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는 일반적으로 편하지만은 않은 관계입니다. 예를 다한다고 해도 관계가 틀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행동과 말로 인해 관계가 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서로 안 볼 수 있는 사이도 아니고 만나면 갈등이 드러납니다.
시어머니가 어떤 이유 인가로 며느리를 외면하면 며느리 입장에서는 당황스럽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마음 상한 이유를 추측해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하실 일인가 싶습니다. 잘못했다고 말씀드려도 막무가내로 외면하고 내치려 하면 마음에 상처만 깊어집니다.
남편의 중재를 요구해 봅니다. 남편도 어머니께 말씀드려 보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남편의 중재도 무용지물이고 남편도 어머님을 당분간 안 보자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며느리 입장에서는 더 난감합니다. 믿었던 남편도 해결 못 하고 안 보자고 하니 마음만 무겁습니다.
원인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자신의 대응을 생각해 보지만 소용없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치솟습니다. 가라앉히려면 한참 애를 써야 합니다. 관계를 끊을 수도 없고 회복은 가시밭길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원인과 대응을 아무리 되짚어 봐도 마음만 아플 뿐 시어머님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기억을 소환할 때마다 내 마음은 지옥입니다. 상황을 재현하는 것을 자신만 힘들게 할 뿐입니다.
몇 가지 정도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시어머님과는 당분간 거리를 둡니다. 시어머님을 남처럼 대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푸는 시간이 꼭 지금일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당장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시어머님을 더 자극하고 내 마음을 피폐하게만 합니다. 거리를 두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접어둡니다. 마음이 풀어지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기간을 둠으로써 시간을 확보하고 만나지 않음으로써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불현듯 치솟는 울분을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자체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합니다. ‘내가 지금 화가 나고 있구나’하는 식으로 감정이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채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자신과의 대화는 3인칭을 사용합니다. 나 -> 너 -> 긴 기다림으로 호칭을 바꿔 내면의 대화를 합니다. ‘긴 기다림이 화가 났구나’ 이렇게 3인칭으로 내면 대화를 시도화면 솟은 화는 조금 쉽게 누그러듭니다.
남편과 아이에게 지금 상황과 앞으로의 상황을 나눕니다. ‘지금은 마음이 풀어지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한 시간이다.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잠시 만남을 뒤로한다. 풀어지면 원래대로의 관계로 돌아갈 것이다.’ 정확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만남을 자제하고 마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봄으로써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마음이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누그러지면 기회를 마련하여 평상시의 인사를 나눕니다. 마음 상했던 일을 굳이 지금 꺼내지 않아도 됩니다. 꺼내도 아무렇지 않을 때 그때 꺼내도 괜찮습니다. 빨리 사과하고 정리하려는 마음에 급히 꺼내 놓으면 잠시 덮어 놓았던 상처가 덧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아물 때까지 살피며 만남을 시작하고 유지하다 보면 아렸던 상처도 무뎌집니다. 부모 자식 간에 이해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잠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서로가 다치지 않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를 이해 못 할 일이 없다면 부모가 자식을 이해 못 할 일은 더더욱 없지 않겠습니까? 넉넉한 마음으로 아픈 발자국이 지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