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우스갯소리로 보살이라 합니다. 많이 힘들게 하는 사람을 통해 마음을 다스릴 기회를 가질 수 있기에 그런가 봅니다. 이런 말을 예전에는 쉬이 웃고 넘겼습니다. 지금은 깊게 공감합니다.
돌이켜 보면 마음 아픈 사연들이 많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무례한 행동이 힘들게 한 적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장면이 떠 오르면 그때의 기분 나빴던 감정이 올라오곤 합니다. 감정의 강도야 조금은 덜하지만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는 불쾌감을 경험합니다. 어디 낯선 사람뿐이겠습니까. 직장에서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도, 가까운 지인들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알고 있던 사람과의 안 좋은 경험은 더 오랫동안 마음에 남습니다. 잊었다 싶으면 불현듯 다시 찾아와 마음을 흐트러 놓기 일쑤입니다. 지인을 넘어 가족인 경우야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 같은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부딪히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가족과의 힘들었던 기억은 거의 다 희미해져 다행입니다.
사람으로 인해 마음도 많이 상하고 오랫동안 마음에 흔적이 남은 일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무례하거나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들도 그들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중에 방향이 다른 나와 살짝 충돌했다는 생각입니다. 특정 부분에서 저와의 차이로 인한 간극을 자연스럽게 메우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 생각합니다. 원인이 전적으로 그들에게만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어찌 손뼉이 한 손으로만 가능하겠습니까? 마주치는 저라는 손이 있기에 소리가 났지 않았겠습니까.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즐기기까지는 어렵더라도 무심할 수 있는 마음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경험들이 제 자신을 단련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혈압과 당뇨가 있어서 오랜 기간 노력하고 있습니다. 혈압약, 당뇨약도 먹었지만 약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른 접근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혈압은 거의 정상이고 당뇨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수치가 변하지 않을 때의 힘듦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병의 끝을 알기에 때때로 엄습하는 두려움으로 힘들었습니다. 진퇴양난의 경험도 많았습니다. 모르는 것을 더 알려는 노력도 많았습니다. 안 해본 것들을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생활습관병이라는 것이 오랜 시간 안 좋은 습관으로 인해 생긴 것이기에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하는데 마음만 급했습니다.
병을 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친구로 생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몸상태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병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병이 생기게 한 몸 상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삶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병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친구로 지내면서 다독이는 것이 온전한 몸으로 돌아가는 최선임을 알게 됩니다. 결국 병은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보살 같은 은인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주식을 샀고 사다 보니 어느 정도 이상의 액수가 됐습니다. 사자마자 가격은 상승했습니다. 매일이 기쁨이었습니다. 매일 꿈에 부풀었습니다. 딱 초심자의 행운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주식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대응이 어려웠습니다. 아니 어찔할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하락하는 주식을 망연자실 쳐다만 봤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이 진정됐습니다. 마음에 남은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이때부터 이름난 주식 관련 책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읽은 책이 쌓일수록 쉬어졌습니다. 그리고야 알았습니다. 내가 너무 무모했음을, 그 판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말입니다.
주식에서의 힘듦이 없었다면 그 많은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입니다. 힘든 상황이 공부에 불을 붙였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입니다. 나만의 투자관도 생겼습니다. 크게 욕심내지도 않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마음 편하게 투자해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변동성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주식장에서의 힘든 경험은 조금 더 성숙한 투자자로 인도했습니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은 나의 성장을 위한 기폭제입니다. 그것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면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고통을 잘 다루어 동력으로 사용하면 배움과 성장이 따릅니다. 고난은 배움과 성장을 받아들일지의 관문입니다. 배움과 성장을 선택할지는 철저히 자신의 몫입니다. 힘든 상황이 배움과 성장의 큰 조력자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