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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풍요

무엇이 희소해지는가

by 김윤서

본 글은 Ribbit Capital의 리포트를 한국어로 재해석한 것이며, 총 4편으로 구성됩니다.


1. AI 전환: 토큰 관점에서 비즈니스 재설계하기 (링크)

2. 토큰 소싱: AI 시대의 첫 번째 기회와 최종 해자 (링크)

3. 에이전트 혁명: 도구가 아니라 결과를 파는 시대 (링크)

4. 지능의 풍요: 무엇이 희소해지는가




소프트웨어의 한계비용이 ‘0’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가장 희소한 것은 무엇입니까?



항상 거꾸로 생각하라


지난 1~3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토큰으로 쪼개고, 독점적인 데이터를 확보하며, 에이전트를 통해 일을 시키는 법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전제는 '지능의 풍요'입니다. 오픈소스 모델과 코딩 에이전트 덕분에, 이제 누구나 최고의 AI 직원을 사실상 0원에 가깝게 고용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던 시대를 지나, 이제 소프트웨어 자체가 공기처럼 흔해진 것입니다.


찰리 멍거는 "항상 거꾸로 생각하라"라고 했습니다. 지능과 소프트웨어가 무한히 공급되는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극단적인 희소성을 갖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디지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거대한 지능의 공장을 물리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연료와, 복잡해진 세상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단순함입니다.



현실 세계 토큰 공장: 토큰의 출발점


AI는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 위의 거대한 발전소와 데이터 센터, 병원과 공장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가치는 그 소프트웨어를 지탱하는 물리적 기반으로 이동합니다. Ribbit Capital은 이를 현실 세계 토큰 공장이라 부릅니다.


에너지 인프라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에이전트를 24시간 돌리는 데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데이터 센터의 경쟁력은 '얼마나 좋은 알고리즘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기를 확보했는가'에서 나옵니다. 에너지 인프라를 혁신하는 기업이 AI 시대의 석유 재벌이 될 것입니다.


현장

가장 가치 있는 토큰은 인터넷이 아니라 물리적 현장에서 생성됩니다.

병원: MRI 기계와 유전자 분석기는 인간의 신체를 진단 데이터로 변환하는 거대한 토큰 공장입니다. 이 물리적 장비와 환자 접점을 장악한 병원이 의료 AI의 주도권을 쥡니다.

로봇 물류 센터: 수천 대의 로봇이 움직이는 물류 창고는 단순히 짐을 옮기는 곳이 아닙니다. 실시간 재고 흐름과 이동 경로 데이터를 쏟아내는 데이터 광산입니다.

스마트 팩토리: 공장 설비에 부착된 센서는 기계의 진동과 온도를 데이터로 바꿉니다.



복잡성의 해독제: 단순함을 파는 비즈니스


기술이 발전할수록 세상은 복잡해져 갔습니다. 과거엔 은행 창구 한 곳만 가면 모든 업무가 끝났지만, 지금은 송금, 투자, 자산관리, 대출을 위해 20개의 핀테크 앱을 오가야 합니다.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고역입니다.

여기서 에이전트의 진짜 가치가 드러납니다. 에이전트 혁명의 본질은 자동화가 아니라 제거입니다. 기술적 복잡성을 고객의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것입니다.


번역기로서의 에이전트

LLM은 훌륭한 번역기입니다. 단순히 언어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의도를 실행으로 번역합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주가 하락에 대비하고 싶을 때, 과거에는 옵션 파생상품의 복잡한 로직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에이전트에게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이 주식이 오를 것 같긴 한데, 원금 손실은 10% 이내로 막아줘."


복잡한 금융 공학이나 기술적 설정을 몰라도, 고객의 의도만 있으면 실행되는 세상. 이것이 최고의 번역입니다. 결국 시장은 기술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복잡한 기술을 가장 단순한 언어로 번역해 주는 기업이 장악할 것입니다.



현상 유지 세력과 반란군


현상 유지 세력

이들은 '복잡함'과 '불투명함'에서 수익을 얻습니다. 금융 상품이 복잡해야 수수료를 받고, 정보가 비대칭이어야 중개 마진을 챙깁니다. 이들에게 AI는 '비용 절감 도구'일뿐입니다. 상담원을 해고하고 챗봇을 도입하는 이유는 고객 경험 개선이 아니라 인건비를 줄여 기존 이익 구조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반란군

이들은 '단순함'과 '투명함'에서 수익을 얻습니다. 토큰과 에이전트를 이용해 정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개인에게 전문가급 능력을 쥐어줍니다. 이들에게 AI는 '가치 창출 도구'입니다. 소수의 자산가만 누리던 고도화된 서비스를 대중화하여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방식입니다.


역사는 증명합니다. 복잡함을 파는 기업은 결국 단순함을 무기로 든 기업에게 잡아먹힙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그랬듯, 토큰 혁명 또한 권력과 정보를 독점한 곳에서 분산된 곳으로 이동시킬 것입니다.



정리하며: 구조를 다시 설계할 시간


AI 전환은 단순히 우리 서비스에 최신 챗봇 하나를 붙이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비즈니스의 뼈대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지난 4편의 글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체크리스트를 완성했습니다.

[생산]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토큰을 생산하고 있습니까?

[해자] 남들이 복제할 수 없는 독점 데이터를 확보했습니까?

[실행] 도구가 아니라 결과를 파는 에이전트 구조를 갖췄습니까?

[기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속 가능하게 할 물리적 기반과 단순함의 철학이 있습니까?


성벽을 허물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지는 오직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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