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장 그르니에

2011년 5월 29일

by Taehun Roh

나는 죽어가는 백정에게 긍정을 하는 것도 부정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내 감옥의 드높은 벽을 따라만 가고 있었다. 백정이 그것을 눈치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공통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우리들 사이에 대화가 가능했던 것은 죽는다는 저 공통적이고 일상적인 시련 때문이었다. 그 이후 그 문제에 대한 나의 견해는 변할 수 있었지만 본증적이고 터무니없으면서도 깊이 뿌리 박힌 나의 감정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 끔직한 시련에 대한 느낌을 마음속에서 쫓아내기 위하여 그때나는 전혀 필요도 없는 연구에 몸을 던져 아무 글이나 닥치는 대로 명렬하게 읽어대기 시작했다. 박물관과 도서관들이 내 관심을 끌었다. 저 형언할 길 없는 과거의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맹목적이고 엄청난 힘들로부터 헤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인식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무에대한 섬뜩함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정신적인 생활을 하게 된 셈이지만 그것은 실상은 거꾸로 된정신적 생활이었다. 저 성벽처럼 쌓인 책들 속에는 얼마나 대단한 매혹이 깃들여 있었던가! 그것은 일체의 휘협에 대한 어마나 굳건한 방벽이었던가! 그러나 도서관 밖을 나설 때면 머리가 아팠고 마음은 더욱 메말라가는 듯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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