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

by 반짝반짝 빛나는



딸(엄마)의 글



7남매 중 다섯째인 나는 어려서부터 병치례가 잦았다.
아버지는 나를 '병 주머니'라고 부르셨고,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죄가 많아 내가 아프다고 하셨다.

보라색을 유난히 좋아했었던 나를,
엄마는 속상해하셨다.
(환자들이 보라색을 좋아했던 것으로 여기심)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으셨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엄마가 아들 5형제를 낳아 주시길 바라셨다.
네 명의 오빠들 다음으로 딸인 내가 세상에 나오자,
외동딸이셨던 엄마는 내가 딸이어서 기뻤다고 하셨다.

오 형제를 못 보시고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후 두 명의 동생들이 태어난 후에야
할아버지의 5형제 소망의 퍼즐이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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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딸이 시집을 가고, 엄마가 노쇠 해질 때 즈음....
4명의 오빠를 제치고 내가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엄마는 늘 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셨다.

경제적 쪼들림이 그림자 처럼 늘 나를 따라 다녔었는데,
엄마와 함께 살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조금 나아졌고,

엄마와 함께 산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나를 향한 고마운 마음과,
기특함의 광선이 쏟아지며,
위로와 격려를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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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병이 찾아왔다.

11시간의 대 수술을 받고,
이 주간 입원 후 돌아온 나를 붙잡고
한 없이 우시던 울 엄마!

나와의 이별이 될까 봐,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셨던 울 엄마!

내가 퇴원 후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엄마의 거취가 형제들끼리 논의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나의 목표는
96세 노모를 천국으로 잘 보내 드리는 것이다.!'




외손녀(나)의 글



결혼 전, 퇴근 후 집 앞 버스정류장을 내리면,
오른쪽은 할머니 댁, 왼쪽은 우리 집!

엄마의 퇴근이 늦으시거나, 내가 이른 퇴근을 할 때면,
우리 집이 아니라, 할머니 댁을 들러 밥 한 그릇을 먹고 집엘 다시 돌아가곤 했다.

할머니표 된장에 밥을 쓱쓱 비벼 먹고 있노라면,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 주셨는데,
어떨 땐 새로운 이야기,
어떨 땐 듣고 또 들었던 이야기들....

그 중 엄마를 낳으신 출산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하셨다.

7명의 아이를 낳으셨으니
출산 경험담이 헛갈리실 법도 하실 텐데...
게다가 엄마의 출산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그렇게 유쾌한 이야기도 아니었건만!

60년 가까이 된 이야기를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히 설명하시던 할머니의 표정이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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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사셨다.

그렇게 두 분이서 투닥투닥
아옹다옹 잘 지내시던 어느 날,
엄마가 큰 병에 걸리셨다.

엄마는 야속하게도,
자주 통화도 했건만 멀리사는 내가 걱정할까 봐,
둘째 딸이 눈치 못 채게 당신의 아픔을 숨기시고는,
"엄마 다음 주 수술해! 기도 좀 해줘, 별건 아니야!"
라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그 수술은 별거 아닌 거가 아니었다.
(엄마는 그 후로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하고 계신다)

그 해는 언니와 동생과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슬펐던 한 해였다.

그렇게 엄마가 퇴원하시고...
우린 할머니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우리도 우리의 엄마를 지켜야 했기에,
외삼촌들께 할머니의 거취를 다시 논의해 주시길 부탁 드렸다.

외삼촌들께서도, 외숙모님들의 동의가 필요하셨을 테고,
요양원이나 병원 이야기가 오고 갈 즈음..
엄마는 버럭 화를 내시며,
내 엄마 내가 모실 테니
다들 내 집에서 나가 주시라! 고 하셨다.

엄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외할머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그때의 두 분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할머니께서는, 당신 때문에 딸이 아픈 거라며 자책하셨고,
엄마는, 내가 엄마를 모셨던 게 아니라, 엄마가 나와 함께 살아주신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엄마와 할머니는 2년을 더 함께 사셨다.

늘..
잠자듯 천국 가시고 싶다고 말씀 하셨던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엄마 옆에서 잠자듯 깊은 잠에 드시고는
평안히 천국으로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