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시절에는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공부하고 또 공부합니다.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줄이고 공부 시간을 확보합니다. 대학을 가면 취업을 위해 공부합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스터디도 합니다.
회사에 다닌다고 공부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다닐 때는 진급을 위해 노력합니다. 시간을 내서 필요한 공부를 하고 특정 자격을 얻으려고 합니다. 놀고 싶은 것도 참고 목표를 위해 매진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공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런 공부를 학교에 들어가서 퇴사할 때까지 합니다. 이런 공부의 특징은 목표지향적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목표가 달성되면 공부의 효용은 끝이 납니다. 목표에만 집중하는 공부다 보니 과정을 즐기지 못합니다. 과정을 즐기기에는 시간적, 심리적 압박감이 큽니다. 정해진 기간에 목표에 도달하지 않으면 패자의 집단에 속한다는 강박이 있는 공부입니다.
공부는 평생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의 양이 많기에 그렇다는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불교에서 보살의 여섯 가지 수행 덕목인 육바라밀이 있습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바라밀 등입니다. 이중에 정진은 ‘선한 마음으로 항상 부지런히 닦아 꾸준히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평생을 해야 한다는 공부가 이 덕목과 닮아 있습니다.
목표가 달성되면 지워지는 우리의 공부는 과정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정진에서 ‘자신을 닦는 것’은 과정 자체가 큰 의미입니다. 과정이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길입니다. 정진이라는 길 자체가 나의 목표와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공부는 목표가 있어야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는 우리가 있게 하는 삶의 태도이자 삶 자체입니다. 공부는 무언가를 막연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를 조금씩 다듬는 과정입니다. 자신을 갈고닦아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만인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보태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공부입니다.
공부의 목적을 인류공영이라는 큰 의미에만 둔다면 목표의 거대함에 지레 겁을 먹을지도 모릅니다. 공부는 끝이 없습니다. 목표의 달성이 공부의 끝이 아니라 평생을 정진하다가 죽는 날이 공부의 끝입니다.
하기 싫은 데 억지로 하는 공부는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공부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것도 어마어마한 것을 이루려는 것도 아닙니다. 큰 공부만이 공부가 아닙니다. 작은 공부가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과정 자체가 공부여야 합니다. 공부하는 시간이 행복해야 합니다.
공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지 않음으로 가 아니라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나면 공부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퇴임을 한다고 공부를 놓아서는 안 됩니다. 공부에서 졸업하려는 마음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공부는 우리의 존재 방식입니다. 공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 베풀어진 일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미소 지어지듯이 새로운 공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그런 날이 평생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