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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파수꾼

by 긴기다림

사람이 태어나면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하나씩 배우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외형만 있지 내면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것으로 여깁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캔버스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아이가 아니라 부모가 선택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이유입니다.


부모로부터 어떤 교육을 받기 이전에도 아이의 영혼에는 부여받은 소명이 있습니다. 사람의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기능을 발달시키기 위한 과정을 거칩니다. 몸과 마음의 기능이 궤도에 올라야 소명을 위한 창조성을 발휘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기 이전에 부모님은 아이를 소유의 개념으로 받아들입니다. 부모님이 역할을 다해야지만 올바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판단이 미성숙하다고 생각하고 아이의 선택과 욕구를 본인의 잣대로 재단합니다. 아이는 자신의 창조적 욕구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숨기거나 미루게 됩니다.


창조적 욕구가 제대로 표출되는 기회를 잃게 되면 불안과 공포가 쌓입니다. 아이의 마음에 쌓인 불안과 공포는 특정 시기에 발화 조건과 만나면 바깥으로 터져 나옵니다. 기성세대와 문화에 대한 반항의 표출입니다.

아이의 순수한 욕구가 부모로부터 좌절되면 아이는 자기효능감이 떨어집니다. 창조적인 욕구들은 약해지고 하려는 것을 막는 부모를 독재자로 생각합니다. 아이는 자신의 창조적인 욕구를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와 맞서는 것에 에너지를 씁니다.


부모는 아이가 비뚤어지는 것에 속수무책입니다. 우리 아이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하며 속만 태웁니다. ‘엄친아’처럼 공부 잘하고 부모 말도 잘 들었으면 하는데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찾아보지만 머리로 이해된 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좋은 결과까지 가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아이는 부모에 속하지 않는 창조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모님은 아이를 소유하려 합니다. 아이의 길을 정해주려 합니다. 먼저 삶을 산 선배로서 아이의 미숙함을 채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내면은 비어 있지 않습니다. 아이는 생명의 탄생과 함께 부여된 소명으로 가득합니다. 아이의 창조적인 욕구가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도록 가족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부모가 얼마나 채워주느냐가 아이의 행복을 결정짓지 않습니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제 역할을 할 때까지 자신의 창조적인 욕구와 호기심이 발현되는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합니다. 이 경험이 아이의 행복을 가능하게 합니다.


부모의 권위를 내려놓고 친구와 동료의 관계로 아이와 함께 서야 합니다. 눈높이를 맞춰야 아이는 부모를 억압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를 넘어야 하는 산으로 보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부모는 산을 함께 넘는 친구여야 합니다.


반항으로 일관하는 아이를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봅니다. 일탈하는 아이들에 낙인을 찍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이의 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아이의 냉소적인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던 그 지점에 닿을 때까지 같이 기다려야 합니다. 이 방법만이 아이를 온전히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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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교사는 그리고 나는 아이들 스스로 소명의 싹을 틔울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힘들고 시간이 걸려도 모두가 이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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