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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Jun 29. 2023

비 오는 날의 수채화

'후드득'

아이 하교시간 즈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비가 더 심하게 내리려나? '

멈칫, 마음으로는 고민했지만 내 손과 발은 갈 길을 향한다.

내가 쓸 우산 한 개,

아들에게 줄 우산 한 개,

그리고 여분의 우산 한 개를 챙겨 학교로 간다.




내겐 비 오는 날의 아주 선명한 머릿속 풍경이 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얼마의 생활비를 주는 소임으로 역할을 다하시는 분이셨고

어머니는 그 당시엔 박봉인 아버지의 월급으로 생활비가 부족해 이것저것 일거리를 찾아서 일을던 시절이었다.

아침 뉴스 일기예보를 챙길 겨를이 없었고

학교 가기 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우산을 챙겨 갑작스러운 비에 대비할 생각까지는 하기 힘든,

나는 그저 어린아이 일 뿐이었다.



그렇게 하굣길에 비가 오면,

학교 정문에 북새통인 마중 나온 엄마들을 비집고 나와

비를 맞고 먼 집까지 걸어가야 했던 어린 시절...

어떨 땐, 마중 나온 친구 엄마를 만나 운 좋게 같이 오거나

어떨 땐, 우산 없는 친구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뛰어가거나

또 어떨 땐, 아무도 마주치기 싫어서 혼자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골목길을 돌고 돌아

온몸이 홀딱 젖어 집에 도착하기도 했었다.


그 당시엔 우산을 가지고 학교 앞에 서 계시는 친구들 엄마가 부럽기도 했었고

일 하시느라 우산을 가지고 못 오시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 한다고 했지만,

난, 우리 아이에게 만큼은

비 오는 날 학교 앞에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엄마가 되리라 다짐했다.


 



비가 갑자기 내릴 때 쓰라고 아이 가방에 넣어둔 3단짜리 우산이 있다.

햇볕이 쨍쨍한 날에도 절대 꺼내지 않고

1년 365일 책가방 안을 무겁게 지키고 있는 우산이지만,

비가 오늘처럼 갑자기 많이 내릴 것 같은 날엔 긴 장우산을 챙겨 학교로 향한다.


학교 현관에서 실내화를 신발로 갈아 신으려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3단 우산을 꺼내는 아들과 눈이 마주친다.

이럴 때 쓰라고 가방 안에 우산을 늘 넣어두었으면서,

왜 또 우산을 챙겨 왔냐는 눈빛으로 아들은 나를 쳐다본다.


어쩌면 나는 비 오는 날,  

우산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마중 나온 엄마의 따뜻한 모습이 그리웠던 것도 같다.


그렇게 아이를 맞이하고

여분의 우산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혹시나 어릴 때의 나처럼

갑작스러운 비에 맞고 가는 아이는 없을까 하는 마음에...


하지만, 아이들은 괜찮은가 보다.

내가 내미는 우산을 거절하며 친구들과 우르르 신나게 비를 맞고 뛰어가는 아이들,

어떤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베푸는 호의를 거절하라는 가정교육을 단단히 배웠는지

어색한 미소로 거절하고 비를 맞으며 지나간다.

그러면 '아줌마, 나쁜 사람 아니야. 딱 저기 아파트 입구까지만 씌워 줄게' 하고 횡단보도를 같이 건넌다.





오늘도 비가 온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거세게 내리는 빗소리가 좋으면서도 아이들 하교 시간엔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장마전선 물폭탄이 온다고 단단히 예고했고,

아침부터 비가 퍼붓는 오늘 같은 날엔

우리 아이도 우산을 쓰고 갔고 우산을 안 챙겨간 아이도 없겠지만,

그래도 하교 시간에 우산을 들고 학교 앞 정문을 서성여 봐야겠다.


혹시나,


아주 혹시나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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