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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Jul 11. 2023

횡단보도에서 삿대질하는 엄마

불법우회전 차들에게 고함!!!!

나는 이제 지성인이니까

체면이라는 게 있는 중년이 되었으니까

나름 착한 동네 주민과 주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건너고 있을 때 우회전하는 차량을 볼 때다.


우리 동네는 초. 중. 고 세 곳이 모여있다.

학교를 가운데 두고 횡단보도를 건너야 빌라, 아파트단지, 주택가, 공원 등이 동서남북으로 뻗어있다.

각설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려면, 어디서  무조건 횡단보도를 한번 이상은 건너야 한다.




우리 아파트 앞 사거리가 위험하다.


2년 전 큰 애가 1학년이 되어 아침 등교를 함께 하던 중

초록불로 바뀌어 길을 건너려는데 우회전하는 차량을 보았다.

그! 것!  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말이다.

아이들은 초록불이 바뀌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늘, 초록불이 바뀌어도 하나, 둘, 셋을 마음속으로 세고 지나가라고 가르쳤다.

불이 바뀌자마자 아이들이 나가는 타이밍에 우회전 차량이 들어오면 정말 큰일이다.

어떨 땐, 아이들이 건너고 있는데 버젓이 차량 앞 범퍼를 슬금슬금 들이대는 운전자도 있다.


물론 교통지도를 하시는 할머님 두 분이 계셨다.

녹색어머니에서 당번으로 전교생 학부모가 돌아가며 교통 지도를 하지만,

우리 아파트 앞은 세대수가 적어 그런지 녹색어머님들은 서지 않고

시니어 할머님 두 분이 서 계시거나 아무도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혼자 학교를 갈 수 있게 되었음에도 그 횡단보도가 걱정 돼 한참을 아이와 함께 등교했다.



이 날따라 교통지도를 하시는 할머님들이 안 계셨다.

아이들만 우르르 신호등 앞에 서 있어 괜스레 신경이 더 쓰여 신호가 바뀌는 차례를 확인하고 있었다.

초록불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저마다 발걸음을 떼고 건너려고 하였다.

그때였다.

우회전 차량이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쓰윽~ 지나갔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뒤로 물렀다.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짙게 선팅 된 차 창문이 약 5분의 1 가량 열려있어 빼꼼 나온 머리스타일만 확인 가능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 저! 씨!
지금 아이들 건너는 거 안 보이세요??
지금 초록불인 거 안 보이세요????


차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내 모습에 길을 건너던 많은 아이들이 나를 쳐다봤고

아들은 내가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차를 향해 소리치고 있는 사이, 나보다 먼저 길을 건넜다.


다음부턴, 사진 찍어서 신고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소리를 지르고 길을 건넜다.

나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아들을 부르며 쫓아가자 아들이 소곤소곤 귓속말로 내게 이야기한다.


"엄마, 그런데 아까 너무 크게 소리 지른 것 같아."

"어머? 그랬어? 엄마가 부끄러웠어?

그 아저씨가 잘못했잖아. 아까 진짜 큰일 날뻔했어!"

"어 알지 알지, 그 아저씨 나빠.

그런데 음.. 그냥... 아니야..

학교 다녀올게요.."

하고 학교 정문을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아들의 말에 아까 내 모습을 떠올렸더니 조금 부끄럽긴 했다.

'지성인답게 우아하고 도도하게 딱 부러지게 이야길 했어야 했나?'

살짝 후회가 되었지만,

난 다시 그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거니까.




동네 파출소를 찾아갔다. 

나의 신원을 말한 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이들 등교시간 불법 우회전 차량을 막아달라 말했더니 순찰을 한번 해보겠다고 하셨다.

시간대도 정확히 알려드리고 왔건만, 다음날 아침 등굣길에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셨다.


아파트 관리실을 찾아갔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되고 있다. 여태 사고가 한 건도 없었나?

사고가 나야지 그때서야 봐주실 거냐?

불법 우회전 차량은 우리 아파트 입주민 반, 뒤쪽 직진으로 오는 외부인 차량반이지만

길을 건너는 아이들은 무조건 우리 아파트 아이들이다. 아파트의 책임이 있다. 대책을 세워달라.

