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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 혁명

도구가 아니라 결과를 파는 시대

by 김윤서

본 글은 Ribbit Capital의 리포트를 한국어로 재해석한 것이며, 총 4편으로 구성됩니다.


1. AI 전환: 토큰 관점에서 비즈니스 재설계하기 (링크)

2. 토큰 소싱: AI 시대의 첫 번째 기회와 최종 해자 (링크)

3. 에이전트 혁명: 도구가 아니라 결과를 파는 시대

4. 지능의 풍요: 무엇이 희소해지는가 (링크)




지난 15년 동안 SaaS 시장은 13배 커졌습니다.
하지만, 왜 기업의 직원당 매출은 그대로일까요?



SaaS의 역설, 그리고 에이전트의 등장


우리는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클라우드 덕분에 소프트웨어 배포는 쉬워졌고, 기업들은 수백 개의 SaaS를 구독합니다. 하지만 숫자는 냉정합니다. S&P 500 기업의 생산성 지표는 지난 15년간 거의 제자리걸음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SaaS는 우리에게 '더 좋은 도구'를 줬을 뿐, '일'을 대신해주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사람은 엑셀 파일을 열고, 이메일을 쓰고, 서비스를 오가며 약간의 지능을 더하고 데이터를 나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도구를 사는 시대에서, 결과를 사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티켓을 처리하는 챗봇이 아니라, 기업의 데이터를 읽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트와 수직 토큰 시스템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수직 토큰 시스템: 도구가 아니라 '결과'를 파는 시대


Ribbit Capital은 이 시스템이 세 가지 형태로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 예측합니다.


1. 큐 킬러 (Queue Killers)


기업 내부에는 사람이 직접 처리해야 해서 병목이 생기는 '대기열(Queue)'이 존재합니다. 데이터 입력, 컴플라이언스 검토, 콘텐츠 모더레이션 같은 업무들입니다. SafetyKit 같은 서비스는 이 대기열을 통째로 없앱니다.


BPO(외주 용역)에 맡기던 일을 에이전트가 24시간, 100% 정확도로 처리합니다. 직원을 고용하거나 툴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을 넘기는" 개념입니다.


2. 애드온 (Add On Agents)


오래된 ERP(전사적 자원 관리)나 HRIS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걷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신 새로운 에이전트 기업들은 레거시 시스템 위에 영리하게 올라탑니다. CoPlane, Payflows 같은 기업들은 ERP의 낡은 데이터를 흡수해 토큰화하고, 그 위에서 송금·결재·회계 처리 같은 워크플로를 에이전트가 자동으로 수행하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워크플로 자동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점차 에이전트가 쌓은 데이터와 맥락이 더 중요해지면서, 기존 ERP는 단순한 데이터베이스로 전락하고, 에이전트 플랫폼이 실질적인 '기록 시스템'이자 회사의 '두뇌'가 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납니다.


3. 서비스 롤업 (Service Rollups)


가장 공격적인 형태는 기존의 서비스 회사를 인수하여 개조하는 것입니다. 창업자들은 회계법인이나 세무법인 같은 전통적인 인적 서비스 기업을 직접 인수합니다. 그리고 비효율적인 인력 구조를 AI 에이전트로 대체하여 이익률을 극적으로 개선합니다.


수십만 명의 직원을 둔 거대 회계법인(PwC 등)의 모델 대신, 소수의 도메인 전문가와 수천 개의 에이전트가 결합된 AI 네이티브 회계법인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판매가 아니라, 자본을 태워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PE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승리하는 에이전트 플랫폼의 5가지 조건


수많은 에이전트 기업이 쏟아지겠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해자를 구축할 기업은 다음 5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1. 압도적인 속도 (High Velocity Wedges)

AI의 발전 속도는 빠르고, 토큰 데이터는 복리로 쌓입니다. 따라서 선점 효과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합니다. 승리하는 기업은 시장의 틈새를 정확히 타격해, 경쟁자가 따라오기 전에 데이터를 선점하고 빠르게 확장하는 팀일 것입니다.


