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7일
영국에 다녀왔다. 영국에 갈 때마다 나는 펍에 들른다. 익숙한 듯 하면서도 이국의 느낌이 있는 펍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비로소 영국에 있다는 실감이 든다. 나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속살을 가장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가 펍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펍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전통이고,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공간이며,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은 각자의 공간이다. 파인트(맥주) 한 잔에 에일, 라거, 스타우트, IPA, 밀맥주 등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된다. 잔을 기울이면 각자의 생생한 그날의 이야기가 생긴다. 영국 펍의 다양성과 품질은 맥주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영국 전역에는 수만 개의 펍에서 스페셜한 그 펍만의 파인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국의 파인트는 양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미국의 파인트 보다 80ml 정도 더 큰 568ml 용량의 잔에 담기는 이 술은, 그 자체로 '한 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상 깊은 모습은 파인트를 따르는 바텐더의 손끝이다.
각기 다른 맥주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따르는 각도, 속도, 타이밍까지 계산된 듯 정교하다. 탭에서 흐르는 맥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그 공간만의 공기와 정서를 함께 전달한다. 펍이라는 공기안에 들어간 주도를 즐기는 한 명 한 명이 연주자이자 연출자로 기능한다. 그리고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관객이자 또 다른 배우가 되어 그 무대에 참여한다.
펍은 'Public House'라는 본래의 이름과 같이 공공 공간이다. 혼자 들어와 신문을 펼쳐도, 처음 만난 이와 축구 얘기를 나눠도 어색하지 않다. 런던 한복판부터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펍은 지역의 얼굴이자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어왔다. 전쟁 중에도 펍은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서 역할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은 한바탕 공습이 지나고 난 뒤 펍에서서 이렇게 말했다. "As long as the pubs are open, Britain is safe(술집이 영업하는 한 영국은 안전합니다)."
디킨스가 매일 10마일을 걸으면서 마지막 목적지로 들렀다는 '예 올드 체셔 치즈'에서 본 광경은 그의 소설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이 그 사실을 처음 공유한 것도 케임브리지의 'The Eagle'이라는 펍에서였다. 감동적인 편지 이야기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뉴캐슬의 작은 펍 'The Strawberry'에서 한 병사가 출병 전에 메모를 남겼다. "내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이곳에서 나를 기억해줘요." 지금도 그 편지는 펍 벽에 걸려 있다.
한국인의 삶에서 술은 종종 '위로'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야근 뒤의 소주 한 잔, 입사 동기들과의 치맥, 명절 뒤끝에 남는 아버지의 막걸리. 어떤 말보다 빠르게 감정을 데우고, 체면 없이 마음을 느슨하게 풀게 했다. 단순한 술이 아닌 인간적인 온기를 담았다. '마시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한국인의 술문화에서 의미였고, 그래서 따뜻한 사람과의 술자리는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 세대별 술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술을 대하는 태도는 변하고 있고, 소주와 맥주 중심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하이볼, 수제 맥주, 퓨전 전통주, 무알코올 맥주 등 술의 선택지가 늘어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혼술', '홈술' 문화 역시 술을 마시는 장소와 방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재미난 부분은 전통주의 재발견이다. 막걸리에 요거트를 섞은 '막쿠르트' 같은 혼합 음료나, 와인처럼 병에 담겨 나오는 프리미엄 전통주는 젊은 세대의 감성을 겨냥한다. 서울 곳곳의 보틀숍, 브루어리 펍은 이제 단순히 술을 파는 곳이 아난 술을 매개로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소로 진화 중이다.
영국에서 펍이 그러하듯 한국에서도 술은 더 이상 단순한 음주가 아니다. 술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고, 때론 홀로 고독하지만 편하게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은 곧 문화를 소비하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보인다.
영국에서 파인트잔을 한 잔 들이키면 묘한 안심감을 가지게 된다. 격의 없는 웃음소리, 바텐더의 움직임, 축구 중계에 반응하는 사람들, 연인의 다정한 눈빛, 그리고 오래된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파인트잔 한잔. 그 모든 것이 합쳐져 나를 따뜻하게 데운다.
한국의 어느 술집 또는 영국의 오래된 골목길 끝 펍에서 한 잔의 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 건네는 따뜻한 마중물이다. 그리고 그 잔을 들고 있는 우리는 모두 어쩌면 하나의 같은 지구라는 테이블 위에 앉은 하나로 연결된 생명들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