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미국 재즈 기타리스트 랄프 타우너가 2026년 1월 1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85세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타우너가 국내에 알려진 계기는 1990년대 전후 국내 재즈붐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몇몇 음반사에서 재즈 LP를 라이선스로 발매하였는데 이 중 성음사는 'ECM 재즈 시리즈'를 기획, ECM 소속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독자들이 잘 아는 팻 메스니, 키스 자렛, 칙 코리아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국내의 제한된 재즈 콘텐츠 속에서 팬들의 갈증을 덜어주었습니다. 미국 워싱턴 주 셔헤일리스 출신인 타우너 또한 ECM 소속 뮤지션으로 몇 장의 라이선스 LP를 통해 국내에 알려집니다. 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꼽자면 '오리건'과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ECM'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 가정에서 성장하며 피아노를 연주한 타우너는 1958년 오리건 대학에 입학하여 예술에서 작곡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는데 이때 평생의 음악 동반자가 되는 베이시스트 글렌 무어를 만납니다. 빌 에반스의 초기 음반들을 듣고 따라하며 자신만의 스타일과 작곡을 정립하는 한편 1960년대 초반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이주합니다. 1968년 뉴욕으로 온 타우너는 월드 뮤직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색소포니스트 폴 윈터(1939~)의 그룹에서 활동하며 재즈 신에 등장하였고 이때 글렌 무어(1941~), 폴 매캔들레스(1947~), 콜린 왈콧(1945~1984) 등과 연주하게 됩니다. 이 네 명이 1970년 결성한 재즈 앙상블이 오리건입니다. 폴 윈터 그룹에서 활동한 이들의 연주는 재즈와 월드 뮤직을 포용합니다. 오리건을 감상한다면 1980년대 전후 작품을 먼저 추천하고 싶습니다.
1978년 <Out of the Woods>
1979년 <Roots in the Sky>
1983년 <Oregon>
왼쪽 두 작품은 엘렉트라에서 발표한 1978년 작 <Out of the Woods>와 1979년 작 <Roots in the Sky>입니다. 재즈와 월드 뮤직의 조화가 뛰어난 작품으로 오리건의 본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Roots in the Sky>의 오프닝 "June Bug(녹색 칵테일)"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청량함을 선사합니다. 오른쪽 앨범은 1983년 ECM에서 발표한 <Oregon>으로 국내에 라이선스 LP로 발매되었습니다. 총 8곡은 커버 사진의 컬러풀한 색상과 같이 변화무쌍합니다.
1970년대 초반 타우너는 리더로서 솔로 경력을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1972년 ECM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트 아이허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습니다. ECM의 전속 뮤지션이자 작곡가로 아이허의 지원 하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대하며 ECM의 음반들 중 매우 독특하며 창의적인 기타 작품들을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언급하였듯이 타우너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로 어쿠스틱 기타가 있는데 일렉트릭 악기로 대변되는 1970년대 재즈 퓨전의 시기를 랄프 타우너는 그만의 방식으로 나아갑니다. 아마도 재즈 퓨전과 달랐던 그의 행보가 다른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들에 비하여 덜 알려진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역설적으로 동시대 기타리스트들과는 다른 유니크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뮤지션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었습니다.
1975년 3집 <Solstice>
1979년 8집 <Old Friends, New Friends>
1980년 9집 <Solo Concert>
사진의 세 앨범은 타우너의 초기 주요작들입니다. 왼쪽 두 장은 국내에 라이선스 LP로 발매되어 타우너의 작품 세계를 우리와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1975년 앨범 <Solstice>은 얀 가르바레크(색소폰), 에버하르트 베버(베이스, 첼로), 욘 크리스텐센(드럼, 퍼커션)이 참여한 쿼텟 작품입니다. 얀 가르바레크와 욘 크리스텐센은 베이시스트 팔레 다니엘손과 더불어 키스 자렛의 유러피언 쿼텟 멤버로 1974년부터 활동하였습니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ECM 소속 뮤지션들의 협업은 타우너의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타우너 초기 대표작으로 손색없는 앨범들입니다. 1979년 작 <Old Friends, New Friends>에는 케니 휠러(트럼펫, 훌루겔론), 데이비드 달링(첼로), 에디 고메즈(베이스), 마이클 디 파스콰(드럼, 퍼커션)가 가세하였고 타우너는 기타, 피아노, 프렌치 호른을 연주합니다. 퀸텟 편성으로 악기들의 앙상블이 뛰어납니다. 1980년 앨범 <Solo Concert>는 1979년 10월 독일 뮌헨과 스위스 취리히 공연을 담고 있습니다. 타우너는 12줄 어쿠스틱과 클래식 기타를 연주합니다. 타우너 기타 연주의 전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2001년 21집 <Anthem>
2017년 26집 <My Foolish Heart>
2023년 27집 <At First Light>
사진 속 세 장의 앨범은 2000년대 이후 발표한 작품입니다. 2001년 앨범 <Anthem>은 타우너가 60세가 되는 즈음인 2000년 2월 녹음하였습니다. 12줄 어쿠스틱과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며 모든 곡은 오리지널입니다. 2017년 앨범 <My Foolish Heart>는 75세에 녹음한 작품입니다. 유일한 커버곡이 재즈 스탠더드인 "My Foolish Heart"로 앨범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이 앨범은 그의 작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빌 에반스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여기서도 타우너는 12줄 어쿠스틱과 클래식 기타를 연주합니다. 타우너는 일렉트릭 기타를 간혹 연주하긴 합니다만 연주의 본류는 어쿠스틱입니다. 마지막 작품이 된 27집 <At First Light>는 타우너가 클래식 기타만을 사용하여 82세에 녹음하였습니다. 1960년대 초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위해 비엔나로 떠났던 그의 60년 기타 인생. 마지막 작품이 클래식 기타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이 앨범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1975년 4집 <Matchbook>, 게리 버튼(비브라폰)과의 듀엣
1976년 5집 <Sargasso Sea>, 존 애버크롬비(기타)와의 듀엣
1994년 16집 <Oracle>, 게리 피콕(베이스)과의 듀엣
타우너의 디스코그래피에는 ECM 소속 대표 아티스트들과의 협연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스몰 재즈로서 듀오 혹은 트리오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랄프 타우너의 기타는 작은 공간에서 한두명과의 콜라보를 통해 발산하는 어쿠스틱 사운드로 대표됩니다. 추천 앨범은 사진 왼쪽부터 게리 버튼(비브라폰), 존 애버크롬비(기타), 게리 피콕(베이스)과의 듀엣입니다. 재즈사적으로 괄목할 만한 명인들과의 이중주는 새로운 타우너 작품을 만들어냈고 ECM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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