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청년 편지>
소설가 이승우 씨에게서 나는 “서자의 당당함”이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서자들은 피해의식 속에서 살기 쉽습니다. 눈치꾸러기가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서자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아버지나 적자의 호의에 기대지 않는 정신을 갖는 것입니다. 물질주의의 챔피언들이 만들어 놓은 게임의 법칙을 따르다가는 모두 숨이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들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따로 만들려는 의지, 바로 거기에 서자의 당당함이 있습니다. 우리 생체 리듬에 맞지 않는 삶을 요구하는 세상을 향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독립의 길이요, 자유의 길입니다(주).
그러나 현대가 낳은 많은 서자들이 있습니다.
작고 초라함, 수치심과 열등감, 피해의식을 늘 느끼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 말이지요.
저의 아버지는 부유한 이웃의 집에서 '종살이'를 할 만큼 집이 가난했고, 어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가진 집에서 힘들게 시집살이를 하셨습니다.
지금도 옛집 마루 위에 놓여 있던 낡은 라디오와, 거기에서 늘 흘러나오던 '욥'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처참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마지막에는 큰 복을 받았다는 '욥'.
그곳에 부모님의 꿈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제게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남들처럼 교육을 잘 시켜주지도 못하는데, 잘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본의 아니게 제 자랑이 좀 나오게 되었는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에게는 비길 바가 못됩니다.
저는 중학교에 다닐 때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운동하고, 고등학생들이나 보는 영어책을 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밤 11시까지 공부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반에서는 유명 학습지로 공부하는 친구, 과외를 받는 부유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저는 그들보다 월등하게 실력이 좋았고, 선생님들도 저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저를 매우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해 주신 그 한 마디는 평생 부모님에 대한 자부심으로, 저에 대한 자긍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남들보다 환경이 유리하다고 앞서가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먼저 출발했다고 결승점에 먼저 도착하는 게 아니다!'
'부모님 '빽', 삼촌 '빽', 아는 사람 '빽',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내 성실함과 실력이다!'
저 역시 현실에 직접 부딪히면서 배경과 연줄이 가진 위력을 실감해 보기도 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가 죽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자존감이 바닥까지 무너져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늘 '서자의 당당함'만은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따로 만들려는 의지, 바로 거기에 서자의 당당함이 있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저는 여전히 그 마음을 가지고 '독립과 자유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신감,
인생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주) 김기석, <청년편지>, 2019, 성서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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