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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May 19. 2022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니는 여자

중독과 무관심,  그 중간쯤이 필요한 아줌마.



양말 뒤꿈치에 구멍이 났다.




둘째 출산 후, 급격히 불어난 몸무게로 인해 '족저근막염'이란 질병을 갖게 되었다.

찬란한 20대를 함께했던 킬힐은 물론, 그렇게 편하고 애정 했던 '아디**' ' 나**' 운동화도 더 이상 못 신게 되었다. (나무토막에 발을 구겨 넣는 느낌이다.)


그 후 족저근막염에 편하다는 '스케**' 한 시리즈로만 신발을 사는데, 유일한 단점은 신발이 빨리 해진다는 점이다.


여하튼, 5켤레쯤 그 신발만 신고 살아가던 중

이번 신발은 그렇게 낡지도 않았는데

뒤꿈치에 뾰족한 뭔가가 튀어올라 살을 찔러대며

예전 신발보다 적극적으로 새로 사야 할 시그널을 보내왔다.

걷는 걸음마다 뾰족한 부분이 왼발 뒤꿈치를 일정한 간격으로 모스부호 신호를 보내듯 찔러댔다.


'아! 신발 사야 하는데..'  

신발을 '신을 때마다' 생각했지만

신발을 '벗을 때마다' 잊어버렸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에 신발을 벗고 왼발을 쑤~욱 뻗었더니

왼발 뒤꿈치에 오백 원 동전만한 제법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날 선 뾰족함이 뒤꿈치를 꾸준히 찔러 드디어 양말에 '구멍'이라는 '성과'를 냈다.


누가 봤을까 살짝 두리번거리다 나름 아주 자연스럽게 오른 발등으로 왼발 뒤꿈치를 쓱-윽 비벼 구멍을 바닥 쪽으로 쓸어내리고는 태연하게 책을 빌려 재빠르게 신발을 신고 도서관을 나왔다.


그 후 며칠을 주기로 내 왼쪽 양말은 한 짝씩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기존 자질구레한 양말을 다 버리고 똑같은 차콜색 양말만 7켤레 구매했던 터라, 한 짝이 구멍이 나도 나머지 한 짝은 안 버려도 되니 '이 얼마나 경제적인가!'를 외치며 탁월한 선택을 한 나를 괜스레 칭찬해 보았다.




오늘도 역시 구멍 난 양말 한 짝을 버리고 남은 찾아보니 이젠 한 켤레의 양말이 남았다.

단 한 켤레..!


마저도 구멍이 난다이제 신을 양말이 없다.

정 없다면 남편 것이라도 신어야겠지만, 무좀이 있는 남편 양말을 신을 바엔 7살짜리 꼬맹이 양말을 신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양말을 어서 사야 할까?

신발을 어서 사야 할까?

너무 당연한 정답을 고민하고 있는 내가 참으로 생경했다.

우리 동네에 그 신발 매장이 없어서 계속 미룬 것은 핑계일 뿐이다.


그 어떤 헛헛함으로 쇼핑에 중독되어 살았던 과거의 내가,  

한 순간 물욕을 끊고 추레한 모습으로 언니에게 등장했을 때, 

그녀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내게 건넨말은

''우리 동생 왜 이렇게 되었어?ㅜㅜ''  였다.

그리고 내 심경이나 경제적 부분에 큰 변화가 생겼는지 안부를 물으며 심히 걱정하고 안타까워했다.


그 후로 그녀는 철만 되면 옷, 화장품, 아이들 장난감, 생필품 등을 택배로 부치는 바람에 미니멀과 무소유의 자유를 누리고자 일 년 동안 필요 이상의 것 안 사기, 생필품 안 쟁이기, 옷 사기를 안 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며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녀의 관심과 선행으로 인해 '반쪽짜리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 중에 있는 '나'였다.




각설하고,

이제 마지막 양말까지 구멍 나기 전에 신발을 구매하고자 앱을 켰다.

'아!  그런데 이 신발 사이즈가 뭐였더라?'

내 발은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조금씩 달라 혼용해 신는다.

 '스케**' 사이즈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보면 사이즈 확인이 가능할 테니 '어서 해치우자'라는 마음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귀찮음을 누르며 현관으로 나갔다. 


앱을 켠 김에...


뾰족 튀어나온 신발 사이즈를 살펴보았다.

'8- 이건 대체 뭔 사이즈 일까?'

(검색해 보니 250이라고 한다.)

그래도 혹시나, 한 켤레 더 찾아보았다.

유난히 두껍고 더워 보여 겨울용으로 신었던 신발을 신발장을 뒤적이며 찾아보았다.

'어랏? 7.5? -숫자가 다르다.'

(이건 그럼 245 사이즈겠지?)

...

괜한 수고로 더 헛갈리게 되었다.


불현듯,

많이 낡아 버리려다 분리수거하러 가는 길에 신으려고 버리지 않았던 신발을 앞 베란다 어디쯤에 둔 기억이 났다!

그 신발 사이즈만 알게되면  2:1로 고민도 없이 주문이 가능하다.

얏호

야밤에 베란다를 뒤적이며 겨우 찾았는데 이 신발은 사이즈가 안 보인다.

'사이즈가 닳아서 사라졌나? 원래 없었나?'

...


이제부터 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떤 사이즈를 사야 할까?


신발 하나 구매하려고 이 밤에 신발장과 베란다에 나가 허탕 치고 온 내 모습에 애써 참고 눌렀던 귀찮음과 짜증이 살~짝 밀려왔다.


신발을 사려면 일단 매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를 포기했다.

괜히 아무거나 주문했다가 반품비나 날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신발 매장이 아주 먼 관계로 양말이나 한 세트 더 주문해야겠다.


앱을 켠 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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