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에서

2025년 3월 24일

by Taehun Roh

어떤 기억은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조용히 내면의 어딘가에서 웅크리고 있다. 그러나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 사라지고 잊힌 소중하고 아련한 것은 극적으로 어떤 장면, 어떤 냄새, 어떤 이름 하나로 다시 살아난다.


지난 22일 순창에 다녀왔다. 유정마을 한 어르신 댁에 그려진 벽화 복원 행사가 있었다. 이 벽화는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1999년 여름, 서울여대 학생들이 농활을 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린 것이다.


마을 벽면에 '농민은 하늘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그려진 벽화는 그 시절의 연대, 희망과 꿈 그리고 열정을 담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니라 삶과 삶이 만나는 접점이자 희망의 기록이었으며 그 시절의 꿈이자 미래였다. 시간이 흘러 미래는 현재가 되었고 과거가 되려하는 현재는 미래로 출발하는 사람들을 다시 모았다.


도착한 정오가 얼마 안 지난 시간, 벽화 앞에 마주 섰다. 세월이 흘러 벽화는 낡고 바래진 상태였다. 시간에 맞춰 모이기 시작한 그때의 기억을 품은 사람들은 여전히 어딘가에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왔다.


그 중 몇은 귀농하여 순창에 터를 잡았고, 몇몇은 도시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자녀를 둔 부모가 되어 이날 행사를 아이와 함께 찾은 사람들도 있었다. 사반세기 만에 모인 사람들의 벽화 복원 작업은 단지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마음을 현재의 삶 위에 다시 불러내는 일처럼 보였다.


벽화 복원 작업은 유정마을 옆 두지마을 주민들도 함께했다. 두 마을의 사물놀이패는 붓과 롤러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북과 장구, 꽹과리로 흥을 북돋았다. 사람들의 붓질은 그 장단에 맞춰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였다. 중간 중간 이어지는 사물패의 장단은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결 같았다. 색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벽 위에는 그 시절의 꿈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림을 그리는 분주한 손들 옆에 나를 이 자리로 이끈 형이 한 명 있다. 그는 이십년 가까이 근무한 회사에서도 약자를 먼저 생각하고 조합원을 먼저 생각하고, 회사 바깥 이런 농가에서는 농민의 손을 따뜻하게 포갤줄 아는 사람이다.


세상은 약한 이들의 목소리를 귀찮은 듯 밀어내지만, 그는 늘 그 옆에 머물며 함께하고 손을 내민다. 덕분에 지금 시간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의 삶도 배운다. 그는 종종 삶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기억을 어떻게 품고 살아가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한다.





벽화 작업은 단지 벽에 색을 입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청춘에 대한 회복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부모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는 시간이었다. 또 누군가에게는 '나도 함께할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라는 자존감의 복원이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사람들은 붓을 들었고, 함께 먹을 음식 준비를 했으며, 힘을 실어넣기 위해 사물놀이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26년 전에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와 기억의 복원에 기여했다.


아이도 있었다. 인형을 품에 안고 장구 소리에 손뼉을 치는 한 아이의 얼굴은 진지하기도 미소를 띠기도 했다. 언젠가 이 아이는 벽을 기억할까. 그리고 훗날, '엄마는 여기서 뭘 했던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이 하루는 단지 복원이 아니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가는 소중한 마음의 전승'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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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입구의 나무오래된 나무는 수백년동안 모든것을 담담히 보고 있다.


오후의 볕은 따뜻했고, 사물패의 장단은 쉬지 않았다. 벽면에 '99 여름, 서울여대 농활'이라는 문구가 또렷이 새겨지기 시작했고, 그 아래 위로 한 줄 한 줄 색이 쌓여갔다. 마을 주민들은 고기와 술과 음악에 흥에 겨워했고, 누군가는 세월을 추억하며 막걸리 잔을 기울였으며, 어떤 이들은 서로의 어깨를 마주치며 웃었다.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이 작은 마을의 기억은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순창은 아름다운 마을이 모인 곳이다. 내장산 자락에 기대어 있고, 섬진강의 흐름처럼 부드럽고 단단한 사람들로 가득한 곳. 풍경은 아름답고, 음식은 넉넉하며, 무엇보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함을 자아냈다. 서울에서 편도 세 시간이면 닿는 이곳은 내가 알지만 생에서는 몰랐던 삶의 방식이 흐르고 있는 곳이었다.


기억은 단절되지 않는다. 기억은 이어지고 복원되고,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벽화는 그렇게 기억의 징검다리가 되었다. 단절이 아닌, 연결의 이름으로. 그리움이 아닌, 동사와 움직임이라는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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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 유정마을과 두지마을의 벽화는 그런 질문에 하나의 답을 건넨다. 함께 그린다는 것. 함께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삶의 방식으로 다시 살아낸다는 것.


시간이 흐른다. 벽은 복원되었다. 그리고 그 벽 앞에 선 우리도 조금은 달라진다. 그렇게 삶은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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