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려 했으나 구름이 많아 마음을 접었습니다. 숙소에서 이른 아침 시간을 보내고, 성산일출봉으로 향합니다. 입구에는 벌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고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선생님들과 무리 지어 오르고 있습니다. 신이 난 아이들도 있고 귀찮아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아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천천히 계단을 올랐습니다.
전망대에서의 내려다보는 시내와 바다 풍경은 시선을 잡아두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가는 길에 뾰족하고 모양이 독특한 바위들이 보이는데 등경돌(돌로 만든 등잔대)도 그중 하나입니다. 화산으로 인해 쌓인 화산재가 녹아내리고 남은 것이라고 합니다. 기묘한 모양의 들 기둥은 이곳을 지키는 무사 같았습니다. 올라갈수록 풍경이 넓게 열려 마음까지 시원합니다. 정상에 펼쳐진 일출봉, 바다, 시내가 어우러진 모습은 장관입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고 로비에 맡겼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5시 30분이라 섭지코지를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광치기 해변에서 성산일출봉이 아름답게 보인다 해서 잠시 들러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한 시간을 걸어 섭지코지에 도착했습니다. 햇빛이 강했지만 바람이 불어 아주 덥지는 않았습니다. 가는 길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흐렸던 하늘만 보다 쨍한 하늘을 보니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섭지코지 초입의 바다에서 솟은 바위를 배경으로 사직을 찍는 사람들 뒤로 줄을 서고 한 컷 담았습니다. 과자로 만든 성을 지나 방두포등대까지 오릅니다. 방두포등대에서는 섭지코지 전체가 보입니다. 바다와 어우러진 섭지코지 풍경은 좋은 기운을 채워줍니다.
그랜드 스윙을 지나 올라온 곳과 반대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숙소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역시나 음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이번 제주여행에서의 음식은 싸지 않은 가격인데도 대체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음식에 대한 노력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택시로 1시간 정도 걸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면세점에서 몇 가지 물건을 사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에 맞춰 탑승하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창밖에는 하늘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해지는 모습은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이쪽 사람들과 잠시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비행기가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져 달립니다. 이륙 때의 긴장은 착륙 때 아스팔트 마찰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비행기 안은 좁고 답답하지만 그 안에서의 시간이 있어야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것이 삶의 많은 부분과 닮아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오면 집이 제일 좋다는 생각을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습니다. 여행이 가져다준 쉼과 여유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에 그렇습니다. 있던 곳, 하던 것, 먹던 것, 입던 것이 편하지만 그것만 고집하면 삶의 힘이 없습니다. 쉼에 변화를 주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번 여행은 몸, 정신, 감정, 영혼에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채워진 에너지가 새로운 일에 좋은 연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삶에 다양한 쉼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