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그리워서..

에필로그

by 반짝반짝 빛나는


ㅡㅡㅡㅡㅡ

엄마가 많이 아프셨다.

항암 치료약 부작용인지 지난해엔 온몸이 퉁퉁 부으셨고,

올해엔 무릎 연골이 상해서 다리를 절으셨다.


그런 엄마가 그리워 찾아간 친정에서


엄마 책상 위에,

엄마가 글이 보였다.


내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건만

문득 엄마의 글이 쓰고 싶어졌다.


엄마를 졸라

글 10개가 드디어 채워졌다.


그렇게 엄마의 글에 내 글이 더 해졌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음, 이렇게 찾아오면 볼 수 있는데,

엄마는, 엄마가 보고 싶어도 뵐 수 가 없구나!'


엄마도.. 엄마가.. 그리워서...





어릴 적 엄마한테 떼를 쓰면 외할머니께서는,

''내 딸이다, 우리 딸 괴롭히지 마라!''

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 막내 남동생은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고 하는데

나는 싫지만은 않았다.


우리 엄마도 할머니껜 '소중한 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도 그런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았을까?

아이들이 나한테 짜증을 부릴 때면,

''우리 딸 괴롭히지 마라~!''

하시며 아이들 데리고 나가 놀아 주셨다.


시부모님께서는 통화를 할 때면

아이들의 안부를 먼저 물으시지만,

(오해는 마셔요~시부모님 모두 다 좋으신 분 이셔요.)


엄마는 나랑 통화할 때면,

나의 투정을 먼저 받아 주시고 안부를 물으시곤

서둘러 전화를 끊으셨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 사람들은 내가 엄마를 모시고 산 줄 안다~

하지만 아니야, 엄마가 나랑 살아 주신 거지. 내가 엄마랑 살면서 얼마나 많은 복을 받은 줄 아니?''


그도 맞는 말인 것이 늘 엄마의 끼니가 걱정이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양보다 질'인 미식가 셔서

맛있는 걸 드시는 낙으로 사시는 분이셨고,


엄만 '질보다 양'인 대충 싱크대에 서서 밥이나 빵을 입에 욱여넣으시고는, 살기 위해 배를 채우시는 분이셨다.


결혼 전

'' 엄마, 제발 그렇게 밥 좀 먹지 말아요~''

하며 나 시집가면 끼니는 제때 드실지 걱정했었는데,


할머니와 함께 사시게 되니 (아버지와는 주말부부시다)

할머니 밥 챙겨드리면서 뭐라도 드시겠지 싶어 걱정을 한시름 놓았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엄마는 예상을 하셨는지

느낌이 안 좋으셨는지

나에게 친정으로 호출하셨다.


할머니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며 찾으신다고

서둘러 내려간 친정에서

할머니께서는 다른 손자 이름은 헛갈려하셨는데,

내 이름을 또렷이 부르시며

내 손을 덥석 잡으셨다.


그러나,

그날 나는

할머니의 반가움은 뒤로한 채,

할머니를 원망하고 돌아왔다.


그때가 마지막 모습이실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채..


유난히 아기가 되신 할머니께서는 엄마한테,

반찬이 별로다,

물이 차갑다,

근기(든든한 기운이 있는)가 있는 물을 달라....


아픈 엄마를 수시로 부르시고,

엄마는 익숙하신 듯 종일 주방과 할머니방 문턱이 닳도록 왔다 갔다 하셨다.


하루 세끼 식사 시간이 5분만 늦어도

배가 고프다고 소리치시는 할머니를 보고,

우리 엄마 적당히 괴롭히시지....

괜히 투정 부리는 아기가 되신 할머니가

얄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날 본모습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일 줄 알았더라면

할머니 손 한번 더 잡아드릴걸

할머니 얼굴 오래오래 담고 올걸.


할머니 주무시는 모습을 뒤로한 채,

울 엄마 힘들어 어쩌냐고

삼촌들은 엄마 이렇게 지내는 거 아시냐고

원망과 속상함을 퍼붓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탈 때 까지도

할머니의 마지막을 예상할 수 없었다.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한 달 만에 다시 간 할머니의 장례식엔 다들 바쁘셨다.

그리고 7남매의 그 자손의 자손들까지

정말 많은 가족과 사람들이,

할머니의 슬픔을 함께 하러 오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살아생전 이 많은 가족들이 다 모였더라면,

우리 외할머니 진짜 기뻐하셨겠다'


죽음에는 환송식이 없구나!


이 많은 할머니의 자손들이 오직 할머니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걸 아신다면

정말 흡족해하시며 빙그시 웃으셨을 텐데....




나는 장례식 때 울지 않았다.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이 많아질수록, 할머니께서 나이가 드시며 노쇠해지실수록,

할머니의 마지막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펑펑 났었는데

정작,

할머니의 마지막 얼굴을 뵈었을 때, 원망이 많아 그랬는지

난 내가 왜 눈물이 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많은 할머니의 손주 손녀들 중 한 명이라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친손녀도 아니고 외손녀이지 않은가!




그 후로 찾아간 친정에서 할머니방은 그대로인데, 할머니께서 안 계신다는 것을 문득문득 느낄 때


우리 집 아들 둘이 왕 할머니가 늘 누워계시던 곳을 가리키며 왜 없냐고 물을 때


집에서 밥 먹다가, 문득 할머니의

''빛나야~!''

하시는 정겨운 목소리가 책상 위 할머니의 사진에서 들리는 것 같을 때...


할머니의 짜글이 된장국과 달달한 식혜가 생각이 날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난다.


친정에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당연히 뵐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