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작품을 비교하며
사진은 1987년 국내에 발매된 키스 자렛 쿼텟의 LP <Belonging(소유물)>입니다. 실제로는 1974년 4월 녹음하여 10월 출시되었습니다. 자렛은 1971년 노르웨이 오슬로, 1973년 독일 브레맨과 스위스 로잔, 그리고 1975년 독일 쾰른 공연으로 초기 솔로 삼부작을 완성하였는데 재즈 역사적으로는 피아노 솔로 즉흥 연주의 신기원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앨범 <Belonging>은 1973년 솔로 실황과 1975년 솔로 공연 사이에 녹음한 유러피언 쿼텟의 데뷔작으로 앨범 디자인이 유난히 아기자기 합니다. 이 사진은 일본 사진작가 나이토 타다유키 (1941~)의 작품입니다. 네 개의 돌멩이는 유러피언 쿼텟 네 명을 표현하기도 하고 네 명이 간직한 조약돌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앨범 <Belonging>을 네 줄로 표현해 볼까요?
Belonging(소유물)
1. 유러피언 쿼텟의 첫 작품
2. 북구의 정서와 회화적인 이미지
3. 가르바레크의 테너, 소프라노 색소폰
4. 스틸리 댄의 표절
라인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얀 가르바레크(노르웨이, 1947~): 소프라노, 테너 색소폰
팰 다니엘슨(스웨덴, 1946~2024 ): 베이스
욘 크리스텐센(노르웨이, 1943~2020): 드럼
키스 자렛(미국, 1945~): 피아노
이 구성을 자렛 어메리칸 쿼텟과 구분하기 위해 유러피언 혹은 노르딕 쿼텟이라 불렀는데 북유럽 뮤지션들의 정서와 자렛의 피아노가 색다른 음악을 제시합니다. 수록곡은 총 6곡으로 모두 자렛의 오리지널입니다. "스파이럴 댄스(트랙 1)", "블라섬(트랙2)", "솔스티스(트랙6)", "당신이 알다시피 당신의 삶을 사는 한(트랙3)" 등 전곡이 자렛의 피아노, 가르바레크의 색소폰, 그리고 리듬 섹션 상호간의 뛰어난 균형감과 리듬감을 자랑합니다. 특히 3번 트랙 "Long as You Know You're Living Yours"는 동시대의 록 밴드와 관련되어 문제작이 되었습니다. 그 내막을 알아볼까요?
거만한 자신감, 스튜디오 레코딩, 최고의 세션, 라이브 울렁증, 재즈같은 록, 세련되고 감각적인 사운드... 미국 록 밴드인 스틸리 댄(Steely Dan)을 표현하는 단어들입니다. 사실 스틸리 댄은 밴드라기보단 듀오입니다. 사진 왼쪽은 보컬 및 피아노의 도널드 페이건(1948~), 오른쪽은 기타 및 백보컬의 월터 베커(1950~2017)입니다. 둘이 공동 작곡을 합니다.
스틸리 댄은 통산 9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1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1집(1972): Can't Buy A Thrill
2집(1973): Countdown to Ecstasy
3집(1974): Pretzel Logic
4집(1975): Katy Lied
5집(1976): The Royal Scam
6집(1977): Aja
7집(1980): Gaucho
8집(2000): Two Against Nature
9집(2003): Everything Must Go
라이브(1995): Alive in America
데뷔 이후 해마다 앨범을 발표하다가 7집 <Gaucho(가우초)>를 끝으로 1981년 해산합니다. 그러다가 20년이 지난 2000년 8집 <Two Against Nature(자연과 마주한 두 사람)>로 컴백하여 2001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최우수 팝 보컬 앨범, 최우수 기술 앨범, 최우수 연주(팝 듀오/그룹 보컬 부문) 등 주요 부문을 싹쓸이 합니다.
스틸리 댄의 앨범은 지나칠 작품이 하나도 없습니다. 페이건과 베커의 작품을 둘이 연주하고 가장 뛰어난 뮤지션을 초대해 스튜디오 녹음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정도 수준의 녹음을 하는 아티스트는 마이클 잭슨 혹은 마일즈 데이비스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놓칠 수 없는 스틸리 댄의 앨범 10장은 순서대로 감상을 해도 좋고 추천을 한다면 6집 <Aja(에이자 또는 애자)>와 7집 <Gaucho(가우초)>을 꼽고 싶습니다. 6집 타이틀은 한국 여성을 가리키는 '애자'이고 7집은 멕시코 등 남미의 카우보이를 의미합니다.
사진은 7집 <가우초>의 앨범 커버입니다.
