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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Mar 20. 2024

수행 중, 출입 금지

서산, 예산의 문화유산

< 여행 둘째 날 >


언제나 만남은 짧다.

어제 하루 저녁 선배를 만나 옛이야기를 주고받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훌쩍 시간은 지나가고 말았다. 자리에 누웠지만 여행에 대한 들뜬 마음과 기대 때문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선배가 아침을 차려주면서 든든하게 먹고 출발하라고 한다. 후배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먹고 제대로 여행하고 뭔가 얻어와야겠다고 다짐한다.


안면도를 떠나 서산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오늘은 개심사를 시작으로 서산 마애삼존불, 보원사터, 사면석불, 남연군묘, 윤봉길 의사 기념관, 수덕사까지 돌아볼 예정이다.


개심사는 외국인들이 봄에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는데, 그 이유가 꽃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은 여름이라 꽃이 만발한 장관을 볼 수는 없지만, 정작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종루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낡고 바랬지만, 그만큼 오랜 세월을 머금고 수많은 인생을 지켜보며, 세상의 질고를 함께 했을 존재의 무게가 오롯이 느껴진다. 종루의 기둥들은 멋스럽게 휘어져 있어, 한국 건축 양식의 개성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개심사는 꽃을 보러 많이 찾는다는데, 개인적으로 개심사 하면, 이렇게 멋스럽게 휘어진 종루의 기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개심사를 찾은 한 부부가 연못가 배롱나무를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사진을 찍고 계셨다. 무슨 나무인지 몰라 여쭈어보니 백일홍이란다. 정식 명칭 배롱나무. 원래 나는 꽃과 나무에 별 관심이 없어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면 한 번 쳐다볼 뿐 그냥 지나치곤 했었는데, '배롱나무'란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왜냐하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줄기차게 나오던 단어가 바로 그 말이었기 때문이다.

'호~, 유홍준 교수가 그렇게 좋아한다는 나무가 바로 이 나무란 말이지?'

그제야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서 줄기며, 가지며, 꽃의 모양새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꽃을 보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어대고, 어린아이처럼 재잘대면서 꽃 사이로 뛰어 들어간다. 그냥 밖에서 냄새를 맡고 옆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안 되나? 꼭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냄새를 맡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당최 그 이유를 모르겠다. 카메라를 최대한 가까이 대고 사진을 찍는데, 꽃의 아름다움을 담으려는 것인지, 꽃을 연구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왜 저러는 걸까?'


그런데 이제는 그 모습이 부럽다. 내게는 왜 그런 감성이 없는 거지? 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그런 게 있긴 하다. 똥강아지 새끼를 볼 때 그런 감성이 생기니까. 이제는 꽃과 나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개심사 못 옆에 있는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백일홍, 간지럼 나무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뜨거운 여름에 꽃을 피운다고 들었는데,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배롱나무의 줄기는 이처럼 매끄럽고 반질반질 윤기가 흐른다. 배롱나무의 꽃은 하나의 꽃이 백일 동안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꽃봉오리가 차례차례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한다.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은 백제의 유일한, 동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 사면불이라는데, 훼손이 심하여 사실 알아보기 어려웠다. 일명 '사방불'로 불리는 사면석불은,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사방 정토에 군림하는 신앙의 대상인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불, 미륵불을 뜻한다고 한다. 불상에는 백제 고유의 양식인 원형 불꽃 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우측 불상의 유실된 머리 부분에 원형 불꽃 무늬와 연꽃 무늬가 새겨진 것이 보인다.

 

수덕사에서는 1,080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정혜사에 다다랐을 때는 ‘수행 중이니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결국 빈손으로 내려와야 했다. 땀이 비 오듯 하고,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수덕사 스님 한 분이 나를 주시하더니 합장하며 인사를 건네셨다. 몸빼에 수수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땀으로 범벅이 된 모습을 보고, 1,080 계단을 오르며 수행하는 불자로 보셨나 보다. 당황하여 멋쩍은 인사만 건넸다.


다음 백과를 찾아보니 합장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불교의 예법인 합장은 원래 흩어진 마음을 일심(一心)으로 모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섯 손가락을 붙이는 것은 눈, 귀, 코, 혀, 피부 등이 색깔, 소리, 냄새, 맛, 감촉을 좇아 부산히 흩어지는 상태를 한 곳으로 향하게 한다는 뜻이다. 손바닥을 마주 붙이는 것은 이 앞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감지하고 조정하는 제6 식인 의식(意識)을 모은다는 뜻을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 합장의 자세는 다툼이 없는 무쟁(無諍)을 상징하는 것으로, 합장한 상태로는 싸움을 할 수 없으며 동정(動靜:움직임과 고요함) 및 자타(自他)의 화합을 뜻한다.'


합장은 인도의 인사법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오른손은 신성함을 상징하고, 왼손은 부정함을 상징하는데, 합장은 신성함과 부정함이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여기에 인간의 진실함이 있다고 여겼다. 나도 합장하며 인사를 해야 했을까? 사람들은 고귀한 뜻과 의미를 기억하고 간직하고자 의식화, 제도화, 교리화하지만, 그것은 때로 본연의 의미를 망각하게 만드는 역설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 같다.


수덕사 대웅전.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은 건립연대를 알 수 있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건립된 백제계 양식의 건물이다.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삶, 사유, 사람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 수, 일 - <딴짓도 좀 해보지?>


일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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