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나서다
누군가 제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저는 지체 없이 대답할 것입니다. 석 달여간에 걸친 문화유산 기행이었다고.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며 추억할 수 있을 뿐이지만, 언제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저는 기꺼이 경차에 텐트를 싣고 다니며 잠을 자고, 사우나에서 씻고, 혹시 만날 수 있는 24시간 찜질방이 있다면 거기에서 숙박하면서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에서, 읍성 주차장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산 중턱에서, 쓸쓸한 마을 한 구석 좁은 공간에서, 공용 화장실만 있다면 어디든지 텐트를 치고 잘 것 같습니다. 폭염경보가 내린 날에도 들개처럼 쏘다니며,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에서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바쁘게 발을 움직였습니다. 덕분에 200백여 곳을 찾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가 없고 늘 똑같은 삶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배움을 위해서였고, 경험을 쌓기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행을 다니기 몇 달 전, 집에서 키우던 토끼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처음에는 세 마리였는데, 하나 둘 죽더니 한 마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6년 전이었던가, 7년 전이었던가. 운동을 나갔다가 우연히 토끼 한 마리를 보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 식구가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놔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은 조그만 비탈에 울타리를 쳐 놓고 마음껏(?) 뛰어다니며 굴을 파고 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광활한 자연 속에서 노니는 것만큼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암컷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울타리 밖으로 도망을 나와 ‘탈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수컷만 밖에 나와 있는 날이 며칠이나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수컷은 파놓은 굴로 도무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때 저는 어렴풋이 짐작했습니다.
‘죽었구나.’
저는 원래 동물을 엄청 좋아해서 죽는 것을 볼 때면 많이 슬퍼합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에는 좀 달랐습니다. 죽은 모습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풍산개 몇 마리를 데리고 산에 사는 사람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죽을 때가 다 된 풍산개 한 마리가 집을 나가더니 돌아오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는 것을 보면서 슬퍼할 누군가를 염려해서일까요. 동물 중에는 죽을 때가 되면 혼자서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일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제 죽을 때를 알고 혼자서 죽을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에 왠지 모를 경외심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탈순이’도 그런 것일까요? 그래서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론 그립기도 합니다.
제가 여행을 떠난 것은 단순히 문화유산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찾는 목마름이기도 했습니다. 동물도 살 때와 죽을 때를 알고 제 몫을 살아내는데, 마땅히 사람도 부족함 없이 제 몫을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연재 브런치북을 통해 여행 중 보고 생각한 것을 나눌 계획입니다. 함께 여행하는 마음으로 동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