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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訃告)

by 긴기다림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무겁습니다. 지인의 어머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신 장례식장은 더욱 그랬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님의 죽음에 유족은 얼마나 황망하겠습니까? 제 부모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당시의 황망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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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가 부모님의 치매나 죽음을 접하는 나이인가 봅니다. 몇 년 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났던 지인은 남편이 암으로 돌아가셨고 본인은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럴 나이가 아직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찹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태어나서 나이 들고, 병에 걸리고 이런저런 풍파를 겪으며 죽음을 맞는 것이 운명이지만 지인들의 이런 소식은 낯설기만 합니다. 삶과 죽음이 당연한데도 받아들이기 쉬운 죽음은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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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웰빙을 지나 웰다잉이 화두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 때쯤 웰다잉에 대한 생각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왔습니다.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망기이타(忘己利他,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함)의 정신으로 살며 삶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웰빙이자 웰다잉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십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지만 하늘의 명을 깨닫기에는 한참 부족하기만 합니다.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하지만 예기치 않은 소식에 휘청입니다. 명이 다함이 사람의 뜻에 있지 않고 하늘의 뜻에 있음을 탓할 수는 없지만 슬픔은 사람의 몫이어야 하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타인의 죽음에서 지인의 죽음으로 지인의 죽음에서 가족의 죽음으로 슬픔은 깊게 파고들어 우리를 흔들어 놓습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먼 후에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만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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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은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건강함에 감사하고 늘 건강했으면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루기만 하지 않고 살았으면 합니다. 기분 좋은 일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더 가까운 죽음을 듣게 될 것입니다. 지금보다 깊은 상실감이 들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 또한 삶이니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이의 죽음은 어떤 이의 새로운 삶의 공간이다’는 말처럼 삶과 죽음은 한 자락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말로 마음에 파인 웅덩이를 매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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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아무리 거세도 시간이 지나면 잔잔해집니다. 파도가 거셀 때는 잠시 마음을 멈추고 잔잔해질 때를 기다려 다시 마음을 띄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도 생명의 소명을 다하는 날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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