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입니다. 어렸을 때는 그리도 설레던 날이었습니다. 새 옷과 운동화를 사주시면 그 해의 추석은 그리도 좋을 수 없었습니다. 어릴 적 마음으로는 설날과 함께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니 여느 공휴일과 같은 마음이 돼버렸습니다. 이런 마음이 아쉽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는 아버님과 함께 시골 할머님댁에 차례를 지내로 갔습니다. 차를 몇 번을 갈아타고 4∼5시간 걸려서 도착하던 시골이었습니다. 커다란 나무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우물이 있는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툇마루에 올라앉으면 널찍한 마당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사촌과 신나게 놀다 저녁이 되면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먹었습니다. 밤이 되면 방에 빈틈 하나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잤습니다. 잘 때면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것입니다. 시골 화장실은 문밖에 있었고 작은 붉은 전등 하나 동그마니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왜 그리 무서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례상이 차려지고 얼굴도 모르는 어른들 사이에서 연신 절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끝나기만을 기다리지만 조상님에 대한 절은 한참이 지나서야 끝났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주워 먹던 약과, 한과, 사탕의 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사탕 중에는 맛이 없던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먹을 만은 했던 것 같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문밖으로 나가면 천지가 놀이터입니다. 뒷동산에 올라 뛰고 구르고 하다 보면 땀과 흙과, 풀로 범벅이 됩니다. 누군가의 무덤인지는 모르지만 무덤 위로 뛰어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한참 놀다 보면 배가 꺼집니다. 집에 들어와 차례 지내고 남은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저녁이 되면 툇마루에 모여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소여물을 끓이는 냄새가 구수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여물을 퍼다가 구유에 넣어주면 소는 큰 눈을 끔뻑이며 연신 입으로 넣고 씹었습니다. 소나 사람이나 먹는 것만큼 삶에 가까운 것은 없나 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먹고, 일하고, 쉬고, 자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나 사람이나 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가족과 함께 친척집을 갑니다. 저와 아내의 마음이 어릴 적 마음이 아닌 것은 당연합니다. 아이들의 마음도 우리 내 어릴 적 마음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어른이 돼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어른이 되니 꼭 좋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추석과는 다른 마음이지만 늘 같은 것이 있습니다.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누구의 한가위는 불행했으면 하는 마음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달이 어릴 적 보던 그 달이듯이 우리의 마음도 어릴 적 추석에 대한 설레임은 아니라도 다른 무언가에 대한 설레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고 풍성한 한가위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