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일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당신에게
바닷가재(랍스터)는 평생을 산다고 말한다. 노화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알려진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는 신기한 동물 바닷가재. 그들은 평생을 노화가 아닌 성장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운이 나쁘면 인간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고 어쩌다 상위 포식자를 만나 죽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노화로 인한 죽음은 피한 신비로운 생명체이다. 하지만 그들도 필연적으로 생명의 위험을 느낄 때가 존재한다. 바로 그들이 "탈피"를 할 때이다.
그들이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고 속살이 말랑말랑 커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보호해주었던 껍질이라는 존재가 어느 순간 불편해졌을 때 가재는 바위 밑에 숨어 탈피를 진행한다. 탈피를 하며 가재는 수많은 위험에 휩싸인다. 말랑한 속살이 드러나 다른 포식자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도 있으며 탈피를 한다 하여 바로 딱딱한 껍질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에 바닷가재는 바위 밑 깊숙한 곳에 숨어 딱딱한 껍질이 생기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탈피를 감행하는 이유는 탈피를 하지 않으면 딱딱한 이전의 껍질 속에서 비대해진 속살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재의 껍질을 커질수록 더 두껍고 단단해지기에 점점 탈피의 실패 확률이 커져 탈피를 감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가재들이 죽곤 한다.
고등학교에서 줄곧 공부를 잘했던 나는 막연하게 대학을 와서도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 주위에서 늘 똑똑하다는 말을 해줬고 나 또한 그 말을 이유 없이 믿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의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공부를 하는 행위가 쉬웠다기보다는 공부를 하면 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왔다. 모르는 문제가 있다고 해도 책마다 풀이 영상이 있었고, 인강 사이트에서 물어도 학교 선생님께 물어도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한 답들을 얻고 나의 것으로 다시 만드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은 모든 것이 달랐다. 인강도 없었고(있었다고 한들 가격이 너무 비싸 도전하지 못했다.) 심지어 책에도 답이 나와있지 않았다. 풀이과정은 정말 내가 깊이 탐구해야 겨우 알 수가 있었고 그것마저 하지 못하면 교수님께 여러 번 물어봐야 알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다. 내가 정보의 바다에서 공부를 하던 방법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껍질로는 이 대학이라는 바다를 헤엄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지식을 탐구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커져 지금의 껍질로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탈피하지 않았다. 탈피를 하려면 나의 맨살을 짜디짠 바다에 두어야 했고 딱딱한 껍질이 다시 나려면 동굴 속에 다시 갇혀 있어야 하니 말이다. 고등학교 내내 나는 동굴 속에서 갇혀있다시피 생활했기에 어두운 곳으로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인정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탈피를 감행하면 정말 바닥부터 다시 공부하는 방법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탈피를 해야 함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포기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야. 안 하는 거야.
이 말은 철저히 거짓말이었다. 대학교 공부를 마음을 다잡고 심도 있게 탐구하고 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니 나는 그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그걸 알아볼 기회도 포기했기 때문이다. 가재가 자신의 딱딱한 껍질 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가듯이 애써 모른 척했던 공부에 대한 열망도 점점 숨을 쉬지 못했다. 그 마음이 나의 단단한 아집, 껍질 속에서 질식해 갈 때 나는 다른 곳에 마음을 쏟았다. 그게 연애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취미 활동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나의 성장욕구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눌렀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되지 더러 겁이 났다. 나의 거짓말로 치장한 껍질이 깨질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말을 증명해야 할 시기에 놓인 것이다. 대학교에서 쌓아둔 스펙도 딱히 없었던 나기에 취업은 무리였으니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대학원을 가거나 전문직 자격증을 따거나! 문제는 두 대안 모두 공부를 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름 생각을 해서 고른 것은 전문직 시험이었다.
다른 대학을 간 사람들도 다 한다는데 이 대학교를 나온 내가 못하겠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시험 준비를 했다. 당연히 그러한 생각은 실은 진심을 다해 공부를 해도 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한 마음이었고 그런 마음이었기에 더욱더 열정을 다하는 것은 힘이 들었다. 정말로 내가 진심을 다해 공부를 했는데도 떨어지면 나는 똑똑한 사람이 더 이상 아니니 말이다.
이러한 변명은 추후에 수많은 변명을 낳았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몸이 안 좋네. 오늘은 쉬어야지. 나는 똑똑하니 오늘 쉬어도 상관없어."라는 말을 하게 했고 강의가 이해가 안되더라도 "지금은 초반이라 그런가 보네. 나중에 되면 다 이해될 거야. 난 똑똑하니까."라며 열정적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공부를 하는 게 지루하고 싫었던 것은 진심을 다했을 때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딱딱한, 그리고 낡은 "진이는 똑똑해"라는 껍질 속에 있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탈피를 하지 못했다.