남미 초원의 카우보이를 지칭하는 곡명에서도 라틴 스타일 음악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스틸리 댄은 재즈, 라틴 음악, 블루스, 그리고 R&B 등을 매력적으로 믹스한 록 밴드입니다. 그런데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자 대표곡 "가우초"에는 늘 키스 자렛이 따라 다닙니다. 자렛의 1974년 앨범 <빌롱잉>에
"Long As You Know You're Living Yours"라는 곡이 있었음은 언급하였습니다. 스틸리 댄은 앨범 <가우초>의 타이틀 곡 "Gaucho" 도입부를 색소포니스트 톰 스콧(1948~)이 연주하도록 하였는데 이 연주가 싱크로율 100%로 자렛의 곡을 표절합니다. 이 지점에서 키스 자렛의 유러피언 쿼텟의 대표작 <Belonging>과 스틸린 댄의 명작 <Gaucho>가 불편한 도킹을 하게 됩니다.
표절의 차이: <Belonging>의 "Long As You Know You're Living Yours" 그리고 <Gaucho>의 "Gaucho"
1. 키스 자렛의 1974년 작품에서는 자렛이 잔잔하게 피아노 연주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얀 가르바레크의 색소폰 연주가 시작되고, 피아노와 색소폰이 주거니 받거니 인터플레이가 전개됩니다.
2. 반면 스틸리 댄의 1980년 작품은 톰 스콧의 색소폰이 바로 리드를 하다가 보컬이 가세하면서 세련된 사운드를 연출합니다.
3. 이 사건의 결론은 자렛의 소송, 스틸리 댄의 패소, 자렛을 "가우초"의 공동작곡자로 크레딧에 올리고 수익배분을 하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이런 스틸리 댄의 흑역사에도 불구하고 "가우초"는 한마디로 멋진 작품입니다. 물론 다른 곡 또한 마찬가지죠. 1981년 밴드 해체 후 페이건은 주목할만한 솔로 활동을 합니다. 베커는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아보카도 농장을 운영합니다. 이렇게 약 13년이 흐르다가 스틸린 댄은 1995년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고 2000년 8집, 2003년 9집을 선보입니다. 2017년 베커가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지금은 역사 속의 밴드가 되었습니다.
재즈 색소포니스트 브랜포드 마살리스(1960~)는 재즈 트럼피터 윈튼 마살리스(1961~)의 형입니다. 브랜포드 마살리스는 1980년 프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1985년 24세의 나이에 영국 뉴웨이스 밴드 폴리스의 멤버였던 고든 섬너(1951~)의 데뷔 앨범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푸른 거북이들의 꿈)>에 참여하여 멋진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앨범은 1986년 제28회 그래미의 2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었고 미국에서만 3백만장(트리플 플래티넘)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게 됩니다. 생소한 이름의 고든 섬너는 우리에게는 '스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살리스는 1990년대 왕성한 활동을 거쳐 중견 뮤지션으로 성장하였고 2000년대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 특히 자신의 콤보를 통하여 자작곡 중심의 괄목할 만한 작품을 선뵈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3월 독특한 작품을 블루 노트에서 발표합니다.
사진은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블루 노트 데뷔 앨범으로 위에서 알아 본 키스 자렛의 유러피언 쿼텟 앨범 <Belonging>을 커버 한 작품입니다. 참여 뮤지션들은 2019년 앨범 <The Secret Between the Shadow and the Soul> 이후 합을 맞춰 온 리듬 섹션 트리오로 조이 칼데라조(피아노), 에릭 레비스(베이스), 그리고 저스틴 포크너(드럼) 입니다. 수록곡은 키스 자렛의 앨범과 동일한 순서입니다.
Spiral Dance
Blossom
Long As You Know You’re Living Yours
Belonging
The Windup
Solstice
자렛의 오리지널 앨범이 북유럽 뮤지션들의 회화적 이미지에 자렛과 가르바레크의 대칭적 균형미를 강조하였다면 마살리스의 커버 앨범은 미국 뮤지션들의 재즈적 구성과 연주에 충실하면서도 독주자의 즉흥감을 배려한 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세 번째 곡 "Long As You Know You’re Living Yours"에서는 도입부에 리듬 섹션 트리오의 지원을 바탕으로 마살리스의 유려한 색소폰 연주가 작품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마살리스의 연주는 스틸리 댄의 "Gaucho"에서 톰 스콧이 들려 준 색소폰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자렛의 오리지널은 솔로 즉흥 연주의 특성상 악보가 공개되지 않으며 그날 공연장의 분위기나 연주자의 즉흥성과 함께 순식간에 증발됩니다. 그나마 자렛의 콤보 작품들은 솔로 연주에 비하여 휘발성이 덜하다고 볼 수 있는데 마살리스 쿼텟은 원작자의 작품을 순식간에 포착하여 그들만의 언어로 주조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키스 자렛의 유러피언 쿼텟 그리고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쿼텟이 들려주는 <빌롱잉>을 온전히 여러분들의 소유물로 만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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