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도 빛을 향해 손을 내밀었던 존재들을 위하여

우주와 우주가 연결되는 기적속에서

by Taehun Roh

새벽 네시 눈이 떠지고 잠시 어둠속에 나를 맡겨본다.

커튼과 장막뒤의 세계를 생각한다.

눈이 떠졌다고 말하지만 눈이 떠진게 어떤 것인지.

자신을 자신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 있는 것인지.

심장 속 슬픔과 아픔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내어줄 수 있는지.

빛은 어떤 것을 비추고 있는지.

빛은 어둠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지만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져있다.

벽 너머에 진실.


비움을 이야기하면서 채움을 살아내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채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의 유지 조건이 아니다.

담아가는 시공간과 추상적 유의미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킨다면 그속에 것들은 공생할 수 있을까.


삼월일일이다. 1919년 3월1일. 거리로 나가기 전 태극기를 품은 사람들의 심장소리를 생각한다.

아직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생명으로 이뤄진 숫자는 내가 살아가는 자본의 숫자보다 매우 작음에 작은 한숨을 쉬어본다.

그들이 옳다고 생각했던 세계. 자유를 구속당한 한 나라의 비극을 광장에서 소리쳐 부르기전,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거리가 위험할것 같으니 나오지 말라고 했을까. 너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라 하기도 했을까.

너도 함께 우리의 뜻을 전세계에 전달하자고 했을까.

살아남는것보다 더 중요한건 진짜 살아있는 거야 - 구속은 정신을 속박해 - 그러니 함께하자 - 자유를 부르짖자 - 생명이 꺼진다 하더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삶을 살아내자. 라고 하면서.


우리는 거리로 나섰던 생명을 건 선조들의 소중한 용기에 빚을 진 존재들이다.

그 작은 하나 하나의 불씨, 꺼질 수 밖에 없었던 불씨였으나 너무 빨리 져버린 꽃, 고통받았던 하나로 시작된 최초의 불씨가 없었다면 현재는 계승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답은 명확하다.

나역시 자유고, 자유란 건 미래나 과거를 현재에 담보잡지 않는것이다.

오늘을 잘 살아내는것, 이것보다 더 나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고 얼마전 우연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전세계, 여기저기 이익이나 이기를 위해 전쟁과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그럴수 밖에 없다고 세계의 지도자들은 이야기한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지시를 이행한다. 어둠의 명령


아니, 난 반대야. 라고 엄석대를 비난했던 박원하를 생각한다.

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겠어. 그것과 나는 무관해라하며 살아갈 수 도 있다

하지만, 존재하는 모든것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것이 어디 하나라도 있다 말할 수 있는가.

세상의 끝, 우주의 끝까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경계에 서면, 세상의 끝에 서면 어떤 것들은 막혀지고 언젠가 사멸되는것이 필연적 결과겠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남아서 전승된다. 그 세포 하나하나에 빛의 명령과 어둠의 명령 모두가 담겨있다.


2월 27일 저녁, 서로 교신을 보냈던 미확인된 세상에 대해

우주가 우주에게 회신을 했다.

우주는 연결되었고 비로서 세상이 하나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된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어둠 속 시공간을 가르고 한줄기 빛이 내려온다.


소중함의 세계. 세계 넘어 그 너머의 세계. 그 세계 안에 돈이나 명성 같은 것은 살아내는 이 순간 만큼의 가치가 있지 않다.

누군가는 역설이라 할지라도 따뜻한 온기는 생명이고, 차가움은 하나의 메타포로서 죽음이다.

가슴속 불꽃, 그 불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불꽃이 내리는 의지를 일상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짧게는 백년전 길게는 수천년전에서 수십억년전 우리를 우리로 만든 무수한 생명과 세포는 각인을 또렷이 전달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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