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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Dec 28. 2023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며

이순신 <난중일기>

15일   맑다.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들과 함께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그것은 벽파정 뒤에 명량이 있는데, 수가 적은 우리 수군으로서는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서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이라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하고 엄하게 약속하였다. 밤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 하였다(주).


이틀 전에 김한민 감독의 '3부작 시리즈', 그 대미를 장식하는 '노량:죽음의 바다'를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자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숭고한 표상으로 각인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숭고한 삶'.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직접 기록한 『난중일기』에는 노량 해전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에는 노량 해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순신 장군이 전사할 때의 상황, 조선의 군사들 뿐 아니라 명나라 군사들까지 통곡하는 장면, 영구 행렬이 지나가는 곳에서 백성들이 울부짖는 바람에 길이 막히고 행렬이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 등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글로 읽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데, 영상으로 접한 감동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그런데 『징비록』에서 제 눈이 오랫동안 머문 구절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때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그(진린 도독)는 의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통곡했다.'

어떤 글을 보면 '세 번이나 쓰러져 통곡했다.'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같은 민족도 아닌 타민족의 장수가 그의 죽음을 두고 '까무러칠 정도'로 슬퍼할 수가 있을까요?


이순신 장군(좌, 김윤석)과 진린 도독(우, 정재영)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아마 이순신 장군의 고매한 인품 때문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그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전략을 세우고 전투에 임할 때는 철두철미하나 그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 걱정에 날을 새기도 하고, 어머니와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군사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게 여기고 옷을 벗어 주기도 하였고, 궁핍한 백성들의 삶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었습니다.

병이 끊이지 않아 복통과 설사, 구토, 식은땀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먹지 못하는 술을 부하들과 함께 취할 때까지 마시고, 바둑과 장기를 두고, 진중에서 놀이를 하면서 병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습니다.

실제로 『징비록』에는, 이순신 장군이 잔치를 베풀어 포악한 진린을 성대하게 맞이하고, 공을 넘겨주면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이러한 장군의 모습이 진린 도독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둘도 없는 지기가 되도록 해주었던 힘이었습니다.


'노량'을 보면서 굳이 '명량'과 관련된 문장을 인용한 것은, 노량해전이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구절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밤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 하였다.'


'숭고한 정신과 인격을 지닌 사람이,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간절히 바라고 행하였더니, 불가능하게 보였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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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순신, <난중일기>, 2020,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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