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셋째 날 >
오늘은 아침부터 부슬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제법 내리기 시작했다. 유적지를 둘러보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날씨다.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하늘을 쳐다보니 금방 그칠 비는 아닌 것 같고, 우산을 챙겨 우선 송산리 고분군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지금은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변경되었는데, 이곳에는 백제 웅진시대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모여 있다. 무령왕릉은 당연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형관 앞에 오늘은 개관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떡 하니 걸려있다.
'젠장, 여기까지 와서 무령왕릉을 못 보다니.'
할 수 없이 고분 둘레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나섰다. 걷다 보니 공주 국립 박물관으로 안내하는 팻말이 보였다. 팻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는데, 젊은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고분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이의 재잘대는 소리와 엄마의 웃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그렇게 즐겁게 걷다 보니 어느새 박물관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 문이 닫혀 있다.
'아니, 오늘은 왜 이런 거야? 비가 오면 박물관도 닫나?'
엄마와 아이는 박물관이 닫힌 것을 보고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그런데 문득 옆으로 작은 오솔길이 난 것이 보인다. 다시 되돌아가기도 그렇고, 오솔길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망설임 없이 들어섰다. 그렇게 따라가는데 박물관 정문이 보이는게 아닌가. 문도 열려 있고.
'그럼 그렇지, 비가 온다고 박물관이 닫겠냐? ㅋㅋ'
박물관에 들어서니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몽글몽글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솟아난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만큼. 그렇게 좋았다. 박물관에는 백제 웅진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볼 것은 많고, 사진을 찍느라 분주해졌다. 박물관 전체를 다 담아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역사 다큐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살포, 판상철부, 치미, 수막새와 암막새, 각종 껴묻거리(부장품)들, 태토까지. 역사를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배워보겠다는 생각을 참 잘했다.
살포는 논에 물꼬를 트거나 막을 때 사용하던 농기구로, 백제 시대에 살포는 왕이 신하에게 주는 최고의 하사품이었다. 제후나 지방 관료들에게 살포를 준다는 것은, 곧 그 지역을 다스리는 경제권을 준다는 말이었다.
판상철부는 쇠를 판 모양으로 얇게 펴서 만든 도끼로, 도구를 만드는 중간재료나 화폐로 사용되었다.
치미(왼쪽)는 고대 목조 건축물의 용마루 양 끝에 설치하던 장식 기와를 말하고, 수막새(우측 위)와 암막새(우측 아래)는 기왓골 끝에 붙이는 막음 재료다.
태토는 도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흙을 말한다. 따라서 태토는 도자기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고려시대에는 가장 좋은 양질의 태토가 전남 강진에서 생산되었는데, 강진의 가마터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최상위 계층에게 공급되었고, 그보다 질이 낮은 태토가 생산되었던 해남에서는 한 단계 낮은 품질의 도자기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각 계층에 고루 공급하였다.
오후 늦게는 부여 국립박물관에도 들렀다. 여기에는 백제 사비시대의 역사와 유물이 담겨있다. 공주 박물관에서도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느라 힘들었는데, 여기에도 만만치 않게 많이 있다.
'이걸 다 언제 보지?'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더 앞서, 하나라도 더 많이 보고 담아 오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능산리 사찰의 역사와 유물들, 황홀하게 아름다운 금동대향로, 구구단 목감, 각종 무늬의 벽돌 등. 보고 배울 것들이 너무 많이 있다.
다 둘러보고 나니 몸이 녹초가 되었다. 찜질방에서 씻고 앉아 있으니 잠이 솔솔 오는 게 눈이 저절로 감긴다. 오늘 뭐를 보고 배웠는지 사진을 일일이 살펴보니, 참 많이도 보고 많이도 찍었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박물관에서 느꼈던 감동과 즐거움이 그대로 살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몹시 피곤했지만 찜질방엔 코골이들이 많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귀마개를 사야지!'
금동 대향로는 중국 한나라 박산향로의 형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창의성과 조형성으로 백제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작으로 평가받는다.
목간은 종이가 없던 시기에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나무조각을 가리키는데, '구구단목간'은 백제가 일본보다 앞선 7세기에 이미 구구단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백제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벽돌. 특히 산수풍경무늬 벽돌은 '산수문전'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좌측 위).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삶, 사유, 사람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 수, 일 - <딴짓도 좀 해보지?>
일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