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양극성과 단일성을 이야기합니다. 양극성은 세상의 모든 것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양-음, 하늘-땅, 물-불, 높고-낮음, 길고-짧음 등 삼라만상은 모두 짝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양극성에는 원인-결과도 포함됩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따릅니다.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어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원인과 결과로 세상의 의미를 밝히다 보면 시간을 전제해야 합니다. 원인은 결과에 선행한다는 의미이기에 자연스럽게 시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지 역으로 흐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과거과 현재는 현재와 미래의 원인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의 개념이 깊게 자리하기에 우리의 의식과 행동은 원인에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싯다르타’에서 “이 돌멩이는 하나의 돌멩이기도 하지만, 짐승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하고,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이 돌멩이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이 돌멩이가 언젠가는 이런저런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그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단일성을 의미하는 문장입니다.
지금을 중요시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지금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과거와 미래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합니다. 오직 지금만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시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공간,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지금이고 지금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전형적인 선-후 개념이 배어 있는 원인-결과를 말합니다. 먼저 무엇을 해야 나중에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단일성의 개념으로 보면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의 지금 안에는 태어나고 자라서 죽음에 이르는 것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현재의 내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모든 시간이 함께 있습니다. 다양한 모습 중 하나로 보일 뿐이지 안에는 모든 모습이 담겨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뿐만이 아니라 미래까지를 포함합니다.
단일성으로 생각한다면 노력으로 미래를 일구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결과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노력이 결과인 것처럼 결과가 노력입니다. 미래는 이미 현재의 노력에 담겨 있습니다.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짐의 발현된 모습이 노력이고 원인입니다. 지난날의 성취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노력이 먼저고 성취가 나중입니까? 노력의 시간에 성취의 모습이 함께 있지는 않았나요? 어느 단계를 넘어야만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롭다면 성취는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와 함께 했음을 알게 됩니다.
될지 안 될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한 것은 내 인생에 있게 되고 인생에 있게 된 것은 노력을 부릅니다.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성취이자 노력입니다.
돌이켜보면 오랜 시간 생각한 것은 모두 내 안에서 있었고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루려는 일을 생각으로 많이 옮기는 것이 인생을 변화 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