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침묵

엄마와 할머니의 김장 이야기

by 반짝반짝 빛나는




딸(엄마)의 글



ㅡㅡㅡㅡㅡ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상처에 소금을 치는 듯한 아픔이 찾아온다.
엄마 또한 일방통행이어서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죄인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없다.
ㅡㅡㅡㅡㅡ


육아문제로 공직생활을 접고,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운,
40대 후반에 유아교육 학사과정을 끝내고 나니,
유치원 2급 정교사에 보육교사 자격증까지 안겨줬다.

늦은 교사 생활로 더 열심이었던 나는,
한 해의 결실이자 내년 원아모집의 성패가 좌우가 되는
재롱잔치와 작품전시회로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의 사정을 모르는 엄마는 김장 배추가 도착했으니
내일부터 김장을 하자고 하신다.

계속되는 야간 근무에, 몇 일간의 말미를 달라고 했다.
늦은 밤 12시가 되어서야 겨우 퇴근했던 나는
도저히 엄마 집에 들를 여유가 없었다.

....

80대 노모가 혼자서 그 많은 김장을 한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화도 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여 머리가 복잡해졌다.

둘이서 해도 그 힘든 일들을
늙은 엄마가 혼자서 다 하셨으니.

그래,
탈이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그날 후..
엄마는 몸이 많이
편찮으셨고, 어깨가 상하셨다.

친정 식구는 아무도 모른다.

왜 엄마가 그토록 오랫동안 몸져누워 계셨던 이유를.
그저 노병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을 직고 하면 정신적으로 뭇매 맞을 딸이 안쓰러워 그러셨을까?
나에게 그 어떤 원망도 않으시고,
오빠들에게도 그때의 일은 돌아가실 때까지 침묵하셨다.

이때의 죄송함이
내가 엄마를 더 모셔야 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엄마, 죄송해요, 이런 불효녀를
남들은 효녀라고 불러서
더 죄송합니다!'




외손녀(나)의 글


맛있는 음식들의 즐거움으로 사시는 우리 외할머니!

할머니의 한 해는 식도락 인생이셨다.

계절마다, 제철과일 야채들을
새벽시장 한 바퀴 장 보시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고,

절기별로 보름엔 나물, 동지엔 팥죽...
그리고 시시 때때로
도토리묵을 쑤시고, 샛노란 호박죽,
단술도 질검(엿기름)으로 만드시고..

그럴 때마다
보조 조리사는 바로 엄마!

할머니께서 거동이 힘들어지실 때까진
매해 하셨던 음식들이니,
총책임자는 할머니!
그리고
들고, 나르고, 넣고, 씻고, 치우고...
그런 주방 보조는 바로 엄마!

늘..
그렇게 할머니의 맛있는 음식들이
우리 집 식탁 위에 배달되어 올 때면,
할머니의 음식의 계절들을 알 수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연중 가장 큰 행사는 김장!!

그날만큼은 할머니는 우리 집으로
출장(?) 오셔서,
엄마랑 할머니랑 이틀을 꼬박 수고하셨다.

김장 때가 되면 나 또한 퇴근하고 집에 와서,
팔 걷어붙이고 김치를 치대며,
김장 김치와 고기를 얻어먹곤 했었는데..

할머니께서 거동이 불편해지시고,
누워계신 하루하루가 점점 길어질수록,
그런 할머니의 음식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늘 당연히 때 되면 먹는,
할머니 음식들이라 생각해 그랬던 건지..
딱히.. 그때엔 그 음식들을 그리 즐겼던 것도 아닌데..

이제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유난히 샛노란 호박죽이 생각이 나고,

할머니 표 도토리묵 맛은,
묵 전문 식당 어디를 가도 찾을 수가 없고,

유난히 달달했던 할머니 표 단술은
이제 더 이상 맛볼 수가 없으니...!

평범했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일상들이 될 수 없으니...

그립고,
그립다..
그때가....
그리울 뿐이다!




엄마와 외할머니께서 오래오래 사셨던..나의 학창시절..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