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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Mar 31. 2024

몽글몽글 행복한 백제여행(2)

부여

< 여행 넷째 날 >


오늘도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일요일이지만 날씨가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우산을 들고 능산리 고분군부터 둘러보았다. 지금은 '부여 왕릉원'이라는 명칭으로 공식 변경되었지만, 여행할 당시에는 '능산리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송산리 고분군은 무령왕릉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능산리 고분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능산리 고분군에는 백제 사비시대의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데, 무왕과 의자왕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이 이곳에 묻혔다고 추정하고 있다. 한 바퀴를 돌면서 꼼꼼히 살피다 보니, 의자왕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삼천궁녀의 이야기도 그렇고, 백제를 멸망시킨 왕이라는 수치스러운 딱지 때문에 온갖 나쁜 이야기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는데, 제대로 역사를 알고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의자왕은 태자 때부터 부모를 효성스럽게 섬기고 형제들과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고 불렸다. 왕이 되어서는 국정을 쇄신하여 왕권을 강화시켰고, 고구려와 연합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당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오히려 신라의 영토를 빼앗아 영토를 확장시켰던 정복군주이기도 했다. 비록 집권 말기에 실정으로 왕족이 득세하고, 지배층이 분열되어 나라가 멸망당하였다고는 하나, 그렇게까지 저평가되고 욕을 먹어야 할 군주는 아니었다.


모든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한 일이기도 한데, 사실 세상 일들이 하도 많고 복잡하여 사람의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지식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이 뭘까? 돈 버는 지식, 인간관계에 대한 지식, 위기에 대처하는 지식, 안락한 삶을 위한 지식,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지식 등.. 그런데 거기에 옳고 그름을 아는 지식은 없을까?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밑바탕에 진실과 올바름에 대한 갈망이 근본적으로 서려 있다고 믿는데,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능산리 사찰터와 금동대향로가 출토되었던 ‘공방지’터, 한반도 최초의 도시 외곽성인 ‘나성’도 빠짐없이 확인하고, 아트 뮤지엄에도 들어가 화려하게 연출되는 그래픽의 향연도 맛보았다.




나성은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수도 외곽성으로, 평양에 있는 나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나성 중의 하나라고 한다.

능산리사지는 나성과 고분군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과거 이 절은 국가 사찰로 능산리고분군에 축원을 빌기 위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이하게 사찰 내부에 공방을 두었는데, 이곳에서 금동대향로가 출토되었다.





동선을 다시 점검해 보고 먼저 송국리 유적을 갔다 오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풀이 무성하여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스페셜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곳이었는데, 솔직히 많은 실망을 했다.



송국리 돌널무덤에서 발견된 비파형 동검. 그동안에는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서는 출토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가까운 곳에 신직리 지석묘가 있다고 해서 가 보았다. 지석묘는 고인돌의 다른 명칭인데, 거기는 지네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런데 지석묘라는 표현이 일본식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궁금해서 국립국어원에서 사전을 찾아보니, 지석묘가 고인돌의 다양한 이름 중 하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중국어의 요소를 많이 차용한 일본어의 성격상, 고인돌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지석묘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우리 생활 전반에 아직까지 일제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음을 발견한다.


신직리 고인돌





정림사지 5층석탑은 솔직히 너무나 아름다웠다.

찌는 듯한 더위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만큼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목탑의 양식을 취한 최초의 석탑이 미륵사지 석탑이라면, 정림사지 석탑은 그 뒤를 잇는 또 하나의 과도기 석탑 양식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장하리 3층석탑처럼 너무 살이 빠져 보이지 않고, 적당하게 늘씬한 탑신과 그 위에 크고 넓적하게 올려진 지붕돌이 정말 멋들어졌다. 지금도 석탑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가장 아름다운 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보탑도 아니고, 석가탑도 아닌 정림사지 5층석탑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내게 인상 깊었던 탑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정림사지 5층석탑에는 사연이 얽혀 있는데, 1층 몸돌에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키면서, 백제의 심장부에 있던 사찰의 탑 몸돌에 자신의 공적을 새겨 넣은 것이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석탑이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을 줄이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모순과 역설이라는 것이 세상 모든 존재의 존재양식이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것에 가장 추한 것이 숨어있고, 가장 추하게 보이는 것이 가장 고귀한 것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이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니겠는가.


우측이 장하리 3층석탑. 여행 당시에는 보수공사 중이어서 제 모습을 다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탑신이 다이어트를 한 것처럼 길쭉하고 늘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림사지 5층석탑

궁남지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서등 연꽃축제를 만나, 늦은 밤 시간까지 야경과 공연을 즐겼다.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 될 만큼 넓은 공원 전부가, 연꽃으로 둘러싸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레이저쇼를 한다길래 기다렸지만, 다음 주에나 한단다.

'에휴~.'

허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삶, 사유, 사람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 수, 일 - <딴짓도 좀 해보지?>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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