이다. 인건비가 드는 대부분의 일, 수리공이라든지, 사람이 찾아와서 하는 일이라든지, 가서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들은 대부분 가격이 비싸다. 레스토랑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많은 영국인들은 끼니 때가 되면 식당을 찾기보다 경제적으로 한 끼를 혼자 해결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마트의 밀딜(Meal Deal)이나 간편하게 '떼울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가벼운 샌드위치나 도시락 같은 것들이 실제로 매우 발달되어 있다. 아침에는 오트밀, 점심에는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점심 식사 대신 파인트 맥주(약 650Ml)를 한 두 파인트 가볍게 마신다. 소주 한 병은 거뜬히 넘는 도수와 양인데 이 정도 양으로는 취기가 오르지 않아 보이는 것 같다. 나 같으면 취기가 오를 알코올 농도이지만 그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 일을 해내는데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한두 파인트 정도는 가볍게 마시는 광경을 종종 보곤 한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펍으로 모여든다. 특히 햇빛이 적당히 내려 쬐는 봄 여름 가을에는 그 태양 볕 아래에서 아주 사소한 이야기와 재미없는 이야기에도 서로 크게 웃어가며 마셔 대는 광경을 본다. 영국 직장인들의 교류를 보는 재미가 있다.
튜브나 기차에서는 책을 읽는 사람, 핸드폰을 보는 사람, 무료 신문인 메트로를 보는 사람, 그냥 창 밖을 보며 상념에 잠긴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출근 시간에는 대부분 모두 조용한 분위기가 에티켓이고, 퇴근 시간 즈음에는 관광객이라든지 친구와 함께 어딘가 신나는 장소로 이동하는 사람들이라든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 등 여러 사람들이 뒤섞여 생생한 분위기를 만든다. 주목할 점은 영국인들 대부분 타인의 행동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말 이상한 행동을 하고 괴성을 지른다 해도 대부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힐끔도 하지 않아 나는 그들이 정말 관심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궁금하지만 흘끗 쳐다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쳐다보지 않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후자인 경우가 더 많다는 현지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줄을 잘 선다. 2~3명만 되어도 순서와 차례를 잘 지키는 편이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줄을 잘 선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영국의 대중교통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고, 때론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때때론 원래 가던 경로를 도로 수리와 같은 이유로 이탈해서 다른 경로로 가는 버스도 많으니 잘 유의해서 타야 한다. 기차의 행선이 취소되고 버스가 경로대로 가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주위 사람들에게 묻거나 내려서 경로를 확인하고 다시 타고 가야 하는 등 우발적 상황에 잘 대처해야 한다.
패션과 교통은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연결되어 있는 세계다. 사람이란 존재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교류하고 이동해 왔다. 교류하려면 서로의 문화를 보여준다. 문화를 대표하는 서로의 일상적인 의복을 착용하고 서로에게 다가간다. 패션과 의복은 의례의 한 수단으로서도 교류의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교통은 이를 위한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끊임없이 어딘가로 움직인다. 실제의 세계에서든 가상의 세계에서든 끊임없이 무언가와 연결된다. 연결되며 영향을 주고 받는다. 현대의 스타일은 세계화의 다양성 속에서 본인이 선택하고 만들어 내는 무엇이다. 아무리 창의적인 스타일이라 하더라도 어딘가에서 보고 듣고 받아들인 것이다. 또 어딘가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패션과 교통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나라와 나라를 연결해 왔다.
개인과 집단은 현재의 기준에서 세계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끊임없이 선택되고 재생산된다. 개인과 집단의 취향이 자연스럽게 삶과 도시의 시간 안에서 창조된다. 이제는 역으로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의 세계가 끊임없이 교류되기도 한다. 앞으로 서울과 런던 양쪽 도시에서 비슷한 경향이나 닮은 유행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9000Km 떨어진 도시들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미래를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