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보이저엑스에 입사했고, 왜 떠나는지에 대하여
작년 11월에 보이저엑스를 퇴사했습니다.
저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포기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록했는데요.
신입 개발자의 제로투원 시리즈 가 보이저엑스에서의 도전에 대한 이야기라면,
본 글은 보이저엑스에서의 포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입 개발자의 제로투원 시리즈를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글을 남깁니다.
본 글은 보이저엑스틀 퇴사하면서 회사 내부 구성원들에게 공유했던 글입니다.
이어지는 글은 독백의 느낌을 주기 위해 평어체로 작성합니다.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퇴사 당일 전직원을 대상으로 메일 한 통을 보내는 넷플릭스의 문화 (참고)
퇴사 부검 메일에는 아래의 내용이 담긴다.
1. 왜 떠나는지 : 다른 직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2. 회사에서 배운 것 : 새로 배운 것, 경험한 것
3. 회사에 아쉬운 점 : ‘회사가 이랬다면 떠나지 않았을 것’을 전제로 쓴다.
4. 앞으로의 계획 : 어느 직장에서 어떤 업무를 할지.
5. 회사의 메시지 : 직원을 떠나보내는 회사의 입장.
넷플릭스의 퇴사 부검 문화를 알게 되었을 때, 보이저엑스에도 이런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퇴사하는 동료의 솔직한 얘기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나의 퇴사 부검을 공유하는 것으로 소박한 의지를 알린다.
'0. 왜 보이저엑스였는지' 는 전반적인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했다.
'5. 회사의 메시지' 은 스스로 작성할 수 없는 항목이기에 제외했다.
2020년 7월, 세동님이 학교에 오셔서 AI에 관해 세미나를 진행하셨다. 세미나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딱 하나는 굉장히 생생하다. AI를 공부하지 않으면 망할 것 같다는 그 강렬한 느낌. 천재 개발자라고 불리는, 커리어가 화려한 선배 개발자가 와서 AI를 외치니, 그럴 만했다. 그렇게 AI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대학원과 취업을 고민하던 차에, 해보고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딥러닝 연구/개발 인턴 직무를 찾았다. 인턴도 정말 실무를 할 수 있다는 것과 AI 공부를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이 창업한 회사였기에, 내겐 보이저엑스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2021년 12월 20일, 보이저엑스에 딥러닝 개발 인턴으로 입사했다.
평소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높은 연봉을 받으며 유명한 회사에 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
도메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일과 개발로 인해 전문성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솔깃하기도 했고, 질투가 나기도 했고,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직에 대한 고민이 피어올랐다.
그럼에도 결국 항상 ‘보이저엑스에서 열심히 해야지’ 라는 결심으로 고민은 막을 내렸고,
그 선택의 중심엔 보이저엑스의 조직 문화가 있었다.
아래는 보이저엑스의 조직문화를 설명하는 글인 의지 경영과 V의지에 대하여 중 자아 실현 부분이다.
여기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자아'만 가지고는 '자아 실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아 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자아를 펼쳐낼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런데 모두가 똑같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자아의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자아가 필요로 하는 공간 역시 다르다. 누군가는 정치 영역이 자아 실현의 장일 수 있고, 누군가는 학계가 자아 실현의 장일 수 있다. 각자가 진입한 자아 실현의 장 속에서 개개인은 인정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곧 자아 실현의 과정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보이저엑스 역시 훌륭한 자아 실현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되는 것, 이 문장은 평소 좋아하는 이동욱 개발자님 의 말을 빌려온 것이다. VOC STUDIO 팀원들은 종종 들었을 텐데, 내가 주로 쓰던 문장은 “나중에 할아버지 됐을 때 풀 썰이 많았으면 좋겠다.” 였던 것 같다.
보이저엑스는 자신의 역량과 보이저엑스의 핵심 가치가 연결되어 있다면, 즉 V의지가 유효하다면 정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이다. 직무와 역할에 제한받지 않고 사용자, 성장, 팀워크를 위해서라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다. 심지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런칭할 수도 있다. 즉, 본인이 노력만 한다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보이저엑스는 나에게 진심으로 자아 실현을 하기 좋은 회사였다.
지난 41개월간 나의 행적은 이를 뒷받침 해준다.
1. 처음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해 ProjectH 라는 신규 프로젝트에 들어가기를 선택했다.
2. 사용자가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vFlat 팀으로 이동했다.
3. 다시 정직원으로 입사해 인턴 때 하던 신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4.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5. 채널톡 내에 들어가는 AI 기능들을 개발했다.
6. 자체 프로덕트의 중요성을 느껴 새로운 프로젝트를 런칭했다.
7. 그리고 몇 번의 변화를 거쳐 VOC STUDIO 가 되었다.
보이저엑스가 아니었다면 신입 개발자로 입사한 내가 3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렇게 다양한 일을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런칭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개발이라는 도메인을 넘은 일들을 하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보이저엑스는 내가 노력만 한다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의 훌륭한 자아 실현의 장이었다. 이것이 내가 보이저엑스였던 이유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미친 듯이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친 듯이 치열하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갈증을 느껴 보이저엑스를 떠난다.
