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야기를 할 때 겉도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때가 그렇다. 경청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차례만 기다리는 모습은 대화를 산으로 가게 한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며 대화를 한다. 그러니 자신 안의 것을 상대에게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상대도 같은 마음이라는데 있다. 외나무다리에서 먼저 가겠다고 머리를 맞댄 염소와 같다.
한 사람이 말을 할 때 상대방도 말할 수는 없다. 말이 겹치면 이제부터는 대화가 아니다. 말 쟁탈전이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말을 해야 한다. 아주 쉬운 규칙이지만 의외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나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상대의 말을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음미하는 시간이 없으면 상대의 말이 언제 끝나는지에만 온 정신이 가게 된다. 심지어 끝내 기다리지 못하고 상대의 말허리를 끊고 비집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대화는 상대의 말을 마음에 푹 담갔다 꺼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내 말을 하기 위해 상대의 말을 듣는 척하는 것으로는 대화에 닿지 못한다. 상대의 말을 흘려보내면 상대 또한 내 말을 마음에 담았다 꺼내는 일은 없다.
자신의 이야기만 하려는 대화가 내키지는 않지만 그러려니 한다.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마음이 없다 해도 내가 들어주는 것으로 마음을 정할 때도 많다. 그러면 그럭저럭 대화가 된다. 언젠가는 그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
대화의 블랙홀이 있다. 상대에게 혼란한 마음을 말하면 도인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다. 어떤 일로 생각이 복잡하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은 듯 “잊어버려,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일을 붙잡고 고민해야 부질없는 일이야” 이런 말을 듣자고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은 없다.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하면 “잘 못 되면 얼마나 잘 못 되겠어. 그렇다고 해도 거기에 해당되는 대가를 지불하면 그만이지, 뭐 그런 사소한 것에 마음 쓰고 그래”
자신의 말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야 본능에 가깝지만 이렇게 도인에 빙의하면 할 말이 없다. 말은 마음에 떨어진 잉크방울을 희석해 주는 역할을 한다. 말하는 것 자체로, 또는 누군가가 들어준 다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마음에 떨어진 잉크방울을 지우려는 대화가 도인을 만나면 그 상태로 얼어버린다. 얼어버린 잉크 방울은 지워내기 어렵다.
대화 상대로 도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들어주고 고개 끄덕이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 이상의 좋은 대화 상대자는 없다. 대화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려는 것까지는 인정한다. 그것을 넘어 세상 100만 년 산 것 같은 말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