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0
4분 33초. 현대 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의 무연주 곡이다.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고 음과 시간의 공백을 무로 채운다. 비슷하게 서울 리움 미술관에는 공백과 비움의 예술이 늘 그자리에 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無)의 예술을 표현한 음악이 떠오른다.
리움미술관에 가면 조선 시대의 빼어난 분청과 백자, 고려시대의 청자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관람료 무료, 단 월요일은 휴관). 선이 아름다운 수묵화도 있다.
선조들 작품의 공통점은 여백이고 공백으로 우리 선조들은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를 담고 살아가는 지혜를 가졌었다. 살아가는 의미를 자연과 주변에서 찾으며 생명을 중요시 했고 자연과 조화를 가졌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의 건축 설계는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 세 사람이 각 동을 맡았었다. 마리오 보타는 흙과 불을 상징하는 테라코타 벽돌로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형상화 했고, 장 누벨은 세계 최초 부식 스테인레스 스틸과 유리를 사용하여 현대미술의 첨단성을 표현했다. 렘 쿨하스 역시 흔치 않은 재료인 블랙 콘크리트를 사용한 블랙박스를 선보이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미래적 건축 공간을 구현 했다 한다.
하나의 미술관을 위해 각기 개성이 다른 우리 시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모인 것은 세계 속에서도 그 예가 드물다. 리움미술관 내외관 자체가 하나의 공간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 관람객의를 편의를 돕는 의자가 유려한 디자인으로 배치되어 있고, 옷가지와 가방등을 보관할 수 있는 캐비넷은 무료.
4층부터 1층까지 각 층별 주제에 맞춰 엄선한 1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4층에는 '푸른빛 문양 한 점'이라는 주제로 고려시대 청자들이 영묘한 빛깔을 내뿜고 있다.
'흰빛의 여정'을 주제로 한 3층은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를 감상할 수 있다. 2층 '감상과 취향'에서는 다양한 기법과 주제의 고서화를 볼 수 있으며, '권위와 신앙, 화려함의 세계'를 주제로 한 1층에서는 불교미술, 금속공예, 나전칠기 등에 구현된 선조들의 미와 예가 느껴진다.
한국 전통미술 상시 전시와 함께 특별전시로 '전·함: 깨달음을 담다'라는 전시(2/23까지)가 진행 중이다. 깨달음은 불교의 수행 방법중 하나로 이와 관련된 명상적이고 영적인 담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상시전시에서는 도자기, 서화, 금속공예, 불교미술부터 목가구, 민화, 민속품, 전적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미술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보여준다. 특히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의 도자기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려 청자와 조선의 분청, 백자는 리움의 검은 실내와 어우러져 신비로운 빛을 띄고 있다. 청자의 푸른빛을 고려 사람들은 비색(翡色)이라 표현하며 각별히 여겼는데, 그중에서도 은은한 기품이 느껴지는 것을 최상급으로 꼽았다고.
백자에서도 단순한 화이트톤이 아닌 미묘한 색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유리라는 차단막이 있지만 눈과 백자를 가장 가깝게 위치하여 살펴보면 백자의 겉표면을 문지르며 결을 내며 구워냈던 장인의 손길이 칠과 함께 느껴진다.
도자기를 제외하고는 신사임당의 그림과 추사 김정희의 서체가 특히 인상 깊었다. 신사임당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화가로 알려진 것에 반면 5만원권에 등재된 역사속 인물 치곤 정확한 본명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가부장제 하 남성 위주의 조선시대에서 분투한 그녀의 인생을 상상할 수 있다.
신사임당은 본디 태어난 집안이 좋았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그림은 화첩으로 펼쳐져 있는데 각 그림에는 한 쌍의 새들이 있다. 그림과 시에 능한 신사임당은 초기 조선시대에 글을 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여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 속 한 쌍의 새들을 그리는 신사임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금동탑이 리움의 전시를 떠나는 사람을 배웅한다. 금동탑은 고려시대 전기(10~11세기)에 제작된 금속제 탑으로, 높이 155cm에 달하며, 현존하는 가장 큰 금속탑이다.
이 탑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에서 출토되었으며,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물리치고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의 국보중 하나로 발굴 당시 탑은 부식이 심해 원형을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보존처리 과정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