어느 시점부터 의지가 부족해 미친 듯이 일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의지가 떨어졌을까.
유일한 답은 서비스 성장이 느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가 성장하지 못하면 의지는 자연스레 저하될 수밖에 없다.
물론, 서비스 성장 외에도 의지를 돋구는 요소들은 분명히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보이저엑스의 조직 문화도 나의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되었다. 배울 것이 많은 유능하고 열정적인 팀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도메인의 문제를 풀고 있거나, 만들고 있는 서비스가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결국 서비스의 성장이 없다면 지속될 수 없다.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조직 문화가 좋아도, 팀원이 유능해도, 도메인이 재밌어도,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도 동기는 결국 떨어진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서비스 성장이 느려 의지가 떨어졌다.
2. 의지가 떨어져 미친 듯이 치열하게 일하지 못하고 있다.
3. 일이 곧 삶이었기에, 삶의 밀도가 낮아졌다.
4. 낮은 삶의 밀도는 나의 자아 실현과 멀어지는 방향이다.
그리고 사실 밀도 높은 삶은 그 자체로 굉장히 즐겁다. 자지도 못하고 새벽까지 하던 고민과 일을 일어나자마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이어서 하는 그 경험은 정말로 즐겁다. 그러나 서비스 성장의 부재로 인해 저하된 의지가 나에게서 그런 즐거움을 뺏어 갔다. 이는 갈증을 만들어냈고, 갈증을 채우기 위해 환경을 바꾼다.
자연스럽게 아래와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어떻게든 내적 동기부여를 해서 미친 듯이 일해서 성장을 견인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서비스 성장이 의지를 고양시킬 것이고, 선순환이 도는 것 아니냐?
맞다. 그런데 내적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갈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나는 항상 환경을 바꿔보라고 말한다. 개인이 불굴의 의지를 가지는 것이 애초에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환경이 만들어낸 의지에 의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대다수에 속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앞서 말한 갈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나에게 주는 답은 역시 ‘환경을 바꿔보라’ 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입사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로웠고 배움의 연속이었다. 다만, 본 질문에서는 보이저엑스였기 때문에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을 위주로 적겠다. 다만, 보이저엑스가 첫 회사이기 때문에 이 또한 나의 오판일 수 있다.
어떤 문제를 대하든, 무엇을 하든 사용자부터 떠올리게 되었다. 사용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불편한
지부터 본능적으로 찾게 되었다. 첫 회사에서 이런 사고 체계를 학습했음에 큰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 말을 제대로 듣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용자의 말을 자신의 프레임에 맞춰 왜곡해서 보기도 하고, 사용자의 말을 너무 그대로 믿어서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기도 하고, 그냥 듣는 척만 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기도 하고.. 이런 실수들을 저지르면서 사용자 말을 제대로 듣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B2B 세일즈를 하면서 사용자들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고 경험한 것들도 많다. 우선 고객들에게 말을 걸고, 전화를 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벽이 사라졌다. 즉, 치대기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연락을 자주 하다 보니, ‘해보고 문제가 되면 죄송하다고 하면 되지’하는 일종의 깡도 생긴 것 같다.
고객들에게 연락하면 알게 된 것 한 가지는,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싫어하지 않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객의 불편함을 듣고자 하는 자세만 갖춰져 있다면, 고객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서 자신의 불편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기꺼이 도와준다.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런칭하고, 유료화하는 것은 정말 보이저엑스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과 배움이었다.
제로투원 덕분에 다양한 개발과 개발을 넘어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나의 강점은 행동력과 추진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가장 싸다는 것, 아이디어보단 팀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역시 서비스 성장이 제일 중요하고, 성장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의지를 믿지 않고, 스스로가 환경에 의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회사에 다니며 생긴 것 같다.
내적 동기부여는 정말 어렵다. 특히나 실패가 기본인 스타트업에서는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실패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또 도전해야 한다. 솔직히 아직도 어떻게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면 떠나지 않았을 것 같다. 성장이 의지를 만들어내 밀도 높은 삶을 유지했을 테니까. 다만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 회사에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떠나지 않았을 것’ 이란 전제를 뺀다면 아쉬운 것은 외적 동기 부여의 결핍이다. 외적 동기 부여가 되는 환경이었다면 좀 더 의지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기로 소문난 회사에 다니는 지인을 만나 물어보니, 그 회사의 연료는 탑다운으로 주어진 명확한 KPI 라고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다들 의지를 불태운다고 한다. 다만 ‘떠나지 않았을 것’ 이라는 전제를 뺀 이유는, 성장이 없는 상황에서 외적 동기 부여가 작동할까 라는 의심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외적 동기 부여를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한편에 있다. 누누이 말했듯이 서비스 성장이 가장 큰 외적 동기 부여겠지만, 그것이 좌절된 상황에서도 개인에게 챌린지를 줄 수 있으면 어떨까 싶다.
빈칸이다. 정말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삶의 밀도를 올릴 수 있는 방향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에 좀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다만, 고민이 길어진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기에 적당한 시점에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몸이 근질거려서 오래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라 걱정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