2. 쓰기 권한 확보 (High Data Wallet Share)

대기업을 상대로한 서비스들의 가장 큰 고민은 보안과 규제입니다. 하지만 이를 뚫고 여러 내부 시스템(ERP, HR, CRM)을 연결해 맥락을 통합하는 팀이 승리합니다. 핵심은 읽기가 아니라 쓰기이빈다. 에이전트가 단순히 "결제하세요"라고 알림을 보내는 것을 넘어, 스스로 송금하고 회계 장부까지 기록할 수 있는 신뢰를 얻을 때, 매끄러운 완전 자동화가 완성됩니다.


3. 행동 중심 (Action Orientation)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인간이 문제를 인식하기도 전에 인사이트를 제시하고, 이상 징후를 포착해 해결책을 먼저 제안합니다. 훌륭한 비서가 시키지 않아도 커피를 준비하듯, 사용자의 니즈를 예측하고 먼저 움직이는 에이전트만이 깊은 신뢰를 얻습니다.


4. 강력한 학습 루프 (Strong Learning Loops)

에이전트는 사용할수록 똑똑해져야 합니다. 단순히 모델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 '내 업무 스타일'에 맞춰져야 합니다. 재무팀 매니저가 예산을 승인하는 패턴을 에이전트가 학습해, 다음번에는 승인받을 확률이 높은 초안을 완벽하게 작성해 오는 식입니다. 이 개인화된 루프가 고객을 떠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5. 전문가가 만드는, 전문가를 위한 도구 (By Experts, for Experts)

특정 산업의 미묘한 워크플로와 통찰은 범용 모델이 알 수 없습니다. 도메인 전문성을 가진 창업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이전트를 훈련시킬 때 가장 강력한 제품이 나옵니다. 코딩 에이전트 시장이 가장 빨리 성장하는 이유는, 창업자(엔지니어)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풍요의 경제: 희소했던 서비스의 민주화


에이전트 혁명의 진짜 가치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접근성의 확장'에 있습니다. 인터넷이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스마트폰이 금융 소외를 해결했듯, 에이전트 또한 많은 시장의 파이를 키울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4가지 질문에서 그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동네 빵집 사장님은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제 월 몇 만 원으로 24시간 고객 응대, 마케팅, 재무를 처리하는 에이전트 팀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2. 상위 1% 기업만 고용하던 고액 연봉 전문가는 누구인가?

정교한 M&A 분석과 자본 최적화는 대기업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미래의 에이전트는 중소기업을 위한 골드만삭스가 되어 실시간 가치 평가와 전략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는 소규모 비즈니스도 주식처럼 쉽게 거래될 수 있는 유동성의 시대를 엽니다.


3. 상위 1%의 자산가만 누리던 사치는 무엇인가?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대중화했듯, 에이전트는 최고급 서비스를 대중화합니다. 내 아이 성향에 딱 맞춘 AI 튜터, 유명 디자이너 스타일의 인테리어 에이전트 등 가장 개인화된 경험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모두에게 공급됩니다.


4.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이 0원이 되면 무엇이 만들어질까?

코딩 에이전트 덕분에 개발 비용이 0에 수렴합니다. 양봉업자 같은 극소수 니치 마켓을 위한 소프트웨어가 쏟아지고, 채용 담당자나 마케터가 개발자 없이 스스로 필요한 툴을 뚝딱 만들어내는 백오피스들이 폭발할 것입니다.



정리하며: AX의 시작


우리는 지금 인터넷 역사상 가장 큰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웹과 앱은 사람의 눈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예쁜 UI, 직관적인 버튼, 화려한 애니메이션은 모두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User Experience).


하지만 앞으로는 AX(Agent Experience)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릅니다. 미래의 고객은 직접 쇼핑몰을 검색하지 않습니다. 고객의 '개인 에이전트'가 당신 회사의 '판매 에이전트'와 접속해 가격을 협상하고, 재고를 확인하고, 결제를 진행할 것입니다.


이 변화는 잔인하고도 명확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상태입니까?

순수한 가격과 품질 데이터만으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다른 에이전트의 거래 요청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사람이 클릭하는 버튼을 만드는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에이전트가 뛰어놀 수 있는 API와 프로토콜, 그리고 신뢰 구조를 설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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