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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01. 2024

누가 나를 비난한다면?

이달충 < 애오잠(愛惡箴) >

유비자가 무시옹을 찾아가 말했다. ‘얼마 전 여러 사람이 모여 인물평을 하는데, 어떤 이는 어르신이 사람답다 하고, 어떤 이는 어르신이 사람답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르신은 어찌하여 어떤 이에게는 사람대접을 받고 어떤 이에게는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무시옹이 이 말을 듣고 해명했다. '남들이 사람답다고 해도 나는 기쁘지 않고, 남들이 사람답지 않다고 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오.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 하고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것이 낫겠지요...사람다운 이가 나더러 사람답다 하면 기쁜 일이요, 사람답지 않은 이가 나더러 사람답지 않다고 해도 기쁜 일이라오. 사람다운 이가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면 두려운 일이요, 사람답지 않은 이가 나를 사람답다고 하면 이 역시 두려운 일이라오. 나를 평하는 이가 사람다운지 사람답지 않은지를 자세히 살펴 기뻐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것이오(주 1).'


'왜 자꾸 변명하고 핑계를 대죠?'

'그렇게 자기를 정당화하면서 구차하게 변명하는게 비굴하지도 않으세요?'

'왜 그렇게 생각없이 행동하세요?'

'왜 그렇게 기준이 낮죠?'

'제발 모범이 되세요,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던가.'


누군가 내게 '비겁하다'고 대놓고 말한다면,

말이 앞뒤가 안 맞고,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라고 비난한다면,

어떤 일에 대해 잘못을 저지른 것을 두고 '생각이 짧다', '어리석다', 심지어 '악한 행동'이라고 비난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한 대 치고 본다.

2. (말다툼을 한 후 혹은 아무 말 없이) 관계를 끊는다.

3. 귓등으로 듣고 흘려버린다.

4. 마음 속에 담아두었다가 나중에 앙갚음을 한다.

5. 일단 진정한 뒤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왜 그렇게 말했는지 물어본다.

6. 즉시 알아듣고, 인정하고, 자신의 단점을 고치려 노력한다.


6번을 고른다면, 바보이거나 성인입니다.




이 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사랑과 미움을 받는 일'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고려 말의 문신이었던 이달충의 '애오잠(愛惡箴)'이라는 글 속에 들어 있는데, 애오잠은 '사랑과 미움에 관한 (훈계를 담고 있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이달충은 고려말 공민왕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을 휘둘렀던 신돈에 대해, '주색을 일삼는다'며 공석에서 직언했다가 파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유비자(有非子)와 무시옹(無是翁)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가공의 인물입니다. 이달충은 이 둘의 대화 속에서 '사랑받는 것'과 '미움받는 것'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혹은 '미움받는 것은 나쁜 일이다.'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나누어 말하지 않습니다. 요는, 사랑을 받는 것도, 미움을 받는 것도, '누구에게 받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대접하면서 사람답다고 말한다면 기쁜 일이지만,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고 말한다면 두려운 일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말한다면 두려운 일이지만,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말한다면 기쁜 일입니다.


내가 사랑받는 것을 기뻐하고,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미움을 받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자공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 중에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미워하는 것이 낫다(주 2)."


누군가 나에게 좋은 말로 칭찬해 줄 때, 어떤 사람이 나를 칭찬해 주느냐 살펴야 합니다.

누군가 내게 좋지 않은 말로 비난할 때, 어떤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다만, 사람을 두고 '사람다운 사람',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적어도 사람이라면 완전하지는 않을지라도 양심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음을 이해하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답을 하나 더 추가해야 되지 않을까요?

'7.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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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2) 이규보 외, <한국 산문선 1>, 2018,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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