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는 딸의 딸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을이 안겨주는 감정에
35년 전 옛 추억 하나가 소환되었다.
초라한 내 행색에 반작용의 힘이 생산된 걸까?
결혼 후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갑자기 나를 이끌고 옷 가게를 들어갔다.
유난히 비싸게 보이는 옷을 향하여 얼마냐고 묻자 점원은 코 대답도 하지 않는다.
다시 엄마가 물어본다.
가게 점원은 엄마를 기분 나쁘게 위아래로 훑어 보더니,
“할머니 돈으로는 그 옷 못 사요!”
나는 당장 나가자고 엄마를 이끌었다.
나를 꽉 붙드는 엄마 손의 압력,
예상치 못한 엄마의 카리스마가 작동했다.
“얼마요?”
짧고 단호하게, 눈에는 힘이 들어갔다.
점원도 놀라는 눈치였다.
단호하게 묻는 엄마의 반격에 뒷걸음치면서 말한다.
에누리 많던 그 시절,
엄마는 일절 에누리 없이
부르는 가격 그대로 옷값을 지불하고 나왔다.
나는 엄마의 자존심 출동으로
그 옷을 10년 넘게 입고 다녔다.
그 당시 엄마의 생활비 반을
내 옷을 산다고 써버린 그때일이 생각이 날 때면
내 몸속에 꾹꾹 눌러있던 자존심이
밧줄을 끊고 뛰쳐나온다.
엄마가 연세가 드실수록, 천국 가시면 그만인데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오히려 이 땅에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좋은 옷을 입혀 드리고 싶었다.
모자에서 신발까지...
집에서 입는 예쁜 잠옷과 속옷들은 유행을 잘 아는 딸들에게 부탁했다.
늘 옷가게에 쇼윈도를 지날 때마다
예쁘고 화려한 옷들을 보면 나보다
엄마 생각이 먼저 났다.
부자 아닌 부자 같은
엄마의 부티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자,
그렇게
'엄마는 딸의 딸로 변해가고
딸은 엄마의 엄마로 변해가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생신이 되면 우리 단톡방엔 담당이 정해진다.
언니는 할머니께서 집에서 편히 입으실 평상복
단, 아주 예뻐야 하고 신축성이 좋아야 한다.
나의 담당은 할머니께서 여름이 되시면
시폰 종류의 하늘하늘 블라우스를 입고 외출하시니,
늘 겉옷보다 더 이쁜 속옷.
(엄마의 요구는 늘 까다로워서,
그래서 내가 입는 겉옷보다 더 비싼 속옷을 사드린 적도 있다!)
남동생은 학생의 시절이 길었으므로 패스.
(하지만, 평상시 소소한 할머니의 생필품 주문은 동생의 몫이다.)
엄마는 당신의 생일엔 늘 아무것도 필요 없다 하시지만,
할머니의 생신 때는 유독 까다롭게 구신다.
그러나 그것도 썩 이상할 것이 없는 이유는
어릴 적 어버이날이 되면
이날은 친할아버지 할머니께 찾아가는 날이라며
우리는 어버이날엔
친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왔다.
어느 날 쇼윈도에 비친
유난히 비싸 보이는 코트가 예뻐서 엄마랑 같이 들어갔다가,
아무리 세일을 해도 해도 너무나 비싼 가격이라
엄마 손을 잡고 나오려는 순간,
엄마는 아무 망설임 없이 카드를 내미시며
일시불로 지불을 하셨다.
그런데 엄마 사이즈가 아니라 할머니 사이즈다.
'할머니께서는 일주일 한번 예배당 가시는 것 말고는 외출이 없으신데
이왕임 매일매일 출근하는 엄마껄로 사지'
내 속마음을 아셨는지,
엄마가 말씀하셨다.
"울 엄마의 유일한 외출이신 예배당 가는 날,
제일 예쁜 모습으로 외출하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