대학교 내내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은 숨 막히는 불쾌함을 다른 곳에 집중하여 푸는 방법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것은 연애일 때도 취미일 때도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나는 그 핑계를 그대로 다시 사용했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은 베이커리를 하고 싶어. 공부해서 전문직을 가지면 뭐해 이렇게 일해도 다들 잘 사는데! 공부를 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냐.
공부를 꼭 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말은 나에게만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의 변명 저 깊은 곳에서는 실은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고등학교 시절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적이 올라가고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을 채우고 새로운 공부법을 알아가는 기쁨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던 대학시절 나를 행복하게 했던 기억을 떠올려 봐도 연애와 취미보다는 오히려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서 괜찮은 성적을 받은 날이나, 좋은 질문을 해서 교수님과 토론을 펼친 일 그리고 토익에서 900점을 받았을 때니 확실히 나의 진정한 행복은 내가 성장을 했을 때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고 인정하면 해야 할 노력들이 싫고 불쾌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연애를 하고 다시 내 꿈을 망각하며 지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배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것은 꽤나 힘이 들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상태이기에 수업에 참여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시 전문직 시험에 눈을 돌렸다.
여전히 나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공부에 임했다. 공부를 잘하니까 똑똑하니까 당연히 남들보다 잘할 거야라며 말이다. 일부러 전문직의 종류도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분야로 바꿨지만 이상하게도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인강은 알아듣기가 힘이 들었고 그럴수록 집중을 더욱 하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포기라는 선택지를 지웠던 상태라 나는 내가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똑똑한데 왜 이걸 못할까? 점점 나를 감싸고 있는 껍질에 괴리감을 느꼈다. 그때 인강 선생님(강정훈 평가사님)께서 한마디를 해주셨다.
여러분 다들 인생의 길에서 타고 온 말에서 내리셔야 합니다. 내리셔서 새롭게 길을 걸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무슨 대학을 나왔는데 하며 잘난 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들 같은 출발선이에요. 마음을 다하셔야 붙을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나한테 말씀을 해주시는 것 같았다. 맞는 말이다. 나는 공부에 내 마음을 다한 적이 없었다. 나는 똑똑하다는 핑계 뒤에 서서 "나는 이거 안 해도 되겠지. 나는 똑똑하니 이런 과정은 생략해도 되겠지" 하며 내 마음을 다해 이 공부를 하지 않았다. 물론 배우는 기쁨이야 느꼈을지는 몰라도 배우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소홀히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강을 듣고 지식을 쌓아도 모래성을 쌓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날 처음으로 최조의 상태로 돌아가 어떤 대학교 출신 김진이 아니라 그저 수험생 김진으로서 마음을 다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모르는 단어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복습도 꼼꼼히 했다. 고등학교 시절 암기를 할 때 만들었던 플래시 카드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고 인강을 들으며 잠이 오는 날에는 왜 이 강의에서 잠이 왔지? 예습을 하고 들으면 어떨까 하며 여러 공부 방법을 시도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인강만 듣던 날들보다는 공부 속도가 느렸고 실패하는 공부 방법도 있었지만 점점 이해가 되는 과목들이 늘어나고 공부를 하는 속도도 점점 빨라짐을 느꼈다. 나의 딱딱한 껍질이 드디어 큰 소리를 내며 깨졌다. 다른 누군가의 압력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던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 딱딱한 껍질을 깨버린 것이다.
바닷가재는 탈피를 할 때 동굴 속에 들어가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숨긴다. 그리고 더 크고 멋진 껍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옛 껍질을 먹는다. 자신을 숨 막히게 하던 껍질이었지만 그 껍질을 먹고 소화함으로써 더 멋진 껍질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대학교 시절 내내 나의 모습이 어쩌면 한심하고 못나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습도 나의 일부이다. 내가 딱딱하게 만든 나의 껍질이자 내 대학 시절 인생이라는 파도를 견디게 도와준 방어막이었다. 연애와 취미에 집중했기에 성장이라는 큰 주제는 놓쳤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다루는 방법 사랑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그리고 인생을 다채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오랜 껍질은 지금 내가 동굴 속에서 다시 나의 껍질을 만들 때 엄청난 자양분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공부가 얼마나 걸릴지 그리고 옛 껍질을 소화하고 다시 새로운 껍질을 만드는 데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동굴 속의 생활도 내가 더 크고 멋진 껍질을 만들기 위함이고 결국 껍질이 깨고 나온 지금이 나 스스로를 마주하기 제일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새로운 껍질도 언젠가는 깨야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의 경험이 그때 가서 큰 힘이 되어줄 것 또한 알고 있기에 지금의 시간을 최대한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보내려 한다. 지금처럼 스스로 탈피해야 할 때를 알고 탈피할 수 있다면 나의 외면은 노화가 올지언정 내 내면은 계속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혹시 지금 왜인지 상황이 불편하고 스트레스받나요? 문제가 될 것이 보이지는 않는 왜인지 모를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요? 그렇다면 그런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당신은 언제 탈피를 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