구구절절 이야기 했더니,

아파트 측에서는 딱히 해 줄 것은 없고

엄마들을 모아서 피켓을 들고 아침마다 거기 서서 시위를 하라고 하셨다.

우리 아파트는 학교를 기준으로 살짝 외곽에 있는 단지가 적은  20년 차 구축이라 할머님들이 많이 살고 계시고 아파트 커뮤니티도 없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 겨우 1년 차 입주민이라 아는 또래 엄마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도대체 입주민 대표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따져보려다 알겠다고 답하고 나왔다.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나 싶어서 인터넷에 그런 피켓이 있는지도 검색했었다.


녹색어머니 측을 통해 문의를 드렸다.

우리 아파트가 불법우회전으로 위험하니 이곳이야 말로 교통지도 하시는 어머님이 반드시 계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곳은 시니어 할머님들이 계시고(매일 계시지는 않았다.) 다른 대단지 아파트 횡단보도에 교통지도 하시는 어머님들이 종종 구멍이 난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예전 살던 동네는 녹색 어머니를 참석하기 위해 학부모님들이 당연히 연차를 쓰는 곳이었다.

펑크가 나면 알바라도 구해 녹색 어머니를 채웠는데 결석하시는 분이 계시다니?

1년에 단 한 번 서는 것인데?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더랬다.

어느 날 정말 얼마나 서계시나 싶어서 학교 앞까지 가서 둘러보았더니 총 5분이 담당이신데 다 서계시는 날도 있었지만, 어떤 날은 3분, 어떤 날은 2분이 서 계시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후로 등굣길이건 하굣길이건

초록불로 바뀌었을 때, 종종 슬며시 앞바퀴를 들이미는 차들을 발견하면 그때마다 나는 크게 외쳤고, 어떨 땐 보란 듯 사진 찍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참고로 내가 소리를 잘 지르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런 차들은 한결같이 창문을 바짝 올리고 있어서  혹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서 배려하는 차원이다.


지금 사진 찍었습니다. 신고합니다.

신고는 안 했지만, 차 밖으로 뛰어나오실까  가슴이 두근거려 재빨리 건넜다.


저기요. 지금 초록불 안 보이세요?





그러던 어느 날,

이젠 3학년이 된 아이와 학원에 데리러 갔다가 길을 건너려는데  또 우회전하는 차량이 우리 앞을 쓱 지나려 했다. 이곳 역시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이다.

주변이 학원가라서 아이 또래 친구들이 많았다.

이젠 커서 더 부끄러워할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학교에서 쌈닭으로 불리면 아주 곤란할 것 같았다.

아이를 꽉 잡고 뒤로 물러있게 해 놓고, 다가오는 차 으로 내가 먼저 지나가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한 걸음을 성큼 내밀자 내 옆에서 스르륵 멈췄다.


그 차를 째려봤다.

길을 건너고 건너며 고개를 꺾어가면서까지..

'나는 당신을 보노라.'라는

무언의 눈빛으로 길을 다 건널 때까지

아주 힘 있게 노려보았다.

운전자가 내 눈빛을 보았는지 알 길이 없다.

나는 그렇게 내가 해야할 일을 할 뿐이었다.

길을 다 건넜더니 아들이  내게 한마디한다.


엄마! 오늘은 왜 소리 안 질러?


헛, 이게 무슨 말인가? 네가 소리 지르는 것을 싫어해서 좌중 했건만, 따끔하게 질러줄걸 그랬나 보다.

"아! 그대신 엄청나게 노려봤어.

아마 찔끔했을 거야."라고 답했다.

"왜? 엄마가 또 소리 질러야 할 상황이었어?"

더니,

저 차 나쁘잖아.
엄마가 소리 지를 때가 되었는데,
 안 지르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스쿨존 우회전 차량에 소중한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를 종종 접했다.

그리고 이제는 법이 개정되어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우리 아파트에 횡단보도에는 여전히 시니어클럽 소속 할머님 두 분이 교통지도를 하신다.

이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오신다.

그리고 한 번씩 경찰 오토바이가 곳을 지나간다.

그것만으로도 약간의 위안이 된다.

한 번씩 초록불이 바뀌려는데 우회전으로 들어오는 차량을 향해 할머님께서 교통지도 막대기를 세차게 흔드시며

 "서요! 서요! 서요!"를 외치신다.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사진출처:대한민국  행정 안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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