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오전에만 했는데 오후에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채우는 것에만 집중해 비우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실천에만 몰입했지 비우는 것에 신경을 덜 썼습니다. 어느 순간 넘침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더 채우려고 했지만 몸과 마음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채우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비우는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어제는 명상과 수면 시간을 충분히 가졌습니다. 아침에 몸과 마음 상태가 한결 나아졌습니다. 독서를 더 하려고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달리기를 더 하려고도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몸이 허락한 시간 좋은 감정이 훼손되지 않는 선을 지켰습니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니 생각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비움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채우다 보니 더 이상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움을 생각했습니다. 채움의 목적은 성취였을 것입니다. 성취를 위해 채우는 것을 끊임없이 하다 보니 성취에 이르기 전에 소진을 겪게 됩니다. 이런 상태로는 성취할 수 없기에 계속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이렇게 비움을 찾게 되고 비움에 적극적이려고 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채움은 과하면 안 되고 비움은 과해도 되나?’ 우리 몸에는 자율신경계가 있습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그것입니다. 교감신경은 활동, 부교감신경은 휴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교감신경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과립구를 생성하게 되고 생성된 과립구가 세균을 처리합니다. 부교감신경에 의해 림프구의 수가 증가하고 기능이 향상됩니다. 림프구는 외부에서 침입하는 이물질에 대항하여 항체를 만들어 이물질을 무독하게 만듭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적정선의 본분을 지키면 우리 몸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만일 교감신경이 우위에 서면 과도한 과립구 생성으로 몸에 원래 있는 균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합니다. 이로 인해 조직이 파괴됩니다. 반대로 부교감신경이 우위에 서면 림프구의 수가 증가하여 과민한 체질이 됩니다. 알레르기성 체질이 되기 쉽고 아토피성 피부염 등으로 고생하기도 합니다.
행동은 과하면 안 좋다고 생각하지만, 휴식은 과해도 안 좋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채움이 도를 넘으면 문제가 생기는 것을 알면서도 비움이 과하면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습니다. 교감신경이 민감하게 반응하면 안 좋고, 부교감신경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감신경도 부교감신경도 선을 넘게 되면 우리 몸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채움이 과하면 몸과 마음에 무리가 따르듯이 비움도 과하면 행동을 견인할 수 없습니다. 채움이 그렇듯이 비움도 적정선까지만 소임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채움 다음에 비움이, 비움 다음에 채움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채움이 힘이 들어 비움을 생각하고 있지만 비움을 채움과 같이 대하면 비움도 과도한 채움이 했던 것처럼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음과 양은 자신을 과하게 내보이려고 남의 자리까지 침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러함을 지키는 그 마음이 세상이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물은 특별한 맛이 없기에 계속해서 마실 수 있습니다. 공기는 아무 냄새가 없기에 계속해서 흡입할 수 있습니다. 과하면 진하게 되고 진하면 오래 남습니다. 오래 남으면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것, 거기까지의 모습을 가지려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