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시점에서 바라본 '나'
“여보, 칼이 잘 안 드는 것 같은데,
내가 갈아줄까요?
아님 칼 가는 곳에 다녀올까요?”
“아니에요, 무서워서요.
어릴 적 식칼로 밤을 자르다
손가락을 베인적이 있어요.
칼을 날카롭게 갈면 겁이 나서 못 쓸 것 같아요.”
참, 내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미리 안 하였구나,
나는 분신술이 있어 이 집의 도마로 명명된 후,
이 집의 모든 도마는 바로 ‘나’다.
그런즉, 내가 버려지고 새로운 도마를 구매하더라도
그것 또한 ‘나’이다.
“여보, 이건 용도가 뭐예요? 장식용이예요?”
“아, 그거, 조리용 도마인데
나무 도마 썼을 때 생각보다 관리가 참 힘들더라고요.
다시 잘 사용할 용기가 안나 저렇게 보고만 있어요.
향기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그냥요.”
“엄마, 이거 진짜 비싸고 좋은 도마예요.
그러니까 기름도 잘 발라주고 그늘에 잘 세워 말려주고,
관리 정말 잘해줘야 해요. 알겠죠?
내가 진짜 확인하러 올 거예요.
곰팡이 피면 진짜 안돼요 알겠죠?”
“어머니, 도마가 예뻐서 샀어요.
사용설명서 꼭 확인해 보시고 사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